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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

모항 생닭 중에서 그 저녁만 아니라면 당장 배드민턴 채를 낚아채고 싶어 제자리걸음인데 내 맘 알아챘는지 아가씨들은 셔틀콕 버려두고 손 뽀뽀를 날린다 셔틀콕은 막 끓는 물에서 꺼낸 암탉처럼 거지반 털이 뽑히었다 오오라, 닭집 달려가 내 닭털 주워 와서는 셔틀콕 만들어 주었으면 그러면 아가씨들은 삼촌, 배드민턴 쳐요, 팔짱 낄 것을 나는 못 이기는 척 어두워질 때까지 푸드득, 푸드득 날갯죽지를 적실 것이며 슬그머니 이름도 주고받을 것이며 사흘에 한 번씩 투석하느라 닭털 뽑는 짱구 형님 왕년의 전설도 풀어놓을 것이며 그러면 엄나무닭이고 배드민턴이고 다 잊고 초롱다방 병아리 같은 아가씨들과 고향이며 눈물이며 쏟기도 할 것을 다 진지하고 운동권의 슬픔이 티나는 글이며 슬프다 싶은 시 일색이면 솔직히 재미가 없다. 이미.. 더보기
여행이라는 참 이상한 일 유나이티드항공 여승무원들은 대개 체구가 큰 아주머니들이었다. 칙칙한 남색 유니폼을 입고 기내를 휘젓고 다니며 짐을 번쩍번쩍 들어 올리고, 엄한 표정으로 승객들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내리는 그녀들은 마치 그 옛날 버스 차장이나 학생주임 선생님 같아 보였다. 사실 나는 언제나 이런 여자들을 동경해왔다. 내게 일하는 여자를 떠올릴 때의 이미지란 잘 빠진 슈트에 하이힐을 신고 당당하게 도심을 활보하는 소위 '커리어 우먼'들이 아니라, 구식 유니폼에 투박한 구두를 신고 전차의 차장으로 일하는(꼭 전차의 차장일 필요는 없지만) 여성 노동자들이다. 규칙을 위반하는 행위는 호락호락 넘기지 않겠다는 단호한 눈빛과 튼튼한 턱, 듬직한 체구, 절도 있는 동작, 위엄 있는 말투, 어떤 일을 하건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 더보기
세계음치 어디가 특별하냐면 렌즈 대신에 유리를 넣는 평범한 도수 없는 안경과는 달리, 렌즈가 있어야 할 곳에 아무것도 없다. 즉, 테만 있는 안경이다. 눈이 좋으냐면 그렇지도 않고 엄청난 근시다. (...) 콘텍트렌즈를 끼는데 굳이 도수 없는 안경을 끼는 이유 중 하나는 안경이 없으면 얼빠진 얼굴로 변하기 때문이다. (...) 그 결과, 내 경우는 얼굴이 도라에몽의 '노비타(한국 이름 노진구)'처럼 변했다. 고로 안경을 벗으면 얼굴이 전혀 긴장되지 않는다. 오키자리노 마마데같은 말은 아는데 오키자리니사레로 나오니 적응 안되는건 역시 내가 일본 애니를 봐서인가... 세카이오 마모루. 애니 일본어는 역시 여러모로 굉장하다는 느낌이랄까. 의외로 주변에 오키자리니사레루라는 말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흠. 외워둬야겠.. 더보기
남자는 쇼핑을 좋아해 서울과 부산 등 한국의 대도시를 방문할 때마다 생각한다. 어째서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풍요해지면 자국 요리만으로는 부족해서 이탈리아와 프랑스 요리 레스토랑에 가고, 런던 스타일의 펍이나 바에서 술을 마시고 싶어할까. (...) 명동 골목에는 맛있는 노점이 여기저기 있다. 노천 의자에 앉으면 먼저 홍합 국물이 나온다. 나는 오돌뼈와 닭똥집 안주에다 참이슬을 마셨는데 정말 맛있었다. 게다가 가격은 넷이 먹었는데 4000엔 정도였다. 생각해보면 난 단순노동이 천직일지도 모르는데, 무언가 작은 것들이 바닥에 확 쏟아지거나 아님 유리가 깨져서 파편들이 쏟아지는 등 도저히 빗자루나 청소기를 쓸 수 없는 상황에 처할 때 난 그런 걸 잘 줍는다. 그런데 사람들은 기겁을 한다. 귀찮지 않느냐, 손 다치지 않느냐 기타 등등.. 더보기
활동가의 일기 임신을 하신 미등록 필리핀 여성분이 지난달 9월에 센터를 방문했다. 일반 여성병원을 다니다 고혈압으로 아이가 위험한 상태가 되어 2차병원으로 가야하는데 미등록이기 때문에 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의료비지원요청으로 오셨던 것이다. 그리고 몇 번의 안부 전화 후 그분은 나에게서 잊혀 갔다. (...) 방문객-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아 이거 싱크로율이 ㅠㅠ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이런 말이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외부의 사람을 내부로 .. 더보기
삼성판 세계문학전집 세계수필선 굶주림을 걱정한다는 염려 따위는 전연 없고, 또 남의 비위를 맞추기 위하여 무슨 짓을 한다거나 무슨 말을 한다거나 따위는 떳떳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마치 귀족이나 다름없는 아이들의 무관심이야말로 인간성 본래의 건전한 태도이다. 객실의 소년은 극장의 관객에 해당된다. 아무런 구속도 없고 책임도 없이 자기가 앉아 있는 한구석으로부터 자기 곁을 지나가는 사람이나 사건을 바라보며, 소년다운 민첩하고도 간략한 방법으로 좋다, 나쁘다, 재미 있다, 바보 같다, 멋있다, 귀찮다 등등 그들을 심판하고 그들의 가치를 단정한다. 결과나 이해 관계 따위에 관해서는 전연 무관심하며, 자주적인 순수한 판결을 내릴 뿐이다. 우리들이 소년의 비유를 맞추지 않으면 안되며, 소년이 우리들의 비위를 맞추지는 않는다. (..... 더보기
불온한 검은 피 출근 나는 지금 목숨을 건다. 얼굴을 마주한 세상과 여자와 술값과 연탄가스에. 나의 꿈은 언제나 섬이며, 선착장의 붉은 깃발이며, 운명처럼 사라진 고향이다. 왜 가난은 항상 천재이며, 고독과 번민이 천재여야 하나. 사랑을 일삼기에도 난 시간이 없다. 서커스에서 춤추는 용과 나는 다를 게 없다. 뭐 시인 만세라고 빌어먹을 너희들은 나를 학생이라고 부르고, 허 군이라고 부르고, 가끔은 젊은 시인이라고 부른다. 독일이 폭력과 마약에 시달린다고, 갈 놈은 다 가는데 나는 지금 출근을 한다. 이해하지 못한 채 끌려간다. 언제부터 너희들은 내가 가는 곳마다 버티고 있었나. 왜 나는 목숨을 거나. 도대체 나는 왜 아버지를 닮고 있나. 나는 지금 병원에 간다. 목숨을 걸었으므로, 바람처럼 가야 하므로, 발자국을 지워야.. 더보기
급소 비용 때문에 빠듯하게 짠 일정 안에서 각 나라의 수도와 국립박물관, 유적지를 찍고 다니느라 무슨 서바이벌 게임을 치르는 것 같았다. 단 한 군데라도 빼먹으면 '유럽일주'를 하지 않은 게 될까 봐 몸살기가 있어도 일정을 조정하지 못했다. '가봤다'를 증명할 일이라도 생길 줄 알고 입장권과 안내서 따위를 악착같이 챙겼고 매일 다른 옷을 입고 셀카를 찍어댄 뒤 곧장 페이스북에 전시했다. 친구들은 내가 게시한 사진과 글에 별 호응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런 철저한 무반응이 부러움과 시샘의 메아리라 해석하고 더 많은 사진과 글을 올렸다. 여행은 그렇게 일상과 마찬가지로 관성으로 진행됐다. 세계 곳곳의 역사 지리 문화 사회 정치 경제 등의 정보가 데이터베이스에 취합되어 있고 따라잡기 불가능한 속도로 매일 업데이트.. 더보기
사랑 못난 놈들끼리 중에서 언제 봐부셔분네 여럽소야 내가 이라요 찌껍시롭게 요라코롬 사요 상거시 아니고 숭내나 내고 산단 말씸이요 어차든지 살아볼라고 어영부영 안 허고 몽니쟁이 소리 안 들을라고 오짐똥은 개리고 산단 소리 들을라고 팽야 목사님이나 지나 역실로 보라고 빼빠지게 안 살었소 그란디 인자 더는 못 살겄소 맹탕 헛짓거리라 이눔의 인생은 엇나가부렀소 나가 미련 곰 차두요 니미럴 눔의 시상 1. 달팽이집 2003년 여름에 돌아가신 무등산 증심사 일철 스님 이야기라고 한다. 사실 스님과 목사 사이라면 다들 사이가 안 좋은 줄 알지만 의외로 만나보면 서로 좋은 관계가 되는 걸 여러번 본 적이 있다. 특히 이 시에선 친구를 아끼는 목사님의 마음이 애잔하다. 자신은 집이 아니라 여행하다 독수리가 없는 곳에 숨져도.. 더보기
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 가족극장, 그러엄, 이내 익숙해진대두...... 고옫, 도마는...... 칼, 때문에 있는 거야...... 칼 맞는 재미로 사는 거라구...... 난자당하는 맛에, 그래...... 금방, 익숙해질 테니...... 두고봐, 일단...... 피 맛만 보게 되면...... 그래, 도마는...... 피를, 먹고 사는 거야...... 난도질의 현장에서...... 셀 수도 없는 칼자국들이 피를...... 처가...... 흡반이 되지, 되고 말지...... 그렇게...... 피...... 없이는 못 살게...... 되는 거지, 그러엄...... 이내 익숙해져, 도마처럼...... 가족극장이라는 연작시에서는 어머니가 나오지만 대체로 자신의 어깨에 올라타 꼼짝도 못한다는 이미지이고, 아버지는 이미 무슨 짓을 저질렀다는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