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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Essay

바람의 사생활

여전히 남아 있는 야생의 습관

서너 달에 한번쯤 잠시 거처를 옮겼다가 되돌아오는 습관을 버거워하면 안된다

서너 달에 한번쯤, 한 세 시간쯤 시간을 내어 버스를 타고 시흥이나 의정부 같은 곳으로 짬뽕 한 그릇 먹으러 가는 시간을 미루면 안된다

죽을 것 같은 세 시간쯤을 잘라낸 시간의 뭉치에다 자신의 끝을 찢어 묶어두려면 한 대접의 붉은 물을 흘려야 하는 운명을 모른 체하면 안된다

자신이 먹는 것이 짬뽕이 아니라 몰입이라는 사실도, 짬뽕 한 그릇으로 배를 부르게 하려는 게 아니라 자신을 타이르는 중이라는 사실까지도

 

최근 짬뽕 먹었는데 맛있기도 했고.
또 내가 좋아하는 색 중 셋 안에 드는 빨간 색도 나왔고.
시흥은 (동이) 내가 살았던 데고 의정부는 외할머니가 살고 계신 곳이고.
무엇보다 무심코 읽다가 세번째 문단에서 갑자기 심장이 훅 교통사고 당해버려서 올렸다.
기타 보통 직장에서 일하다 너무 힘들어서 쉬면 최대 3달 걸리고 현재 사는 데서 서울 가러 버스 탈 때 3시간 걸리는 것까지 많이 비슷하다;;
(여러분 그래도 짬뽕은 제대로 된 차이나타운 같은 곳에 가서 드셔야 맛있습니다. 무조건 재료 많이 넣는 곳으로...)

 

 

 


팟캐스트에서 여행길에 여자를 샀다는 등 이상한 이야기를 하길래 한동안 굉장히 싫어하는 사람이었는데, 그래도 글에는 아닌 척 가식을 떠는 모습이 하도 신기해서 일단 읽어보자하고 시집을 들었다.


그리고 이 시집에 있는 시 외면이 그 당시 제일 좋았다. 친구에겐 절대 돈 빌려주지 않는 게 내 신념인데, 나와는 다른 생각을 하는 누군가가 나와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다는 게 너무 실감이 안 난다; 

 

 

 


저자는 한결같이 인연을 짓기를 거부하고 있다.



여행을 가도 사람들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이 그에게 말을 더욱 적극적으로 건네는 것 같지만(...) 그는 필요한 말만 하고 딴청을 짓는다. 딱 한번 감옥에서 저자가 아닌 다른 사람을 찾는 편지가 저자의 집으로 왔을 때 제대로 된 답신을 보낸 듯 하지만, 답장이 돌아오지 않는다. 평론에선 저자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독 때문에 사람들에게 가까이 가길 거부한다고는 하지만, 대림에서의 일을 보면 어쩐지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보면 저자가 되려 상처받는 것 같기도 하다. 혼행이 유행이 된지 오래인 지금, 혼자여서 외롭냐 등등 아무렇지 않게 상대방을 상처주는 말을 툭툭 던지는 남들에게 상처받지 않으려면 혼행자들은 이 저자를 본받아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저자는 이미 친한 사람들과 더욱 깊은 인연을 쌓는데도 소홀하지 않다. 그는 히키코모리도 아니고, 아싸도 아니다. 저자는 나름대로 자신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어쨌거나 2006년에 출간해서 나오는 정서가 2018년에 일상으로 정착한 걸 보면, 12년 분량의 대예언이라 봐도 좋겠다. 이 정도라면 문인으로선 성공한 삶이지 않은가 싶기도 하고.

 

나비의 겨울 중에서

누군가 내 집에 다녀갔다
화초에 물이 흥건하고 밥 지은 냄새 생생하다
사흘 동안 동해 태백 갔다가
제천 들러 이틀 더 있다 왔는데
누군가 내 집에 다녀갔다

누군가 내 집에 있다 갔다
나는 허락한 적 없는데 누군가는 내 집에 들어와
허기를 채우고 화초를 안쓰러워하다 갔다

누군가는 내 집에 살다 갔는데
나는 집이 싫어 오래 한데로 떠돌았다
여기서 죽을까 살까 여러번 기웃거렸다

 

 

 
대체로 좋은 시집에서는 빈집에 관련한 시가 꼭 한번은 나오는 듯하다. 이번 빈집에 관한 작품도 인상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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