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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rakami Ryu

남자는 쇼핑을 좋아해

서울과 부산 등 한국의 대도시를 방문할 때마다 생각한다. 어째서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풍요해지면 자국 요리만으로는 부족해서 이탈리아와 프랑스 요리 레스토랑에 가고, 런던 스타일의 펍이나 바에서 술을 마시고 싶어할까. (...) 명동 골목에는 맛있는 노점이 여기저기 있다. 노천 의자에 앉으면 먼저 홍합 국물이 나온다. 나는 오돌뼈와 닭똥집 안주에다 참이슬을 마셨는데 정말 맛있었다. 게다가 가격은 넷이 먹었는데 4000엔 정도였다.

 

 


생각해보면 난 단순노동이 천직일지도 모르는데, 무언가 작은 것들이 바닥에 확 쏟아지거나 아님 유리가 깨져서 파편들이 쏟아지는 등 도저히 빗자루나 청소기를 쓸 수 없는 상황에 처할 때 난 그런 걸 잘 줍는다. 그런데 사람들은 기겁을 한다. 귀찮지 않느냐, 손 다치지 않느냐 기타 등등. 그렇지만 난 시간 때우기 좋은 일들을 결코 귀찮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귀찮아하는 건 쇼핑이다. 특히 옷 고르기. 아무래도 이 삶은 내가 어느 정도 원해서 고른 삶인가 보다. 에휴...


꼭 넥타이를 맬 필요는 없지만 역시 셔츠를 입으면 뭔가 허전한 게 넥타이로, 20대 때엔 나 역시 매고 다녔다. 없으면 허전했다(??) 인턴 2달반인가 3달 다니고 정직원 제의 받고 수락하고 나서 바로 짤렸다는 분은 정장을 사 입고 싶어서 직장을 다녔다고까지 했었다. 그때는 돈벌면서 글쓸 수 있을 거라 생각한 직종이 웹기획자라고 생각했다나. 그러나 정직원 제의 받으니까 '이걸로 돈 벌고 글쓸 시간도 있을라면 최소한 2년은 미친놈처럼 일해야 되는데?' 라는 생각이 퍼뜩 지나갔다고 한다. (인턴때 회사에서 4시간 자면서 일했다고 하는데 일단 내 체력으로는 출근 첫날에 병원 실려갈 케이스다.) 아무튼 그러고 나면 글을 쓸 수는 없겠다, 뇌가 다 굳겠다 느껴서 최근엔 글쓰기에만 전념하시고 계신다. 그렇게 치면 전 여자정장 입기 싫어서 정장 입는 회사를 안 다니는 건데... (근데 정말로 그것 때문에 회사 때려칠만큼 싫다. 일단 가슴 부위가 불편하고 엉덩이가 낀다. 내가 살 빼서 해결되었음 살을 뺐을텐데 이건 뼈 문제라 해결이 안 되더라.) 정장 몰까.

블루셔츠를 보기 이전에 무라카미 류는 블루종을 입었다 한다. 블루종이라고 해서 파란색인 줄 알았더니 검은 점퍼식 조끼였다. 우리 집에도 비슷한 건 있는데. 그렇다고 내가 돈이 썩어난단 얘기가 아니다. 옷은 무작정 비싼 걸 산다는게 제 신념이다. 그리고 비싼 것들은 무조건 손빨래한다. 그러다보니 요새는 정말 살 만한 옷이 없더라. 유니클로에서도 옷 사봤는데 흐물흐물한 느낌.

그러고보면 정말 부자인 사람들은 애초부터 현명한 소비를 한다는 느낌이다. 일단 무라카미 류는 겉보기에는 옷을 막 사는 것 같아도 이탈리아 명품 가게는 절대 들어가지 않는다 한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보통 사지만 이탈리아 내부에서 자기네들만의 재료와 방식을 고집하는 가게에서 꼭 의류를 산다고 한다. 책에선 그 가게 이름을 말해도 사람들이 알지 못한다 말하지만 내가 보기엔 일부러 숨기는 것 같다. 무라카미 류 작가가 셔츠를 사는 곳이라고 일단 대중들에게 이름이 나면 외국인들이 너도나도 일단 사려고 몰려들어 신이 난 가게가 외국인들이 사는 실크셔츠 따위를 늘리고 블루셔츠를 만들지 않는다면 골치아파질 테니까. 무엇보다 넥타이는 꼭 면세점에서 산다는 점이 제일 훌륭하다 생각했다. 남성 중에서, 아니 여자 중에서도 이렇게 섬세하게 쇼핑을 하는 사람은 드물지 않나 싶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태국에서 보석 사기를 당한 줄도 모르고 당당히 우리나라로 돌아와 금은방에 보석을 펼쳐놓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40~50만원에 그 보석을 샀지만 사실은 2만원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는 보석들이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많이 먹히는 태국의 전형적 사기라던데, 여기서 졸부의 비애를 볼 수 있는 듯하다. 이런 속물적인 책에서 자본주의 초기 정신의 일본과 자본주의 후기 정신의 한국을 비교하게 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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