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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Essay

사랑

못난 놈들끼리 중에서

언제 봐부셔분네 여럽소야
내가 이라요 찌껍시롭게 요라코롬 사요
상거시 아니고 숭내나 내고 산단 말씸이요
어차든지 살아볼라고 어영부영 안 허고
몽니쟁이 소리 안 들을라고
오짐똥은 개리고 산단 소리 들을라고
팽야 목사님이나 지나 역실로 보라고
빼빠지게 안 살었소
그란디 인자 더는 못 살겄소
맹탕 헛짓거리라 이눔의 인생은
엇나가부렀소 나가 미련 곰 차두요
니미럴 눔의 시상

 

 



1. 달팽이집

2003년 여름에 돌아가신 무등산 증심사 일철 스님 이야기라고 한다. 사실 스님과 목사 사이라면 다들 사이가 안 좋은 줄 알지만 의외로 만나보면 서로 좋은 관계가 되는 걸 여러번 본 적이 있다. 특히 이 시에선 친구를 아끼는 목사님의 마음이 애잔하다. 자신은 집이 아니라 여행하다 독수리가 없는 곳에 숨져도 상관 없다고 시인은 앞에서 서술한 적이 있다. 그러나 친구의 죽음은 어떻게든 막으려 하고 되려 살뜰히 챙기는 모습에서 타자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2. 가시

현재 난 사랑니가 있다. 옛날 치과에선 뽑으란 말을 잘 안 했는데 요즘 치과에서는 갑자기 뽑으란 말이 겁나 많다. 아프지도 않은데 미리 사서 걱정들을 하신다. 너무나 친절하신 건지 아님 돈을 벌려는 수작인지. 이게 자라서 훗날에 엄청난 고통이 생긴다면 이제 성장판마저 닫힌 내 키도 같이 자라야 제로썸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게 내 생각이다. 사랑니 있는 자리가 나중에 무지하게 아프면 곤란하다 하지만 그도 인생 살면서 한번쯤 겪어볼 고통이 아닐까. 사실 괜히 그 말 듣고 사랑니를 뽑다가 더 큰 고통을 겪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그러고보니 괜히 들쑤실 필요 없는 건 사람들의 일도 마찬가지 아닐까?

 

3. 술집과 병원

아버지도 술을 좋아하고 장녀도 술을 좋아하여 매우 고민중이신 어머니조차도 '사랑이 술 마시는 이유라면 인정하지!'라고 깔끔하게 후기 남기신 시이다. 마중물도 그렇지만 놀랍게도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한번쯤 무명으로 나돌았을 글귀들이 많다. 이름 좀 올려달라 제가 썼다고 댓글 한 번씩 달 만도 한데 용케 넘어가셨네. 내가 산 코코아 하나 SNS에 찍어 올리는데도 생크림이 올려져 있다 무심코 허언을 던지는 나로선 깔끔한 그의 성격이 부럽다. 어쩌면 자발적 가난이란 부자가 가난한 척하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자신의 것이라 확실히 주장하지 않는 게 아닐까.

4. 선풍기

상으로 금반지를 탈까 싶어 다른 교회로 갔다가 바가지만 타고 돌아온 몇몇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교회에 가지 않고 임의진 목사님의 교회에서 끝까지 남은 할머니들은 참으로 대단하다. 그러나 다른 교회에 갔던 할머니들도 나중엔 양심에 찔려 그 바가지를 모두 임의진 목사님께 주었다고 하니 그 분들도 모두 대단하다. 나는 요행이 없어서 도박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도박하는 성격이었다면 그 다른 교회에서 타온 바가지마저 끝까지 임의진 목사님께 주지 않았을 것이다. 비트코인 현상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든다. 나는 돈도 없고 더군다나 주식을 하지 않기 때문에 돈을 넣지 않았다. 그러나 그 돈을 다른 사람들에게 기부하진 않았다. 열심히 책을 사서 내가 읽은 뒤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고는 있지만 차라리 실질적인 빵을 사주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그들을 위해서 책을 추천해주지만 실질적인 일은 이제 거의 하지 않는다. 나도 어찌보면 비트코인에 투자하는 사람들마냥 선풍기를 끌어안고 놓지 않는 사람들 중 하나이다. 그나마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니 다행인 것만으론 사람이 성장할 수 없다. 고로 하이데마리 슈베르머의 책이라도 읽고 서평을 올려야겠다. 그 이상 해 줄 수 있는 게 없네.

 

무덤 중에서

강물 흐르고 존 바에즈와 둘이 걷는다 The River In The Pines 내 마음대로 우리말로 옮겨서 아니 거진 짓다시피 해서 부르는 노래, 화답이라던가 솔숲 사이로 들장미가 고개짓 핫다 똥 딱지 붙은 송아지는 놀라서 단댓바람으로 어미를 찾고 천리향 고것 향내가 좋아라 쇠똥 밟는 줄 모르고 진군이다 홍송 군락 불그작작 아침 술판인가 뒤틀린 손마디로 이슬주 한잔 걸쳤구려 서런 일 있으면 내놓고 울어버리지 애먼 먹구름이나 붙잡고 저 무슨 황막한 밀봉이런고

(...) 용기 있는 두 개의 긴 잠이 이팝나무 뿌리를 베고 쓰러져 있다
살아서는 한없이 불행했을 테지만 죽어서는 행복한 아ㅡ 너희 두 목숨, 내 사랑 니콜 키드만은 무조건 좋아 영랑사진관 옆 비디오 집에 가서 콜드 마운틴을 빌렸다 수염을 기른 내 모습인 주드로도 반가워 그러나 총성이 울렸고 무덤이나마 그리웠다 여기 이 무덤인가 까마귀 내려앉은 굼깊은 숲속
덤벙거리다가 향 한대 준비 못했네 천리향을 대신해도 괜찮겠지

 

 


기대 안 하고 무심코 음악을 들었는데 너무 좋았다. 시도 아주 좋으니 찾아서 끝까지 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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