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Human

안녕 주정뱅이

"난 나는 안 믿어요. 하지만 우리 관주는 믿었어요."

 

 

 

흥미로운 점이 세 가지가 있었다.

비극적인 전개는 제목부터 안녕 절망선생이 생각나면서 충분히 예견되었다. 

 

 하나는 이 단편에 출현하는 여성들이 대부분 술을 마시면서 담배도 피웠다는 점이다. 안 피우는 사람은 딱 실내화 한켤레에서 미모로 강남을 주름잡는 사모님 두 사람이었는데 둘 다 상당히 비극적인 전개로 끝났다. 한 명은 대부분 두 집 살림을 한다고 소문난 비행기 조종사와 결혼해서 아이 없이 살고 있고, 또 하나는 성병에 걸렸다는 암시로. 주변에 오로지 술에 빠져 사는 분과 성병으로 자궁을 다 들어냈다는 소문이 심심찮게 들려오는 이상 이 이야기도 남 일 같지 않다;;; 책을 유심히 보다보면 술도 적당히, 담배도 적당히, 연애도 적당히 해 본 독신 여주인공이 그나마 행복하게 오래 사는 듯하다는 느낌이 든다. (혹은 소설 중 하나인 이모에서처럼 그런 여자에게 도움을 받아서 살아가기도 한다.) 다들 하나에만 중독되지 말고 골고루 해보며 삽시다.

 두 번째는 집요하게 작품들을 이어가지만 자세한 언급을 피한다는 점이다. 비자나무 숲이란 소설집의 소설 중 하나인 길모퉁이라는 책에서 빚 때문에 위기에 몰리는 미용사 여자가 등장하는데, 실내화 한켤레에서 다시 그 미용사가 등장한다. 귀퉁이를 연상시키는 단어(원시)와 거울에 거꾸로 비치는 상도 다시 나와서 묘한 느낌을 자아낸다. 하지만 미용실은 길모퉁이 미용실보다 더 커진 느낌이고, 비자나무 숲을 보지 않았다면 전혀 그 친숙한 느낌을 알아보지 못할만큼 말을 아낀다. 제주도가 약간 우리나라 내의 일본 분위기를 풍긴다던 누군가의 말이 생각났다. 안녕 주정뱅이에서도 그런데서 미약하지만 일본 작풍의 냄새가 난다. 예를 들어서 일본의 이루마 히토마라는 작가가 있는데, 그가 쓰는 소설은 순문학 라노벨 느낌으로 계속 작품들을 연관지으려 한다. 예를 들어 이 블로그에서도 소개한 거짓말쟁이 미군과 고장난 마짱이라는 책에서 소녀와 탐정 소년이 아주 잠깐 나와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를 나누는데, 나중에 그들을 주인공으로 한 단편소설이 나온다. 그리고 그 소설을 토대로 또 다른 장편소설을 쓰기도 하고...

 비자나무 숲에서 가지 않은 길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그렸다면 안녕 주정뱅이에서는 가기 싫은 자리에 억지로 끌려가는 사람들을 그렸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선 비자나무 숲을 그려냈던 시절의 작가보다 어딘가 조금 더 성숙해 보인다고 할까. 그러나 확실히 그 날뛰는 비자나무 숲을 읽지 않는다면 이야기가 좀 루즈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삼인행에서만 노골적인 분위기가 드러날 뿐이고, 나머지는 마치 제임스 조이스마냥 결정적인 장면에서 말을 숨기고 감춘다. 그러면서 그 모든 걸 '비밀스러운 여성'이란 단어로 얼버무릴 참인 듯한데, 사실 남성들 중에서도 그런 여우같은 인간들 꽤 있다. 비자나무 숲 중에서 꽃잎 속 응달에 나온 것과 같은 민첩한 인간들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는데, 왜인진 모르겠지만 이 소설에선 등장하질 않는다. 술을 마시고 나서 둔해진 주인공들이 그런 부류들을 제대로 캐치해내지 못한 건지. 토미노 감독처럼 나이가 드시니 약해지신 건지. 작가가 혹시 가까운 사람에게서 '넌 너무 예민하단 말야' 같은 지적을 듣고 수그러든 건지. 다음 작품은 이보다 조금 더 기민해졌음 하는 바이다. 나는 그녀의 자기비하가 아니라 그 안에 숨겨진 그녀의 날뜀과 노골적인 예민함이 좋았다. 어쩌면 내 성격이 날뛰다보니 그럴지도 모르겠다.

'Human'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령화 가족  (0) 2016.07.20
명작의 탄생  (0) 2016.07.20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여성해방론  (0) 2016.03.04
Axt no. 004  (0) 2016.01.27
Axt no. 003  (0) 2015.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