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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Essay

고양이가 다 보고 있다

그 도둑 중에서

 

허구한 날 신문과 티브이 뉴스는

직업과 지위 고하에 상관없는

온갖 도둑들의 이야기뿐이다

그런데 도둑들을 잡고 보면

모두 한결같이 자기는 억울하다고 하니

아직 정체를 알 수는 없지만

그 윗선의 진짜 도둑이 있을 터이므로

큰 도둑이나 작은 도둑이나 좀도둑일 뿐이다

사건에 연루된 대통령도 조사해 보면

자기도 억울하고 모르는 일이라고 하니

도둑이라 치더라도 좀도둑에 불과하다

(...) 대낮에 도깨비도 웃을 일이지만

환자들은 모두 똑같은 소리

나 잡아봐라 흐흐흐

하는 소리가 때도 없이 들린다는 것이다

(...) 그렇다면 처음부터

그놈은 우리 마음속에 숨어 있었는데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 말인가

 

 

사설시의 구절을 쓰려 했는데 아무래도 내 취향이 아니라서 이 시를 대신 올리기로 했다. 개인적으로 볼 때 이 시인은 짧은 시를 더 잘 쓰는 듯하다.

 

시집 제목이 이래서 아기자기한 시들이 많을 줄 알았는데 그렇진 않다. 이 제목으로 된 시도 있던데 솔직히 길에서 떠도는 생물이라면 들개도 보고 있고 들쥐도 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ㅋㅋ 사실상 요새 길거리에서 보이는 건 거의 고양이밖에 없긴 하지만, 왜 고양이인지 좀 더 설명을 해주었더라면 좋았을 거란 생각은 들지만 어차피 시니까 설명이 부족할 수밖에(...)

시작부터 청동기나 철기 같은 주제가 나오는데 요새 자꾸 이런 주제 나오면 춘천에서 레고랜드 짓겠다며 무너뜨린 듯한 고인돌 생각난다 ㅠㅠ 지어봤자 정규직도 10%밖에 안 된다더만 뭐하러 자꾸 지어대고 쓸데없이 유물만 망가뜨리는지... 조상님들께 미안한 바이다.

 

시들이 대체로 메시지가 명확한 편이다. 철을 전쟁으로 표현하고 자연을 대비시켜서 생태계를 보존하는 농촌 생활을 찬양하는 시. 그리고 세상에는 반드시 숨겨진 곳이 있고 그것을 드러내도 그 내부에 또 숨겨진 곳이 있으니 그걸 굳이 캐내려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며 여백의 미(?)를 찬양하는 시. 맨 처음에 자신을 소개하는 시를 쓸 때 사람들이 제발 시를 많이 읽어줬음 좋겠다는 메시지를 남기셨던데, 그 때문인지 시를 쉽게 쓰려 노력하신 게 보인다 할까. 공교롭게도 지식과 교양을 자랑하는 내 페친들 중에서도 요즘 시는 어렵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몇 있다. 그리고 이 시집을 펴들어야 시인의 말을 볼 수 있다는 게 가장 최대의 단점(...) 시는 안 보는 사람은 무슨 핑계를 대던간에 끝까지 안 보더라.

 

이 말이 하고 싶었다고 중에서

 

아궁이에 불을 지핀다

마른 솔가지를 밑에 깔고

참나무를 얼기설기 쌓고

먼저 밑자락에 불을 물린다

일단 불꽃이 괄해지면

잡목 가지들을 사이사이 쑤셔 넣고

맨 위에 소나무 장작을 올린다

이윽고, 오직 이때를 기다려 왔다는 듯이

불꽃들은 드디어 혀가 되고 길이 되어

일제히 터지는 함성을 지르며

열두발 상모를 돌리며

북 치고 장구 치고 소구 치며

만세 만세 만만세

희희낙락 살판이다

 

 

사설시의 구절을 쓰려 했는데 아무래도 내 취향이 아니라서 이 시를 대신 올리기로 했다. 개인적으로 볼 때 이 시인은 짧은 시를 더 잘 쓰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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