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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Essay

작은 미래의 책 미열 중에서 사실 우리가 서로에게 건네던 위로는 각자의 각오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 우리들이 꾸려 했던 모든 꿈이 위악이라는 걸 알았을 때, 우리가 느낀 건 실망이 아닌 동정에 가까웠다 밤이 지나고 오는 건 새벽인데 사람들은 왜 아침이 온다고 하는 걸까 새벽이 만드는 소량의 빛과 소음 속에서 어느 취객은 유기견을 걷어차면서 걷고 있었다 그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욕을 뱉으며 죽어버리자 그냥 죽이고 죽어버리자, 중얼거렸지만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그는 취한 채 다짐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좀 길지만 이 시가 맘에 들었다. 문학계에서 '요즘것들 뭘 쓰는 건지 모르겠다'라고 해봤자... 교훈적이고 정치적인 메시지를 쓴다고 그랬다가 재미없어서 상업가치가 떨어진 게 현실 아닌가? 요새 시가 스무고개하고 있는 건 사실인.. 더보기
베누스 푸디카 꽃, 가장 약한 깃발 봉오리를 열다 좁히다 망설이는 사이 어둠을 빌미로 놓친 사랑이 몇 개 들여다보려다 그만 코가 다치네 향기에 엉켜 눈이 머네 손등 하나 볼 언저리에 머물다 시들고 내가 당신ㅡ이라 부르던 사내는, 들은, 죄다 남의 남자가 되었다 이렇게 깊은데 당신은 왜 시작하지 않을까 종은 계속 울리는데 모르고 핀 꽃들은 들개의 축축한 주둥이에 물려 사라지거라 그러고보니 하안동을 아는가 물어보면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차라리 옆에 밑바닥을 기어다니던 독산동을 아는지 물어보면 아는 사람은 있더만, 어중간하게 가난해서 그랬는지... 아무튼 친가가 거기에 있어서 옛날 대학 다닐 땐 자주 들르고 했다. 거기서 이불 털다 자살하려 아파트에서 떨어져 자동차에 머리부터 박힌 사람 눈동자도 봤고, 교복 입은 채로.. 더보기
뢴트겐행 열차 토네이도 한때 나에게 진지했던 남자가 찾아왔다 토네이도가 몰아친 날이었다 우리는 깊고 비린 카페로 숨어들었다 한때 나에게 진지했던 남자가 바람 소리보다 가벼운 담배를 물었다 그동안 섹스한 여자들에 대해 그는 이야기했고 귀에 익은 교성이 찻잔 속으로 뛰어들었다 우리는 마주 앉았고 한때 나에게 진지했던 남자가 절정에 다다른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토네이도는 문틈에 자신의 성기를 넣고 있었다 찻값을 계산하면서 그에게 어디로 가냐고 묻지 않았다 우리는 그저 카페에서 나와 서로 다른 돌풍 속으로 빨려 들었다 이런 남자 분이 실제로 있습니다 난 하나 안 궁금한데 지 혼자 멋대로 전 애인 이야기 시작해서 흥분하고 싸는 인간(...) 안 궁금하다고 젝일 근데 끊을 새가 없음. 하기사 내 개인적인 경험으론 좀 닥치라 해도 .. 더보기
대관령에 오시려거든 참 다행이다 더도 덜도 말고 한 천 년만 당신을 사랑하리라 했으나 한순간도 그 사랑은 내게 오지 않았다. 묶어두지 않겠다는 그것이 나를 위한 당신의 지극한 헌사였다는 걸 지금에야 알고 감읍한다. 나는 당신을 미친 듯 사랑했으나 당신이 나를 그렇게 사랑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참 다행이다. 사랑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가슴에 스며드는 것 같다. 오랜만에 내 취향인 가슴 뛰는 이야기를 만났다. 요즘 연애물은 좀 너무한다. 언제부턴가 멘붕물이 유행하질 않나, 애인이 되지 못한 하렘물 떨거지(...)들이 너무 두드러지지 않나, 그것도 아니면 사랑 가지고 장난질하는 게 넘 많음. 물론 토라도라 같은 것도 좋았는데 후속작이 너무 독자들 의식해서 미연시처럼 나왔어 ㅠㅠ 나는 더도 덜도 아니고 딱 오네가이 티쳐같은 로맨.. 더보기
시인하다 여행 네가 나를 품는 시간, 내가 네 속으로 침윤하는 순간, 정상위를 고집하는 네가 후배위를 즐기는 나를 다독일 때, 난 나야 외치지 말라 식의 시간 계류의 시간 박명의 시간 우리 앞에 놓인 그 사이와 사이들, 그림 너머 그림자를 마셔라 그곳이 우리의 다른 이름 G스팟. 내가 네가 되는 곳, 네가 나일 수도 있는, 반구저기의 시간을 잇는 이 찰나의 멀티오르가슴. 이인휘 소설가의 페북을 보면 꽤 흥미로운 사람들이 평을 많이 쓴다. 대부분 시집이 절판되었거나 출판이 되지 않은(혹은 너무 쎄서 못한) 사람들인데, 이령이라는 사람은 시집이 도서관에 꽂혀있어서 봤다. 이인휘 소설가 분이 시인들 사이에서는 유명인이라기에 기대가 되었다. 그리고 시집을 조금 넘겨보니 심야의 마스터베이션이라는 제목의 시가... 호오. .. 더보기
아직도 낯선 길가에 서성이다 숲의 절망 아름드리 나무가 꽉찬 산속에는 희망이라고는 없다 서로 경쟁을 하듯 밑동 굵은 나무들만 커오르고 힘이 부쳐 뒤처진 단신의 나무들은 절망한다 큰 나무에 눌려 말라가는 나무들, 바람마저 거부한 채 뿌연 솔잎의 머리칼과 산전수전 겪은 주름살만 가득하다 웅웅 큰 나무들 새로 지나가는 나무들의 울음, 새들은 누런 솔잎을 흔들어대고 투구를 쓴 송충이들의 대열이 굵은 주름살을 디디며 올라간다 주름살이 간지러워 바람 한 줄기 시원하다 이놈들 등쌀에 소나무는 만신창이가 되고 간혹 헬리콥터가 농약을 뿌려 시원하게 해주지만 무리지어 올라오는 대열을 당해낼 도리가 없다 새들도 도망을 간다 송충이들의 매끄러운 털이 송홧가루와 섞여 온 하늘에 퍼진다 딱히 그렇게 좋은 시는 아닌데 디테일한게 우리 집 강아지 랑이가 생각나.. 더보기
모데미풀 며느리배꼽 집 나간 며느리 갈고리로 허공을 찍어 하늘에 오르더니 하늘과 그러더니 배꼽이 꼭 하늘을 닮은 하늘의 아기를 낳았네 전국 야지 어디에나 아기를 낳아놓았네 편견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픔을 이야기하거나 아픈 사람들을 돕는 자들은 그 자신들이 아픔을 경험한 적이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보통 사람들은 꽃과 들풀을 노래할 때 그 아름다움을 찬양한다. 그런데 이 시는 아름다움과 함께 인간의 슬픔과 외로움을 읊고 있다. 들풀이나 동물과 같은 작은 것들에 대한 관심은 곧 세상의 약자들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진다. 가슴이 아려오는 시집이다. 제목은 전부 들풀에 관한 시로, 화자가 젊은 시절 전쟁터에 군사로 참여하면서 봤던 것들과 현재 보고 있는 것들을 모두 모아 읊고 있다. 파드득나물 올여름 철원쯤 가다가 .. 더보기
달그락 쨍그랑 재개발 중에서 부서진 담장 너머 후박나무 가지를 오르내리며 짖어대는 직박구리, 그래! 그곳이 어디 사람만 살던 곳이냐, 기는 것이나 나는 것이나 드나들기 좋게 구멍 숭숭 난 곳이었지 이제 새 번지가 생기면 수백 수천 칸에 사람이 살아도 누가 사는지, 누가 가는지도 몰라 그래! 그곳이 어디 그런 곳이냐, 가슴에 구멍 많아 술만 마시면 혀 세는 소리를 하다가도 아침이면 미안해하는 사람들, 남의 집 생선을 훔쳐 먹고 입을 닦는 고양이, 마주치면 쫓다가도 그냥 두는 사람들, 그런 이웃이 무녀리처럼 모여 살았지 (...) 막 부순 집터, 주인이 부르면 달려와 자반뒤집기를 했을 개 한 마리 이름을 잃고 추억한다 6.25때 어쩌다 우연히 이 책을 읽은 것 뿐인데 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알포인트같은 영화를 언급.. 더보기
온갖 것들의 낮 빛나는 토르소 중에서 방은 더 이상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 흐트러진 상태에 아무 보호도 없는 이것은 순진한 상태? ㅡ앙리 미쇼, 나타남ㅡ사라짐에서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남자를 사랑하게 된 것 같아 눈알이 도마 위에서 굴러떨어져 열린 창문 틈으로 지켜본다 나는 길어지는 허리 칼날의 곡선 (...) 나는 밤거리의 어린 남자에게 오빠ㅡ하고 불렀다 내가 사랑하게 된 남자는 빨간 글로스를 바르고 아무 말 없는 계단처럼 침착하게 눈멀고 지금 읽는 소설에서 아주머니들이 주인공을 오빠 혹은 오라버니로 부른다는데 그래서 그런가 어쩐지 기억에 자꾸 남는 시이다 ㅎㅎ 보다시피 시들이 범상치 않다. 낮에 읽고 있는 중인데 '빛이 있으면 행복한 줄 알지? 그럼 적도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왜 불행해?'라고 말하는 듯하.. 더보기
개천은 용의 홈타운 코를 골다 코를 골았다고 한다. 내가 코를 골아 시끄러워 잠을 못 잤다고 한다. 그럴 리 없다. 허술해진 푸대자루가 되어 시끄럽게 구는 그자가 바로 나라니, 용서할 수가 없다. 도대체 몸을 여기 놓고 어느 느티나무 그늘을 거닐었단 말인가. 십년을 키우던 고양이 코기토도 코를 골았었다. 그 녀석 죽던 날, 걷지도 못하면서 간신히 간신히 자기 몸을 제집 문 앞까지 끌고 가 이마 반쪽만을 문턱에 들여놓은 채 죽어 있었다. 아직도 녀석은 멀고 먼 자기 집을 향해 가고 있을 것이다. 끌고 가기 너무 고단해 몸을 버리고 가는 자들, 한심하다. 어떤 때는 한밤중에 내 숨소리에 놀라 깨는 적이 있다. 내 정신이 다른 육체와 손잡고 가다가 문득 손 놓아버리는 거기. 너무나 낯설어 여기가 어디냐고 묻고 싶은데 물어볼 사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