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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Society

35년 2 김알렉산드라 1885~1918 ​ ​사회주의 운동가. (...) 1917년에는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에 입당해 볼셰비키로서 극동 지역을 담당하는 외무인민위원을 역임했다. (...) 5월에는 이동휘, 김립 등과 한인사회당을 조직했는데, 김알렉산드라는 이동휘 등과는 다르게 처음부터 볼셰비키였다. 나중에 간부들과 다같이 도망치다가 혼자 붙잡혔다는데 혹시 모두들 버리고 도망간 거 아닙니..(퍽) 전반적으로 이 분의 에피소드가 가장 눈부시게 다루어지는 듯하다. 정치계에 전면에 나서신 건 1년밖에 안 되어서 비중있게 다루어진 건 아니라 보지만, 박시백 씨가 특히 이 분을 그린 작화에 혼을 담은 것 같다. 그나저나 이제서야 겨우 35년 책을 빌릴 수 있었다. 코로나 너무 거지같다 ㅠㅠ 서울사람들 내가 사는 지방에 내려오.. 더보기
35년 1 그런데 이토 히로부미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은 사쓰마번이 아닌 조슈번 출신이다. 일본 육군을 이끄는 인물로 제3대 총리를 지낸 야마가타 아리토모다. 이토는 네 번, 야마가타는 두 번 총리를 지냈고 이후 그들의 대리인 격인 가쓰라 다로와 사이온지 긴모치가 번갈아가며 내각을 구성했는데 이때를 교번정치 시대라 부른다. 가쓰라는 야마가타의, 사이온지는 이토의 후계자적인 인물. 하지만 제2차 사이온지 내각 때엔 이미 야마가타 측이 정국을 완전히 주도하고 있었다. ㅋ 여기서부터 시작한다는 게 인상적이라 쭉 적어봤다. 요새 한국사가 세계사를 인식하기 시작해 내용을 같이 적기 시작한다던데 정말인듯. 근데 원래 일본은 육군이 강함. 사무라이가 뭐임. 육지에서 싸우는 애들 말하는 거 아님? 여담이지만 바람의 검심에서도 주인.. 더보기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3 왕은 자신의 서자인 이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궁에 들어와 있던 민씨가의 계집종(야사에도 나오는 효빈 김씨)이 태종의 아이를 가졌다. 이를 안 왕비 민씨, 이때는 왕에 대한 배신감으로 눈이 뒤집혀 있을 때였다. 옛 집으로 내보내 행랑방에 가두었고, 해산이 가까워지자 방앗간 옆에 두어 그곳에서 아이를 낳았다. 때는 혹한의 12월, 아이를 낳자 이불도 없이 어느 오두막에 내팽개쳐졌다가 교하의 집으로 소에 태워 보내졌다. 그런데 민씨에 대해서도 공감이 가는데 이 사람은 엄청 배신감 느꼈을 것 같다. 이방원도 욕심이 없는 사람이 아니고 그녀도 그러니 분명 둘이서는 어울리는 커플이었는데, 갑자기 왕이 되고서는 이런저런 다른 여자들을 엄청 건드리고 다니니(나중에 세종 전의 세자가 '아버지도 여자들 거느리고 .. 더보기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2 다시 개국 초의 한 장면, 세자 책봉,공신 책봉이 끝난 다음 어느 날, 왕세자와 왕자 들,개국공신들이 한데 모였다. "문하좌시중 배극렴 등은 황천후토와 송악성황 등 모든 신령에게 고합니다. ... 무릇 우리 일을 같이한 사람들은 임금을 성심으로 섬기고 친구를 신의로 사귀어야 할 것입니다. 저만 잘 되기 위해 해치지 말며, 제 이익을 위해 서로 시기하지 말며, 의심을 품지 말며, 뒤에서 미워하다 만나서는 좋은 체하지 말며, 겉으론 친한 척하면서 속으론 간격을 두지 말라! 우리는 자손들에게까지 대대로 이 멩세를 지켜나갈 것이다. 만약에 언약을 깨는 자 있으면 신이 반드시 벌을 내릴 것이다!" 그러나 뒷날의 격돌을 생각해보면, 이날의 맹약은 마치 그 예고편처럼 느껴진다. 여담이지만, 남자들은 참 여러 사람들이.. 더보기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 공양왕, 울면서 보위에 오르고, 울면서 물러난 왕이다. 그런 탓에 바보스럽고 겁 많은 왕이란 이미지가 씌워졌지만 과연 그럴까? (...) 나름의 논거를 대고 논리가 부족하면 감성에 호소하고 혹은 못 들은 척하면서, 필사적으로 버티는 왕이었다. 적어도 1980년의 최 아무개와는 달랐다. 최 아무개가 누군지 궁금했는데 최규하라고 한다. 나도 잠시 헷갈렸는데 페친이 알려주었다. 대통령 했는지 안 했는지도 모른다는 그 분이라서.. 읽는데 의외로 몰랐던 기록들이 많다. 까먹은 건지도 모르겠으나(...) 이성계가 젊은 시절 싸웠던 원나라 장수의 이름은 역시 여기서 처음보는 것 같다. 만화책이라서 그런지 술술 읽힌다. 진작에 볼걸. 지금 생각해보면 웃긴게 고려는 뭔가 찜찜한 애가 한 명 있으면 외교를 보내 버리더라... 더보기
역사저널 그날 고려 편 4 어떠한 적장 하나가 나이는 겨우 15~16세쯤에 용모가 단정하면서 수려하고 빠르고 날래기는 비길 데가 없었는데, 백마를 타고 창을 휘두르면서 돌진해 오니 향하는 곳마다 쪼개지고 쓰러져 감당할 수 없었으므로 아군이 아지발도라고 부르며 다투어 피하였다. 태조가 그의 용맹함을 아깝게 여겨 이지란에게 명하여 생포하라고 하였다. 이두란이 아뢰기를, "만약 사로잡고자 한다면 필시 사람들을 상처 입게 할 것입니다. 그 자는 얼굴까지 견고한 갑옷으로 둘러져서 화살을 쏠 만한 틈이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아직 어렸는데 아까움 이성계라는 천재 때문에 ㅎ ​ 이제 역사저널 그날 현재 나온 책은 다 읽었습니다. 어서 빨리 근현대사판 나왔음 좋겠네요. 지금 방송에선 무지 싫은 게스트가 있어서(...) 지 말하기 바빠서 다른 .. 더보기
역사저널 그날 고려 편 3 노비가 비록 천하다고 하더라도 또한 하늘의 백성인데, 예사로 재물로 논하며 거리낌 없이 매매하고 혹은 소나 말과 이를 바꾸기도 하는데 1필의 말에 대해 (노비) 두세 명을 지급하고도 오히려 값을 치르기에 부족하니, 소와 말이 사람 목숨보다 더욱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고려 시절에 말 1필 당 노비 2~3명이 교환되었다는 것보다 저 시기에 저런 말이 나온다는 게 충격적이지 않나? 논란이 있겠지만, 지금 사람 목숨 값보다 기계가 더 비싸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에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만적이 오늘날 태어났다면, 오히려 기계에 매달려 구차한 목숨을 이어가는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인간 목숨의 존엄을 주장하는 만적을 조롱하지 않았을까. 지금도 탑 위에 올라 시위하는 사람들은 .. 더보기
역사저널 그날 고려 편 2 개척한 땅이 너무 넓어 9성 간의 거리가 멀고 계곡과 골짜기가 황량하고 깊어 적들이 매복하고 있다가 왕래하는 사람들을 약탈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라에서 군대를 징발하는 일이 많아 중앙과 지방이 소란한데, 기근과 전염병까지 겹쳐 마침내 원망과 탄식이 일어났다. 논란이 많을 것 같지만 난 저 정도면 그냥 땅을 포기하는 게 낫지 않았나 생각한다. 세종의 유일한 단점이라 거론되는 것도 저 지역에다가 남쪽 주민들을 강제로 이주시킨 거고.. 사람은 욕심내지 말고 관리가 가능한 곳만이라도 잘 지켜내야 한다. 물론 서희도 윤관도 열심히 노력해서 나중에 그곳이 항일운동의 기지가 될 수 있었던 건 커다란 성과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윤관의 홧병과 그에 의한 이른 죽음은 아쉽다. 김은부가 몽진한 왕을 도와주는 이야기는 감동적.. 더보기
문재인 대통령 말글집 2 함께 잘사는 대한민국 강한 해군력은 해양강국으로 가는 핵심입니다 중에서 ​ 국내 기술로 최초 건조된 3000톤급 잠수함, 도산안창호함을 진수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처음 잠수함을 도입한 것은 1992년 독일에서 온 1200톤급 장보고함입니다. 오늘 안 사실인데 한국 해군은 그 외에도 아스널쉽급 만든다고 하더라. 어쩐지 이 글 올려보고 싶더라. 해군은 앞으로 점점 기술이 발전할거라 본다. 육군은 너무 화력덕후라 부담스러움.. ​ 촛불혁명을 3.1운동에 비유하다니 이야 이걸 이렇게 하네 ㅋㅋㅋ 어찌보면 토착왜구라고 일본인을 차별하고 일본과의 관계가 악화될 만한 발언을 하게 된 배경은 대통령이었구만. 하기사 이제 일본에서 한국에 도움이 될 만한 게 이젠 완전히 떨어져서 나올 수 없긴 하겠지만.. ​ 솔직히 문재인은 코로나에 대.. 더보기
역사저널 그날 8 이하영이 어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부산 거리에서 찹쌀떡 장사로 인생을 시작했다. 훗날 외교부 장관이 되었다 한다 ㄷㄷㄷ 그래서 기회를 잘 잡아야 돼(?) 물론 우리나라 미국인들에게 팔아먹었다고 역사서에 오르는 건 별개로 생각하고? 이건 팟캐스트에서 들은 얘기이긴 하지만, 민비로 부르냐 명성왕후로 부르냐 명성황후로 부르냐에 따라 고종과 '명성황후'를 보는 시각이 전반적으로 달라진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명성황후라 부르는 게 맞다고 주장한다. 왕비를 부르는 최종적인 명칭이라는 객관적 평가에 의해서다. 나도 그게 옳다고 본다. 어차피 왕이 있던 시대는 '지도자'를 우리가 선택할 수 없었다. 그러나 유독 명성황후를 우리는 만만하게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결국 능력 있는 여성이라서 그러는 게 아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