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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Essay

휘어지는 연습

아침 이미지

ㅡ꿈꾸는 정원

 

햇살이 노란 부리로 어둠 끝을 톡톡 쫀다

 

부서져 깨어나는 금빛 싸라기들

 

일순간 새떼가 날고 환한 꽃이 핀다

 

푸른 물 숲도 깨어 가진 것 다 내놓고

 

수풀 속 정령들이 은결처럼 달려 나와

 

바람길 거칠어지는 마음눈도 열어준다

 

다툼이 일상이 된 시린 포도 위에

 

무서운 꿈을 꾸다 소름 돋는 가슴에도

 

눈부신 하늘이 내려 결 고운 손을 편다

 

 

현대 시조라서 전반적으로 시들이 간결하고 어절이 딱딱 맞아 떨어지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현실이 항상 불안한 마음을 지닌 시인은 자연의 아름다움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그 아름다운 자연도 무너져내리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유튜브나 자기계발서 같은 곳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주장한다. 나도 한 때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미래에는 더더욱 그렇게 되리라 생각한다. 이럴 때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나아가 마음에 분노가 생산된다. 화자도 역사를 돌아보며 과거에 일어난 사건에 정감을 느끼지만, 비극이 되풀이되는 현실을 개탄한다. 그러나 그는 휘어지는 연습을 하라고 되풀이한다. 괴로운 현실을 받아들이란 이야기이도 하지만, 마치 화살처럼 어딘가 일직선으로 뻗어나가는 추진력을 얻기 위해서일 수도 있겠다. 땅 위에 사람들이 마구 건물을 지어대는데 우리가 파괴된 자연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보통 없다. 시인이 하는 일은 그저 자연을 찬양하고 현실의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하는 시를 쓰는 것뿐이다.

 

시들이 전부 짧은데다 시집이 얇아서 금방 읽으나 내용은 가볍지 않으니 하나하나 뜻을 음미하는게 필요하겠다.

 

4월의 눈

 

너만 꽃이냐고,

꽃만 피면

봄이냐고

 

환각제

가루 같은

눈꽃을 뿌려댄다

 

피다 만

붉은 복사꽃

 

미사보를

쓰고 있다

 

 

세월호 참사 때 추모미사를 한창 했었는데 그 광경을 묘사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 ㅎㅎ 나만 그러나 아무튼 짧은 문구인데도 머릿속에는 미사보가 휘날리는 광활한 광경이 펼쳐지는 훌륭한 시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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