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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Essay

휘어지는 연습 아침 이미지 ㅡ꿈꾸는 정원 햇살이 노란 부리로 어둠 끝을 톡톡 쫀다 부서져 깨어나는 금빛 싸라기들 일순간 새떼가 날고 환한 꽃이 핀다 푸른 물 숲도 깨어 가진 것 다 내놓고 수풀 속 정령들이 은결처럼 달려 나와 바람길 거칠어지는 마음눈도 열어준다 다툼이 일상이 된 시린 포도 위에 무서운 꿈을 꾸다 소름 돋는 가슴에도 눈부신 하늘이 내려 결 고운 손을 편다 현대 시조라서 전반적으로 시들이 간결하고 어절이 딱딱 맞아 떨어지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현실이 항상 불안한 마음을 지닌 시인은 자연의 아름다움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그 아름다운 자연도 무너져내리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유튜브나 자기계발서 같은 곳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주장한다. 나도 한 때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하고.. 더보기
나 개 있음에 감사하오 개의 신 김소형 신이라면 개를 응당 사랑하겠지 천국에는 동물이 없다는 말에 흔들리던 종교 사이 사랑하니까 데려간 거겠지 이제는 기도하지 않겠지만 먼저 떠난 동물은 주인을 많이 기다린다고 그 말을 듣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은 개의 신이라면 사랑해야지 그러지 않겠냐고 뙤약볕에 앉아 가장 먼 은하의 개미에게 물어보던 초여름 나는 강아지를 키우면 안 되는 사람이다. 20대 때부터 어렴풋이 그걸 느꼈다. 싸돌아다니면서 겪은 수많은 모험담(?)은 그렇다 치고 계단에서 굴러 앞니까지 조금 깨진 적 있는 사람이 무슨 강아지를 챙긴단 말인가. 외로워하며 새벽 늦게까지 사람들을 만난다고 쏘다니는 내 방랑벽(?)을 고치려 보다못해 어머니는 숱하게 내가 도망다니던 소개팅은 접어두고 강아지를 사오셨다. 강아지를 두 마리.. 더보기
여성, 전적으로 권력에 관한 그리고 로마 초기 역사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를 보면, 덕성 높은 루크레티아는 당시 왕가의 잔혹한 왕자에게 강간을 당한 다음 발언 기회를 얻는다. 그러나 이 발언 기회는 강간을 저지른 자를 비난한 다음 자살하겠다는 선언을 위해 주어진 것이었다(최소한 로마 시대 저자들은 그렇게 기술했다.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쓰디쓴 발언 기회조차 박탈이 가능했다. 이 성폭력 사건이 고결한 여성의 상징이라는 이유로 그림 소재로 굉장히 많이 쓰였었다. 물론 실제로는 더 비참했다. 리비우스 로마사에 나오는 내용인데, 계속 반항하면 루크레티아와 남성 노예를 함께 살해한 뒤 간통했다는 누명을 씌우겠다고 가해자가 협박했을 정도니 말이다. 이 책에서 나오는 말에 굉장히 공감하는 바이다. 나.. 더보기
고양이가 다 보고 있다 그 도둑 중에서 허구한 날 신문과 티브이 뉴스는 직업과 지위 고하에 상관없는 온갖 도둑들의 이야기뿐이다 그런데 도둑들을 잡고 보면 모두 한결같이 자기는 억울하다고 하니 아직 정체를 알 수는 없지만 그 윗선의 진짜 도둑이 있을 터이므로 큰 도둑이나 작은 도둑이나 좀도둑일 뿐이다 사건에 연루된 대통령도 조사해 보면 자기도 억울하고 모르는 일이라고 하니 도둑이라 치더라도 좀도둑에 불과하다 (...) 대낮에 도깨비도 웃을 일이지만 환자들은 모두 똑같은 소리 나 잡아봐라 흐흐흐 하는 소리가 때도 없이 들린다는 것이다 (...) 그렇다면 처음부터 그놈은 우리 마음속에 숨어 있었는데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 말인가 사설시의 구절을 쓰려 했는데 아무래도 내 취향이 아니라서 이 시를 대신 올리기로 했다. 개인적으로 볼 때.. 더보기
2016 시인동네가 주목하는 올해의 시인들 101 손 피리 길상호 오므라든 손 빈집처럼 체온이 사라졌던 손 악보에서 떨어진 새를 주워 그는 손에 넣고 키웠다 반대편 손 잔손금까지 긁어모아 새를 위해 촘촘히 깔아주었다 밥물을 받아먹고 똥을 싸고 잠을 자면서 새는 끊긴 그의 손금을 이어가며 하루를 연주했다 오므라든 손 안에서 손금 가지들이 울창하게 다시 숲을 이뤘다 참으로 오랜만에 읽는 서정시이다. 오래 못 보다가 만나는 것들이 이렇게 반갑다. 인상적인 시인들을 꼽아놓고 나서 살펴보니 대다수가 이미 시집을 읽은 적이 있는 시인이었다(...) 특히 2013 현대시라는 책에서 접한 분들이 많던데, 그 시들이 정말 인상적이긴 했나보다. 특히 성동혁 시인은 2년 사이 정말 성장한 티가 나는 분이었다. 다 읽고 나서도 왠지 모를 여운이 남는달까. 딱히 작은 성기란 .. 더보기
검은 돌 숨비소리 강동휘 선생님 중에서 김석교 뽑안 오난, 아 이놈덜이 이번엔 사름 죽인 그 피투성이 흙투성이 살점투성이 뇌수투성이 골수투성이 범벅 호미를 우리안티 탁 던지멍 그걸로 놈삘 깎앙 먹으랜 허는 거라. 말 안 들으민 너네도 다 폭도난 이 아이 짝 난덴 겁을 주멍. 우린 동지섣달 사시나무 털 듯이 닥닥닥닥 털멍 어찌어찌 놈삐를 깎긴 깎아신디 어떵 그걸 먹을 수가 있나게. 안 먹는 놈은 폭도로 간주허고 저 짝 날 줄 알랜 계속 겁주난 이젠 할 수 어시 한 입씩 베어물긴 물어신디, 눈물 나고 콧물 나고 토 나오고 설룹고 무섭고 기가 맥혀네 도저히 목구멍 알로 넘어가질 안해여. 왝왝 괙괙 끅끅 토허고 눈물 콧물 겁똥 겁오줌 좔좔 깔기멍 그 놈삐를 먹는디, 다덜 속으로 소리 안 나게 극극 울엄시난 그놈덜은 우릴 보멍 켈.. 더보기
어머니의 정원 폐에 대한 잡감 중에서 ​ 십수 년 전 아들이 다친 때를 돌이켜보았습니다 아이가 아파하는 만큼 나도 괴로워하다가 소망과 불안감으로 쓰러진 일이 있습니다 다 자란 아들이 어느 날 천연덕스럽게 말했습니다 "그때는 제가 폐를 끼쳤습니다." 어른이 됐다는 증거의 겉치레 말에 "천만에."라고 잘라 대답했지만 사실 털끝만큼도 아들에게는 폐를 입었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 그러니 나에게 위선은 없을 것입니다 굳이 '폐'라고 하자면 이것이야말로 무상의 그것이겠지요 그리고 그것을 다른 말로 바꾸면 어떻겠습니까 가령 '호의'나 '자애' 아니면 '사랑' 사실 이 구절 때문에 이 시집을 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들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구절, 그리고 겸손함과 점잖음까지. 이런 아버지를 둔 아들이 부럽다. 그러나 이 .. 더보기
빨간 스케이트 자석 세상 어딘가 있을 나의 반쪽 나와 전혀 다른 모습의 여자일거야 우리가 달콤한 사랑에 빠진다면 나의 설탕젤리심장은 N극 그녀의 설탕젤리심장은 S극 내 심장이 사랑의 화살들을 발사하면 그녀의 심장에 날아가 무수히 꽂힐까 그렇담 그녀의 심장이 아프지 않도록 나의 사랑이 그녀 마음을 허전하게 한 심장의 빈 구멍들을 메꾸었으면, 딱 그만큼 사랑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의 설탕젤리심장이 사랑의 강력한 자기력선으로 연결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의 커다란 자석이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도 무례한 질문을 한 남자 분 한 명 페친에서 차단시켜서 좀 감정이 들어가긴 했는데, 정말 이제 연애감정같은 게 없는가 보다. (차단한 인간 좀 까자면, 저리 삐뚤어지고 뒤틀어진 심상 보이면 지가 특이한 인물인 줄 아는 ㅅㄲ .. 더보기
여보, 나 좀 도와줘 그 가운데 하나로 여성관을 물어보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을 해 주었다. "결혼한 후 10년 동안은 가끔 부부 싸움을 했던 일도 있었습니다. 때로는 감정이 격해져 주먹질을 한 일도 한두 번 있었습니다. 하지만 재야 운동에 가담한 뒤로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고 그로 인해 여성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체계적인 여성관을 갖고 있지는 못합니다." 일단 정치계에선 여태까지 진출한 여성이 적다보니 여성관이 편협한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난 노무현이 말한 정도가 가장 솔직하고 괜찮다고 본다. 글을 정리해보면 이렇다. 1. 과거에 나는 페미니즘에 무지한 사람이었고 이러한 행동을 했다. 2. 지금은 다르게 생각하고 이렇게 바뀌었다. 3. 그러나 나는 지금도 .. 더보기
2014 신춘문예 당선시집 빨랫대를 보고 말했지 중에서 ​ 최현우 ​ 몸은 하루에 십만 개의 세포가 죽는다 저 팬티는 삼 년 동안 낡은 육체 실밥이 분열을 거듭하는 동안 허리둘레에 대한 기억을 끝없이 지우는 동안 어떤 헤어짐은 끝내 남아 성장해버린 팬티 (...) 팬티는 너보다 크게 늘어났다가 숨 조이지 않을 만큼 줄어드는 탄력을 배운 것 ​ 그러니 구멍도 무늬가 된다 이만큼이나 편한 팬티는 없다 입었다 벗고 다시 입고 벗었으므로 두 몸은 떨어져 있어도 한몸의 시간을 살고 있다고 ​ 색 바랜 팬티를 입으며 웃는 너 너의 늑골이 빨랫대를 닮았다는 생각 이소연 시인의 시를 읽으려고 빌렸는데 상상 이상이었다. 이런 시를 쓰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대놓고 드러내지 않은 채 페미니즘에 관해 써내려가는 게 이 시인의 장점인 듯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