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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

Axt no. 005 우리가 상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빈자리가 부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가 없는 게 아니라 그의 없음이 있는 것이다. 이 잡지에서는 자신의 작품을 후장사실주의라고 지칭하는 세 명의 작가를 언급하고 있다. 왠지 더러워보여서 기피하게 되는 이름이지만 그 뒤에 있는 작가들은 제법 순문학(?) 업계에서 명망이 있는 사람들이다. 아방가르드라고까진 이야기하고 싶지 않지만 제법 현실을 그로테스크하게 그려나가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 단어를 똥꼬사실주의로 변환시킨다면 어떤가. 진중권은 자기 고양이가 싼 똥도 이뻐 보인다고 말했다. 애완동물을 키워본 사람으로서 새겨들을 만한 이야기며 그 이상으로 해석하고 싶지는 않지만, 엑스라는 유형지에서 '나'라는 사람이 강아지똥 천지인 파리에서 그 냄새에 심취해 있.. 더보기
그가 그립다 그래서 '내 무덤 앞에 서지도 울지도 말라'고 한다. '나는 그곳에서 자고 있지 않기'에. 나는 '불어대는 천 개의 바람', '눈 위에 반짝이는 광채', '무덤 위에 내리는 부드러운 별빛'이기 때문이다. 심경이 상당히 복잡한데 일단 박근혜는 최순실이 없으니 절대로 그녀가 그립다 같은 책을 낼 수가 없을 거 같다. 그녀 한 명 떨어지니까 팔선녀가 모조리 흩어지는 걸 보면 실세를 넘어 생명줄이던 거 같은데 말이다. 반면에 노무현은 탄핵까지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그를 위해 글을 써서 올릴 사람이 22명은 있다. 그것도 문학적으로 온전하고 기본적으로 정신도 튼튼한 사람들이 말이다. 새삼 그에게 부러움을 느낀다. 가끔은 새와도 같이 밥을 먹고 싶댄다. 항상이 아니라. 지극히 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다. 평범해.. 더보기
바람 인형 왜 사랑하는 데 노력이 필요한가. 그것은 직감처럼 느껴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주의: 위의 이야기는 제 20대 초반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20대 전반과 중반 대부분을 차지했던 남자 아이와 헤어지고 나서 며칠 혹은 몇달 후에 남자 아이는 다른 여자 아이를 사귄다. 놀랍게도 혹은 이전부터 남자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어렴풋이 예감하며 몸을 떨었던 그 여자 아이와 사귄다. 조용히 SNS를 뒤졌거나, 아님 나와 남자 아이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친구 관계가 넓다고 공공연히 과시해 오던 어떤 친구에게서 듣고 싶지 않았는데 들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몇 년 후 그 남자 아이가 그 여자 아이와 헤어졌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 남자 아이가 그 여자 아이에게 질렸을 지도 모르고, 그 여자 아이의 눈이 좀.. 더보기
고령화 가족 엄마는 왜 흔히 '사리마다'라고 불리는 펑퍼짐한 주부용 속옷이 아니라 주니어용 팬티를 입는 걸까? 혹시 누군가 아직 엄마의 팬티를 봐줄 남자가 있다는 걸까? 그렇다고 쳐도 그게 과연 엄마의 엉덩이에 들어가기나 하는 걸까? 전남친이 이 작가의 팬이어서 이 책을 들고 대신 천명관 작가의 사인을 받았던 때가 있었다. 나는 이 책의 내용을 하나도 몰랐지만 작가 분에게 그 이야기를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아무리 여름이라고 해도 굉장히 텁수룩하고 새까만 인상이라서 깜짝 놀랐었다. 더 놀라웠던 건 그 작가가 '내 팬이라고 하는 젊은 여자는 이 분이 처음이다'라면서 자꾸만 나에게 작업을 거셨다는 거다(...) 나는 거기에다가 대놓고 "남친 이름과 제 이름을 같이 써서 싸인해주세요."라고 하였다. 그렇게 쓰면 절대 .. 더보기
명작의 탄생 사랑은 허기지만 섹스는 음식이다, 이게 저의 모토에요. 인간이 사랑 없이는 못 살아요. 늘 허기지고 외롭고, 그게 사랑의 욕구라면 섹스는 허기를 채워줄 수 있는 음식이고 먹는 건데, 그게 일상적인 거죠. 삶의 에너지를 주는 거고. 그래서 저는 섹스를 건강한 에너지라고 봐요. 이것을 이상하게 보는 게 사실 이상한 거죠. '왜곡된 성'이 이상한 거지, 섹스는 인간의 이상이고 본능이에요. 먹어야 사니까요. 이 책을 보면서 나는 오히려 영문학 공부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세계문학을 좋아해서 영어영문학과까지 가고 거기서 영미시와 많은 걸 배웠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나보다. 이 책은 우리나라의 유명한 소설가들을 모아놓고 있다. 심지어 젊은이들 사이에선 오래 전부터 악명높은 이문열씨까지. 이전에 보았던 .. 더보기
안녕 주정뱅이 "난 나는 안 믿어요. 하지만 우리 관주는 믿었어요." 흥미로운 점이 세 가지가 있었다. 비극적인 전개는 제목부터 안녕 절망선생이 생각나면서 충분히 예견되었다. 하나는 이 단편에 출현하는 여성들이 대부분 술을 마시면서 담배도 피웠다는 점이다. 안 피우는 사람은 딱 실내화 한켤레에서 미모로 강남을 주름잡는 사모님 두 사람이었는데 둘 다 상당히 비극적인 전개로 끝났다. 한 명은 대부분 두 집 살림을 한다고 소문난 비행기 조종사와 결혼해서 아이 없이 살고 있고, 또 하나는 성병에 걸렸다는 암시로. 주변에 오로지 술에 빠져 사는 분과 성병으로 자궁을 다 들어냈다는 소문이 심심찮게 들려오는 이상 이 이야기도 남 일 같지 않다;;; 책을 유심히 보다보면 술도 적당히, 담배도 적당히, 연애도 적당히 해 본 독신 여주.. 더보기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여성해방론 실상 모든 것이 변화하고 있는데도 우리와 관련된 것들은 결코 변하지 않으리라고 굳게 믿는다면 그것은 그저 착각이거나 무지한 것입니다.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클라라 체트킨, 블라디미르 레닌, 레프 트로츠키. 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영전에서라도 불러주고 꼭 끌어안아주고 싶다. 책을 읽으면서 점차 이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생겨나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한다. 300페이지 정도밖에 안 되는데 이 글 너무 힘들었다... 우선 가족들에게 들킬까봐 방구석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눈물 콧물 다 쏟으면서 궁상을 떠느라 시간을 너무 허비했고, 한장 읽고 생각에 잠기고 또 한장 읽고 또 생각에 잠기고, 이 책에 나오는 구절을 사람들과 공유하려다가 그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또 울고. 특히 어머니와의 대화가 너무 길었다.. 더보기
Axt no. 004 나는 아직 거리를 떠돌고 싶지 않았고 무얼 보더라도 앞으로도 떠돌고 싶지 않았다. 아마 죽은 자를 살리는 모습이라면 그런 것을 보기 위해 며칠 떠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미 죽은 자들이 말한 것은 나는 그런 것이 전부 남아있을 수는 없지만 어딘가에 풀과 가지 속에 남아 있는 것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남은 것은 나중에 오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들에게 힘을 줄 것이며 다른 길로 걷게 해줄 것이다. 나는 그런 것이 누구를 살릴 수도 있다고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일단 내가 최근에 겪었던 일들부터 이야기해야겠다. 내가 일하는 곳에서 시급이 늘어난 대신에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같은 부서 직원들 중에 나만 그렇게 되었는데, 사람들과 모여서 먹는 도중에 그 사건이 이상하다는.. 더보기
Axt no. 003 "질문의 핵심이 뭐야? 뭐가 궁금한 거지?" "다른 여자애들은 나처럼 아프다고 안 하냐고." "응?" "내가 계속 아프다고 했잖아." "아! 그래서 싫어?" "싫어." "왜? 왜 싫지?" "아프니까 싫다고. 도대체 몇 번을 더 말해야 알아들을 거야?" "아픈 게 더 흥분되잖아." "무슨 소리야. 아픈 건 아픈 거야." "네가 아직 뭘 모르는구나. 그건 아픈 게 아니라 좋아죽겠는 거야." "도대체 어디서 뭘 들은 거야? 내가 아니라는데!" "아니야? 정말 아니야?" 어느새 담배를 끈 동준이 실실 웃으며 다시 내 곁으로 기어왔다. 나는 이불을 둘둘 감은 채 벽 쪽으로 달라붙었다. "정말 아닌지 확인해볼까?" 나츠미가 똑똑한 게 아니라 너네가 멍청한 거다 이 오빠들아 ㅡㅡ 아프다고 이 오빠들아 ㅡㅡ 아프다고 .. 더보기
Axt 2015년 9/10월호 악스트(Axt)(2015 9 10월호) 저자 은행나무 편집부 지음 출판사 은행나무 | 2015-09-02 출간 카테고리 잡지 책소개 소설을 위한, 소설독자를 위한, 소설가들에 의한, 격월간 소설 ... 아무거나 잘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거나 잘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그따위 말장난에 감복하는 꼬맹이가 아니다. 솔직해져보자. 절망과 체념을 반복해서 겪는 동안 욕망이 줄어들었다고 생각했다. 늘 내가 손해봤고 양보했다고 믿었다. 그런데 아닌 것 같다. 나는 나를 속이고 있었다. 내 욕망은 점점 세밀해지고 계속해서 구체적인 모양을 갖춰왔지 단 한 치도 작아진 적이 없었다. 내가 최근 들어 열성을 가지고 대하는 김덕희 작가. 그래, 내가 원하는 건 문학 속에서라도 대놓고 뻔뻔한 남자다. 숙취와 실수로 얽혀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