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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Society

섬과 섬을 잇다 2 송국현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지적장애가 있던 그는 스물네 살에 뇌출혈로 더욱 중한 장애를 입게 된다. 말할 수 없었고, 오른쪽 팔다리를 쓰지 못했다. (...) 시설에는 종종 시설 바깥의 삶을 이야기하는 이들이 찾아왔다. 그들 대부분은 그보다 장애가 중했다. 그럼에도 시설 바깥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었다. 그들을 보며 국현은 그 삶을 소망하게 되었다. 가고 싶은 곳을 가고, 컴퓨터를 사용하여 상대방과 이야기하며, 일도 하고, 결혼도 하는 삶. 그리하여 2013년 10월, 그는 장애인단체의 도움으로 쉰둘의 나이에 시설에서 나온다. 하지만 시설 바깥의 삶은 그가 상상하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사실 좀 오래된 책이다. 1권은 한참 예전에 봤다. 2권을 사서 보려고 한 순간 주X민에 관련된 어떤 사건이 터졌던 걸.. 더보기
35년 7 일찍이 독일 항복 후 3개월 내에 참전하겠다고 공언한 스탈린은 이미 대규모 병력을 극동으로 이동시켰고 일본의 희망과 달리 1945년 8월 8일, 대일 선전포고로 응했다. 직후 나가사키에 두 번째 원자폭탄 '팻맨'이 투하되었다. 2개의 원자폭탄으로 희생된 사람은 1945년 말까지만 해도 21만 명에 이른다. 이 사진이 팻맨 모에화라고 널리 알려져 있는데 제대로 된 밀덕에게 물어보니 사실 리틀보이라고 한다. 폭탄 모양이 팻맨은 좀 뚱뚱하고 둥글고 리틀보이가 잠수함형이라나. 근데 얘네 이름 정말 왜 이래 ㅋㅋ 첫번째로 떨어뜨렸단 에놀라 게이()도 그렇고 뭔가 이상하다고; 아무튼 원자폭탄 모에화한 건 사실인듯 일본도 정상이 아냐.. 각종 과거 폭로 사건들을 보다보면 가해자들에게서 일제시대 친일파의 향기가 진하게.. 더보기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8 그렇게 양연은 양 사의 대간을 이끌고 입궐했다. 설령 김안로파 대간이라 해도 몸을 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어 6경과 찬성, 우의정을 급히 불렀다. 때마침 이들은 김안로의 집에 있었다. 김안로의 아들 초례 날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입궐한 대신들은 상황을 파악하고는 김안로 탄핵에 가세했다. 그러면서 임금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 또한 빠뜨리지 않았다. 성공할 때의 단점은 방심하기가 참 쉽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종도 참 골때리는 인간이긴 하다. 멋대로 조광조를 띄우다가 멋대로 죽였는데 조광조를 띄운 게 죽이려는 의도인 건 아니었던 것 같고. 그에 교훈을 얻었는지 김안로한테는 그렇게까지 정은 안 붙인 것 같기도 하지만, 나라일보단 보복을 위해 정치를 하는 인간에게 애초에 정권을 준 게 잘못 아닌가 ㅋㅋ 연산군이.. 더보기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7 연산 9년 9월, 인정전에서 양로연이 열렸다. 모처럼 즐거운 자리. 재상들은 다투어 임금에게 술을 올리고 임금은 답술로 화답했다. 예조 판서 이세좌는 평소 술을 못했지만 여느 재상들처럼 술을 올리고 못하는 답술을 비웠다. 하지만 술을 떨어뜨려 곤룡포를 적시는 줄은 몰랐다. 제목도 이세좌의 수난 ㅋ 아니 그냥 모르는 척 해주지. 양로연이면 어르신 신하들 위로해주는 자리 아니었어? 연산군이야 뭐 하도 이야기들이 많아서 그렇게 기발한 대목은 없었던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연산군에 대해 다룬 팟캐스트는 좀 재미있었다. 예를 들어 장녹수는 얼굴이 그 시대에서도 그다지 예쁘진 않은데, 워낙 장녹수가 붙임성 좋을 뿐더러 무엇보다 연산군이 누님 모에파 같다고 하는 대목도 있다. 뭘 좀 아는구만 연산군 ㅋ 아무튼 팟빵 앱.. 더보기
35년 5 이재유는 농민으로 변장해 양주로 가서 아지트를 마련하고 이관술과 함께 출판 활동을 이어가기로 했다. 적기를 제작, 베포하는 방식으로 조직사업을 벌여가기로 한 것. 그러나 베포자들이 체포되기 시작했다. (...)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경성일보는 호외를 발행해 '집요 흉악의 조선공산당 마침내 괴멸하다'라는 표제 아래 그의 검거를 보도했다. 위키에서는 김일성에 대한 자료가 제각각이다. 일본어로 대강 읽어보면 중국공산당에 입당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책에서도 그렇게 쓰여 있다. 다음엔 중국에 나온 김일성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계획이다. 아무리 일본이 북한에 대한 관심이 많다고 해도 그렇지 바로 붙어있는데다 옛날엔 우리나라였던 곳의 수장에 대해서도 똑바로 기록을 못한다니 한탄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북한이 친일파.. 더보기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6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에 있는 남이 장군의 묘. 역모죄로 능지처참된 후 7일간 효수되어 있었던 까닭에 제대로 장사 지낼 수는 없었으리라. 남이가 실제 이곳에 묻혔으리란 보장은 없지만, 이곳에 남이 장군의 묘로 조성해놓았다. 춘천 남이섬에도 남이가 묻혀 있다는 전설을 가진 돌무더기가 있었다. 페이트로 비유하자면 남이는 라이더가 아니었을까. 백성들은 좀더 날뛰고(?) 장군다운 남이를 좋아했을 듯하다. 구성군 이준이란 사람은 신중한 성격이라고 하지만 왠지 아버지에게 눌려 살았던 것 때문에 조심하는 게 과하다고 할까. 정치가 기질은 있어도 장군다운 기색은 없었던 것 같다. 책에서는 남이의 일이 구공신의 함정이라지만 현재 학계에서는 왕이 주도적으로 일을 처리했거나 적어도 구공신과 왕의 합작품일 거란 의견이 주도적이.. 더보기
35년 4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은 자신의 혁명성을 입증하기 위해 전면에 나서서 봉기를 주도했다. (...) 한바탕 동만주 일대가 휘몰아쳤지만 봉기는 이내 진압되었다. 많은 활동가들이 검거되었고, 사후에도 일본 경찰은 물론 중국 관헌들까지 나서서 공산주의자 색출에 현안이 되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많은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의 중공당 입당이 이루어졌고, 중공당은 조선인 마을을 중심으로 각지에 하부조직을 구축할 수 있었다. 이제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은 중국혁명과 조선혁명이라는 양대 과제를 안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쉬웠을까? 당시 한 개 혹은 몇 개 성에서 우선 폭동으로 승리하자는 게 테마였다는데, 어느 독립운동가가 지적했듯이 그렇게 마을 몇 개 부순다고 해도 금방 진압될 게 뻔한데도 우리나라 공산주의자들이 선두에 서고.... 더보기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5 단종이 처음 유배된 곳은 유명한 청령포. 우물을 파는 등 수선을 떨었지만 그곳에 머문 날은 얼마 되지 않았다. 여름이어서 홍수의 위험이 있다며 영월 객사로 옮겨 살게 한 데다 그 해에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다음은 영월 객사 시절에 지은 시다. 원통한 새 한 마리 궁에서 쫓겨나와 고독한 몸 외 그림자 푸른 산 헤매네. 밤마다 잠을 청해도 잠은 오지 않고 해마다 한을 없애려 해도 없어지지 않는구나. 울음소리 끊어진 새벽 산엔 으스름달 비추고 피눈물 흘리는 봄 골짜기엔 떨어진 꽃이 붉어라. 하늘은 귀먹어서 그 하소연 못 듣건마는 어찌하여 서러운 내 귀만 홀로 잘 듣는가. 시도 굉장히 잘 짓는 분이셨군요.. 다시 봐도 아까움. 능력이 없으면 뭐 안타까운 정도로 끝나지만 ㅠ 수양대군 엄청 나대는 걸로 나오는 .. 더보기
35년 3 김기진 1903~1985 시인이자 평론가. (...) 일본 릿쿄대학에 유학하면서 사회주의 사상과 문학에 관심을 가졌다. 1922년 5월 형 김복진과 박승희, 이서구 등과 재동경조선인유학생 연극 단체인 토월회를 결성하고, 1923년 5월 귀국 공연을 위해 졸업하지 않고 귀국했다. 1923년 귀국 이후 개벽에 기고하는가 하면 문학 동인지 백조 창립에 참여했다. 애국자라지만 공연을 위해 학업도 때려친다니 정말 연극을 사랑하시는 분인가보다. 이런 사람들 좋아함 ㅎ 시기가 시기인만큼 한국의 사회주의와 관련된 글이 많다. 특히 자유시참변의 혼란스러운 전개가 깔끔이 정리되어 나와서 좋았다. 단체가 분열되었다가 합쳤다가 하는 마당이라 많이 복잡하니 잘 따라가야 한다. 1924년 3월 박춘금을 회장으로 하는 각파유지연맹.. 더보기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4 이때의 병조판서는 박습, 병조참판은 강상인이었는데, 강상인이 실세였다. 병조 일을 오래 해온데다가 태종을 대군시절 때부터 따라다니며 모신, 말하자면 태종의 가신이다. 그런데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강상인은 태종을 제쳐놓고 세종에게 보고하곤 했고 그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 날! (...) 조사가 끝나 강상인은 함길도에 관노로 보내지고 박습은 경상도로 유배된다. 신분 떡락 ㅋㅋ 그나저나 이 얘기 보니 또 추노 생각나네요(...) 요새 KBS 다시보기 결재해서 사극만 싹 돌려보고 있는데 정말 명작이긴 한가봄 인상이 넘나 강렬. 그러고보니 태종이 아들 장인의 일가족 중 여성들도 관노로 보냈다고 하더라. 왠지는 모르지만 관노 시키기 굉장히 좋아하는 듯? 조선 중기에만 그랬던 건 아니었구나. 양녕이 폐세자되어 쫓겨난 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