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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Essay

한들한들 제비꽃 옆 또다시 봄 좋은 봄 죽었다 살아난 구름 날름 혓바닥 내밀어 새하얀 솜사탕 한 점 베어 물고 오늘은 제비꽃 속으로 들어가 잠이나 청해볼까? 제비꽃은 진보랏빛 심해선 밖 바다 물빛 별빛 이불 덮고 잠이나 청해볼까? 오소소 추워라 잠이 오지 않는 밤 나도 내일엔 집 한 채 지어야겠다. 약간 시대에 안 맞는 면이 있는데 특히 경북식당이란 시같은 경우가 그렇다. 출입시켜주고 먹여주는 것만 해도 고맙게 여겨야지 왜 식당에서 진상부림? 그리고 잔소리라니? 사장님 나이가 몇인데 왜 잔소리를 군말 없이 들어야함? 요새는 장사를 해도 금방 망한다고 그러니 다시 옛날처럼 돌아가란 소린감? 가뜩이나 난 욕쟁이 할머니도 싫어하는데 차라리 저 광경보단 나을 거 같단 생각이 드네. 음악 네 마음을 풀잎 위에 놓으라 바람.. 더보기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 LXXV 중에서 ​ 하늘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드리운 저 얇은 막 뒤로 헛되이 떠다니는 너희들. 이 황혼에서 저 황혼으로 표류하면서, 아픔도 못 느끼는 상처 앞에서 요란 떠는 너희들, 내 너희들에게 말하노니, 삶은 거울 안에 있고, 그대들은 죽음, 바로 그 자체이니라. (...) 너희들은 죽었다. 그전에도 결코 살아본 적이 없었지. 지금은 아니지만 한때는 살아 있었노라고 누구나 다 그렇게 말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결코 살아본 적이 없었던 삶의 시신에 불과했던 것이다. 서글픈 운명, 항상 죽어 있었던 존재의 운명. 푸르렀던 적이 없었는데, 이미 마른 잎이 되어버린 운명. 고아 중의 고아. 미치다 못해 크리피한 시인 듯;;; 시집 치곤 꽤 두껍긴 한데, 읽다 보면 절대 두껍다고 느끼지 못할 거다. 생식.. 더보기
통증을 켜다 문제 ​ 즐겨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이었다 ​ 청취자 퀴즈가 흘러나왔다 ​ 보기 1, 보기 2, 보기 3, 보기 4 ​ 위 보기 중 정답 하나를 골라 보내주세요 ​ 나는 방송국에 전화를 걸었다 ​ 다음 날이었다 라디오에서 청취자 퀴즈가 흘러나왔다 ​ 듣기 1, 듣기 2, 듣기 3, 듣기 4 ​ 위 듣기 중 정답 하나를 골라 보내주세요 ​ ​ 아니 정답만 잘 찍으면 되지 내가 눈으로 예시를 보던 아님 귀로 예시를 듣던 그게 퀴즈를 내는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는데? 그냥 1번 2번이라고 하면 될 걸. 단어도 더 간단한데 왜 굳이 보기듣기라고 해야 함? 이거 아직도 이러나. 이렇게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시가 상당히 정리가 잘 되어있는 편이다. 1~2부는 시각장애인으로서 자신과 주변 생활 이야기가 담겼다. 3.. 더보기
1914년 초혼 위와 아래를 모르고 메아리처럼 비밀을 모르고 새처럼 현기증을 모르는 너를 사랑해 나는 너를 강물에 던졌다 나는 너를 공중에 뿌렸다 앞에는 비, 곧 눈으로 바뀔 거야 뒤에는 눈, 곧 비로 바뀔 거야 앞과 뒤를 모르고 햇빛과 달빛을 모르고 내게로 오는 길을 모르는 아무 데서나 오고 있는 너를 사랑해 시와 연관 없을지도 모르지만 순간 이거 읽다가 어느 연극인의 말이 생각나더라.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사랑을 연기하는 게 가장 어렵다고. 동생에게 '난 이미 망했으니 너나 잘해라'라고 했는데 이건 괜히 한 소린 아니었다. 어머니는 일단 내가 데려와 소개시킨 소수의 전남친들의 꼴을 보고는 "너 결혼하지 말고 나랑 같이 재밌게 살자"라고 간절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하루는 외할머니가 82세의 나이로 침대에서 자.. 더보기
시린 아픔 아프리카 오지에서 있었던 일이다. 1980년 1월 초, 나는 벽에 머리를 박으며 소리쳤다. "뷔댕, 당신을 죽일 거야. 죽여버릴 거라고!" 뷔댕은 내 담당 치과 의사였다. 그는 내게 치료가 잘 끝날 거라 약속했었다. 격한 고통만큼이나 격한 반응이었지만, 적어도 그날 내게는 고통을 느낄 객관적인 명분이 있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저자의 글은 아닌데 이게 정말 진정한 시린 아픔이 아닐까 생각된다. 내 이까지 전해지는 거 같음(...) 이걸 인상깊은 글이라고 하면 좀 그럴 거 같지만 내가 워낙 치과에 대한 사연이 많아서. 사진이 계속 나온 뒤, 이별했던 날 이후로 그 사건을 반복하여 회상하며 글을 쓰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어차피 같은 일이라 계속 했던 얘기 또 할 수도 있을 텐데 그때그때 다른.. 더보기
사라진 재의 아이 개의 나날 어떤 길쭉한 것을 하나 주워서, 그것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날이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무엇이든 버려진 신발짝이든 개의 목에 걸려 있던 끈이든, 개는 어디로 갔을까, 의문도 반성도 없이 그렇게. 거리에 개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고, 버려진 신발이든 개끈이든 어떤 길쭉한 것이 검은 주머니 안에는 있고, 나의 손이 만질 때마다 불길하게 부풀어 올랐다. 헛된 기대 같은 것이라고 너는 웃었지만, 그것은 발이 없는 신발 같은 것일까? 피의 냄새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검은 주머니는 점점 부풀고 날씨가 맑고 개들은 많았다. 이 구절이 야하게 들리는 거 저만 그러나요...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개가 여행을 다니면 좋아할 줄 알았다. 그렇지만 자갈밭을 많이 걸은 탓인지 아님 섬을 다녀오는 몇 시간 동안 숙소에 .. 더보기
포유류의 사랑 따뜻한 경제 중에서 ㅡ구강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공동체 8 ​ 월드컵 축구 경기가 재방송되는 역촌동 샤브샤브 가게 모니터 속의 선수들은 결정된 승부를 향해 달리고 나와 여자는 채우지 못한 아침의 공복을 점심에 채우며 낮술을 먹네 정오에서 공복으로 열린 섭취의 경로 외에 우리에게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어서 낮술 마시니 좋네 (...) 어제 들어간 골이 또 들어가는 이 순간 함께 흘리는 애액 같아 좋네 짤은 닥쳐 짤이라고 검색하니 나왔습니다 나만 눈이 썩을 수 없었습니다(...) 시는 무인도에서부터 시작한다. 시 제목도 그렇고 정현종의 섬이란 시도 기존에 있어서 완벽히 낭만적인 시같이 보이겠지만 그렇지 않다. 이 시는 인간인 자신을 개로 묘사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시에서도 자신과 개를 동일시하는 .. 더보기
거기 그런 사람이 살았다고 어슴푸레한 데 중에서 저 어슴푸레한 데는 뭐가 있느냐 무엇이 살고 있느냐 어둑시니 떼가 쪼그려 앉아 있느냐 분꽃이 피냐 도둑이 웅크리고 있느냐 (...) 오오, 우리들이 함께 무찔렀던 어슴푸레한 데 무엇이 있느냐 무엇이 쪼그려 앉아 흑백이 부동인 채 턱을 괴고 눈망울 디룩디룩 굴리며 여길 쳐다보느냐 저 죽을 줄도 모르고 쪼그려 앉아 불칼을 등허리에 맞고 있느냐 최근 강원도가 바가지를 씌운다고 성화들이다. 강릉에 가서 골목 아무 허름한 식당을 들렀다. 곤드레밥을 주고 반찬은 무한리필이다. 어르신 입맛에 맞추었기 때문에 생선반찬이 짠 것 빼곤 다 맛있었다. 고래책방도 오랜만에 들렀다. 청소하시는 분이 내 얼굴을 알아보고 반긴다. 빵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책을 볼 수 있는 훌륭한 장소다. 나는 실컷 먹고 마시.. 더보기
쌍둥이 할아버지의 노래 자정을 넘어서, 새벽에 쓴 시 ㅡ말은 신이다!A Word is the God! 시가 세상을 바꾸거나 변화시킬 수 있을까 히틀러 때 베르톨트 브레히트도 실토했는데 시가 세상을 바꾸거나 구할 수도 없다는 것 시인들이여! 그러나 바로 그러함 때문에 발 동동 구르며 시를 변화시키는 것이 세상 발을 동동 구르며 세상을 바꾸려는 것이 시! 말, 언어, 로고스가 하느님이요 부처님이기 때문일까 보라, 들으라, 갓 태어난 아가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하늘의 말씀을! 새들의 날개가 실어 나르는 노래를!! 그럼, 시가 세상을 바꾸거나 변화시킬 수 있다 발 동동 구르며 시를 변화시키는 것이 세상이라면 발 동동 구르며 세상을 바꾸는 것이 로고스, 시! 이 시집엔 그 유명한 Requiem, 세월호 중에서 4번 다시라기가 들어있다... 더보기
캣콜링 누워 있는 경진 중에서 왜 너만 좋아? 바보야 네가 처음이라 모르나 본데 사랑한다는 말은 말로 하는 게 아냐 행동으로 보여 줄게 나는 하룻밤에 다섯 번도 사랑할 수 있어 대답 대신 경진이는 자기 주둥이를 다잡고 왼손으로 지문을 오른손으로 대화를 썼다 짝짝이 속옷이 벌린 다리보다 부끄러웠던 그날을 썼다 좆도 모르면서 큰 구멍만 탓하던 그날을 내 것이 얇고 가는 줄도 모르던 나를 기리던 그날을, 썼다 왜 갑자기 맥주 마시러 나가는 밤중에 복어국이란 시가 그렇게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난 낙태 해봤냐는 소리까지만 들었는데 여긴 자궁에 혹까지 나온다; 아니 왜 자궁에 혹 난게 더럽냐 ㅠㅠ 난 안 났지만 내 예전 친구였던 언니가 이거 때문에 애 낳기 힘들다 했던데 그러지 마라 안 그래도 얼마나 서럽겠니 ㅠㅠㅠ 어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