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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

Axt no. 004

나는 아직 거리를 떠돌고 싶지 않았고 무얼 보더라도 앞으로도 떠돌고 싶지 않았다. 아마 죽은 자를 살리는 모습이라면 그런 것을 보기 위해 며칠 떠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미 죽은 자들이 말한 것은 나는 그런 것이 전부 남아있을 수는 없지만 어딘가에 풀과 가지 속에 남아 있는 것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남은 것은 나중에 오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들에게 힘을 줄 것이며 다른 길로 걷게 해줄 것이다. 나는 그런 것이 누구를 살릴 수도 있다고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일단 내가 최근에 겪었던 일들부터 이야기해야겠다.

 내가 일하는 곳에서 시급이 늘어난 대신에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같은 부서 직원들 중에 나만 그렇게 되었는데, 사람들과 모여서 먹는 도중에 그 사건이 이상하다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갔다. 그러면서 내가 일하고 있는 방식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친다고 주장했다. 남들과 출근 시간도 다른데 심지어 쉬는 시간도 있다고. 난 그래서 받는 시급이 적은 데다가 진짜 본사에서 그렇게 정했으니 어쩔 수 없다고 이야기했지만, 속으론 울화가 끓어올랐다. 아니 본사에서 하라는 대로 해야 먹고 살 수가 있지, 나라고 뭐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노동부에 진정을 내던 내지 않던 내 선택이지 상담해오지도 않았는데 남들이 진정을 내라느니 내지 말라느니 대체 무슨 참견을 그리도 하는 것인가.

 

 서론이 길었지만 아무래도 악스트랑 상관이 있는 것 같아서 비유삼아 올린다. 생각해보니 이 질문의 결론은 이렇다. '대체 당신이 뭔데 남의 일에 참견하는가?'

 

 

 

 

  일단 이 일을 듀나에게 먼저 덧붙이겠다.

 

 인터뷰 하시는 사람들도 눈치채셨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전 한국에서 '성숙'이라고 부르는 과정을 아주 미심쩍게 바라보고 있어요"라고 한 건 이 기사를 비꼰 것이다. 왜 악스트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그들에게 달려드는 팬이던 안티팬들이던 당연히 연결시켜서 볼 거라 생각했나? 난 우연히 이 기사를 본 후에 악스트를 본 인물이지만, 어떤 기사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댓글로 남기지 않고 다른 잡지에서 흘리듯이 거론한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불쾌했다. 상당히 매너없는 행동이었다. 마스킹을 반대하는 그의 행위가 정말로 정당하다면 남들이 당신보고 성숙하다고 하던 미숙하다고 하던 무슨 상관인가?

 

기사: http://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2088248#cb

 

 고전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아무 의미 없다고 비꼬면서도 후반에 고전에 대해 언급한 건 명백한 그의 말실수이다. 일단 내가 그에 대한 지식이 없기도 하지만, 평론한다고 남들보다 내가 더 많이 뭔갈 안다고 해서 어떤 사회현상이나 영화작품에 대해 저렇게까지 길길이 뛰며 반대하는 건 좀 억지이지 않나. 이전에 별점 주는 걸 후회하고 있다고 언급했으면서 말이다. 꼰대라기보단, 어딘가 심각하게 자기 자신과 소통이 되지 못하는 자라고밖에 해석이 되지 않는다. 확실히 듀나 프로젝트는 흥미있다. 하지만 듀나같은 인물은 듀나 오직 하나만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어야 한다고 난 생각한다. 같은 전업 글쓰기이고 둘 다 예의가 없는데 듀나는 욕을 먹고 장강명은 욕을 안 먹어도 되는가에선 또 얘기가 다르기도 하지만. (난 장강명도 듀나도 싫긴 하다.) 어쨌던 한국인은 다들 자기 잘났다고 주장하는 게 종특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이거다. 문학에서 말고 다른 인터뷰자리에선 수위 좀 낮출 순 없는 거냐고. 난 딱히 악스트 망해도 상관없는데 따위로 이야기하는 듀나나 듀나 쪽쪽 빨기에 열광하는 듀나빠들이나 난 둘 다 이젠 정말 참을 수 없이 거북하다. 듀나처럼 되지도 못하고 사회에 섞여서 익명을 떨칠 수 없으니 그렇게 되는 빠들은 불쌍하다 인정하면서도...

 

 결국 문제는 등단제도인가, 싶기도 하다. 자신도 사이언스톨로지같은 사람이면서, 신도들을 거느리고 다니면서, 종교를 그렇게까지 비판하는 걸 보면 마치 자신은 종교로부터 벗어나 완전무결하게 순수하다고 주장하고 싶은 걸까? 마찬가지로 등단을 하지 않았다고 명백히 밝히면서 그에 적개심 비슷한 걸 품고 있는 듯했다. 등단하면 아무래도 사회에 섞여버리니까, 완벽하게 벽을 쳐서 막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어서 무의식적 열패감을 언뜻 본 것 같은데 과연 내 착각이었을까? 결론은 그의 태도 자체가 전혀 쿨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부터가 바로 본론이다. 악스트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서 내가 주목한 건 듀나가 아니라 듀나를 접한 백다흠 씨와 배수아 씨의 반응이었다. 실례이지만 워낙에 개성이라는 게 없는 그 듀나에게 농락당하는 두 사람이 너무 재미있었다. 내가 워낙 활자 중독이라 왠만한 책들은 끝까지 읽는데 그 습관이 후회되지 않는 몇 안되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이런 인터뷰를 따낸 것 자체가 악스트의 고난이도 수법인지도.

 

 

 

사실 이 때문에 1점 줄까 했는데 단편소설들이 좋았기 때문에 간신히 3점 준다.

연재소설들은 특히 악스트 문 닫으면 어디서 연재할지도 알 수 없으니... 

 

 그러나 '나 알아요?'(마치 관등성명이 뭐요?라는 질문을 보는 것 같았다.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충격이었다.)라던가 '여자에요 남자에요? 전 여성분같은데.'(아니 남자던 여자던 글만 맛나게 잘 쓰면 되지 그런 게 대체 무슨 상관인가. 몸의 성별은 남자인데 트랜스젠더여서 젠더는 여성이라면, 대체 듀나가 받은 상처가 얼마나 될지 제대로 헤아려 본 것이며, 만약 내 예상대로라면 또한 그 죄를 어떻게 씻을 것인가.) '송경아 작품 알아요?' 같은 질문은 정말 아니었다. 일본에서 야나기 나기는 야나기 나기고 클라리스는 클라리스지 '야나기 나기 혹은 클라리스 그들은 누구인가' 같은 걸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다. 오타쿠가 뭔지 모른다는 걸 감안해도 꽤 심각한 공격이었다. 야나기 나기나 클라리스의 정체가 밝혀진다면 익명성이 날아가기 때문에 그들은 더이상 야나기 나기나 클라리스가 아니다. 백다흠 씨와 배수아 씨는 의도치 않게 듀나를 공격했거나, 혹은 듀나의 밥줄을 끊으려 한 것과 마찬가지다. 난 명백히 전자라 본다. 아마 이런 인터뷰는 우리나라라서 가능한 것이라고 본다. 이런 점에선 듀나의 말이 맞기는 하다.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은 인터뷰를 그대로 싣는다면 그게 진정한 인터뷰라 할 수 있을까? 최대한 양보해서 듀나가 계속 자기 소설작품 이야기만 하는 인터뷰에 의도적으로 출현했다 할지라도 말이다. 이런 식이라면 어떤 오타쿠도 악스트에 글을 올리기가 불가능할 것이다. 싸튀충이라고 해도 일단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건 사람들이고 사람들은 의견을 쓴 거다. 또한 백다흠 씨가 악스트 말고 다른 데서도 활동한다 하더라도 악스트에 대해서 자신의 작품들만큼이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있지 않다 할 수가 없다. 결국 이번 악스트 2016년 1-2월호를 어떻게 흘려보내느냐에 따라 악스트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그러나 난 조금 힘들지 않을까 본다. 대체 아름다움이란 게 보편적이기나 할까? 냉수 한 잔으로 정신을 좀 깨운 뒤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면 될 것을.

 

 근데 그 전에 오스카 와일드 소개 중에 나온 아름다운 책과 아름답지 않은 책이라는 병크 발언에서 웃음이 터져야하는 거 아닌가? 싶다. 당신들이 도대체 뭐길래 잘 쓴 책과 못 쓴 책을 거론하세요, 라고 하고 싶지만 출처인 오스카 와일드 씨는 돌아가셨고 문제는 글 쓰신 분이 도대체 무슨 이유로 오스카 와일드의 많은 문장 중 하필 그런 걸 거론하셨냐는 거다. 등단한 글이 아름답다는 거냐? 우리나라 글 왜 그렇게 싫어하는 사람 많은지 이제야 알겠다고 할까. 이렇게 현명한 독자들을 당신들이 감히 악스트라는 잡지로 계몽한다고? 그런 정신으로 글을 쓰는데 아무리 작가의 사회적인 의견을 담는다고 한들 사람들이 받아들이겠는가? 잘 쓴 책, 잘못 쓴 책. 비싼 책, 싼 책. 두터운 책, 얇은 책. 큰 책, 작은 책. 잘 찰리는 책, 안 팔리는 책. 내가 읽을 수 잇는 책, (나만) 읽을 수 없는 책, 19금 책, 19금 아닌 책. 대체 이런 것들을 구별하는 기준이 뭔가? 잘 쓴 책의 기준이 뭔가. 100만부 이상 팔린 책? 베스트셀러로 선정된 책? 스테디셀러로 선정된 책? 잘 쓴 책은 독자 개개인이 주관적으로 평가한다. 그런 시대가 점점 오고 있는 것이다. 물론 고전(으로 선정된) 책 중에서도 좋은 책은 많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다 구식이다. 티벳 사자의 서를 끝까지 읽은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걸 마음 속으로 깊숙히 재밌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또 몇이나 될까? 진심으로 좋은 글을 쓰고 싶다면 일단 옛날 것이 좋은 것이여~ 신토불이~의 생각에서 하루빨리 벗어나는 게 좋다. 가끔 '김사인의 시시한 다방'에서도 '왜 현대 시인들이 (우리들은) 이해못할 추상적인 시들을 쓰는 걸까요? 이제 좀 그만했으면...' 따위의 말을 들을 때가 있는데, 정말 그만해주지 않겠는가. 토할 것 같다.

 

 그럼 마무리를 하자. 악스트는 일단 이것부터 정해야 할 듯하다. 악스트의 모임은 문학가들이 돈을 벌려고 겸사겸사 평론가가 되려는 모임인가, 아님 평론가들의 편협함을 깨 보려는 모임인가. 이걸 빨리 정해야 판타지 소설 작가들도 라이트 노벨 작가들도 초청해서 인터뷰를 해보고 소설도 청탁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난 악스트가 그런 잡지가 되길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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