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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Society

역사저널 그날 8

이하영이 어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부산 거리에서 찹쌀떡 장사로 인생을 시작했다.

 

 

훗날 외교부 장관이 되었다 한다 ㄷㄷㄷ 그래서 기회를 잘 잡아야 돼(?) 물론 우리나라 미국인들에게 팔아먹었다고 역사서에 오르는 건 별개로 생각하고?

 

이건 팟캐스트에서 들은 얘기이긴 하지만, 민비로 부르냐 명성왕후로 부르냐 명성황후로 부르냐에 따라 고종과 '명성황후'를 보는 시각이 전반적으로 달라진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명성황후라 부르는 게 맞다고 주장한다. 왕비를 부르는 최종적인 명칭이라는 객관적 평가에 의해서다. 나도 그게 옳다고 본다. 어차피 왕이 있던 시대는 '지도자'를 우리가 선택할 수 없었다. 그러나 유독 명성황후를 우리는 만만하게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결국 능력 있는 여성이라서 그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달까.

 

근데 고종 암살에 대해선 의문이 남는 게 커피에 설탕 넣고 은숟가락 같은 걸로 휘젓는 문화가 없나? 아무튼 옛날부터 독으로 인해 죽는 왕이 흔했고 그래서 예전부터 독 가려내는 기술이 발전했었을 텐데 고종이 전수받지 못한 거 같아서 아쉽다. 서양문화만 따랐다 하니 그쪽에 대해선 몰랐던 건가. 아무래도 이 시기엔 뭔가 한 것들이 많았다 보니 여러 근대화 이슈 중 한 가지에만 맞춰 집중적으로 분석한다는 느낌이니 크게 공부한다고 기대 말고 역사의 흐름을 대충 짚어보며 읽어보길 바란다. 대신 세계사의 진행을 같이 실어줘서 외국 침공 배경에 대한 이해가 쉽다.

 

그나저나 조상님들도 출세하려고 영어 배운다고 말하고 다녔다니 씁쓸하기 이를 데 없다.

"억울하지? 억울하면 출세해 이 새끼야"

중학생때 맞으면서 들었던 이야기다.

"비정규직이라서 억울하다고요? 그러면 시험 보고 합격해서 들어오세요"

지금도 듣는 이야기다.

 

효명세자는 최근에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을 통해 잘 알려졌지만, 그전에는 대중에게 잊힌 인물이었다. 순조는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고자 개혁 성향을 지닌 아들 효명세자에게 정치의 실무를 맡겼다. 대리청정을 통해 왕실의 권위를 회복하려고 했던 것이다. 효명세자는 1827년 2월 18일에 인정전에서 하례식을 마친 후 정무를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1830년 5월 6일에 급서하기까지 약 3개월 동안 대리청정했다.

 

 

거참 덧없구만요.

 

프랑스의 루이 14세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를 보면, 루이 14세가 즉위했을 때 나이가 어리니까 주위 사람들이 매우 업신여기거든요. 그래서 루이 14세가 춤을 직접 만들어요. 그리고 그 춤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면서 관료들을 춤으로써 하나씩 제압하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이 시기 서양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기도 했고, 슬슬 침략에 대해 다루고 싶었는지 세계사와 우리나라의 역사를 자주 빗대어본다. 일단 쉽게 치고 나가니 배경을 모르더라도 안심하길 바란다. 모두들 그래도 루이 14세 정도는 알지 않는가. 아무튼 그 ㅋ 게 ㅋ 모 ㅋ 야 ㅋㅋㅋ

자신이 태양이라던 말 답게 아폴론으로 분장했었다고 한다. 아무리 그 땐 통했다고는 하지만 재밌네 ㅎㅎ 하기사 난 춤치지..

 

주한 일본 공사관 기록을 보면 일본군은 서로, 중로, 동로의 세 갈래로 군사를 나누어서 동학농민군이 러시아 국경 쪽이나 경상도 또는 강원도 쪽으로 가는 것을 최대한 차단하고 서남 해안으로 몰아붙입니다. 즉 거의 토끼몰이를 하듯이 동학농민군을 밀어붙인 것이죠.

 

 

최근엔 일본이 군대 못 만든다고 무시하는 사람들이 많던데, 이런 역사기록들을 보면 꽤 치밀한 민족들인 것 같으니 조심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