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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Essay

불온한 검은 피

출근

나는 지금 목숨을 건다. 얼굴을 마주한 세상과 여자와 술값과 연탄가스에. 나의 꿈은 언제나 섬이며, 선착장의 붉은 깃발이며, 운명처럼 사라진 고향이다. 왜 가난은 항상 천재이며, 고독과 번민이 천재여야 하나. 사랑을 일삼기에도 난 시간이 없다. 서커스에서 춤추는 용과 나는 다를 게 없다. 뭐 시인 만세라고 빌어먹을 너희들은 나를 학생이라고 부르고, 허 군이라고 부르고, 가끔은 젊은 시인이라고 부른다. 독일이 폭력과 마약에 시달린다고, 갈 놈은 다 가는데 나는 지금 출근을 한다. 이해하지 못한 채 끌려간다. 언제부터 너희들은 내가 가는 곳마다 버티고 있었나. 왜 나는 목숨을 거나. 도대체 나는 왜 아버지를 닮고 있나. 나는 지금 병원에 간다. 목숨을 걸었으므로, 바람처럼 가야 하므로, 발자국을 지워야 하므로, 나는 지금 목숨을 건다. 지중해에 태어나지 않았으므로.

 

 


지중해에 가려면 돈 내고 여행해야 함~

 

여행을 가기보단 정착을 하는 게 좋음~
아니다 정착을 해도 그것이 삶이 되는 게 아니다 넌 천성이 한국인이라 거기서도 빨리빨리할거야~
스트레스 안 받고 지중해 살려면 죽어서 다시 태어나라~
그러나 난 출근 ㅠㅠ

 

 


구상은 첫번째로 프란시스 베이컨을 좋아해서 주목했다. 

 

두번째로 실화는 아닌 것 같지만 이라거나 장담할 수 없으나 같은 문구도 있는데 부러 '책임질 수 없지만'을 쓴 그 어투가 마음에 들었다.
세번째로 문장이 상당히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타자기로 타이핑했다더니 정말 이 시를 타이핑해보면 고고한 분위기가 흐를 듯하다. 김경주 시인과 비슷하네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알고보니 이 시 후기를 김경주 시인이 써줬더라 ㅋㅋㅋ

 

 


고통의 매혹과 악습에 고개가 끄덕여 지려면 얼마 정도의 성숙과 시간이 필요한가.

 

이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월급과 꿍쳐놓은 돈의 액수를 공개하길 꺼려하듯 말하기 곤란한 듯하다. 빛을 피해 돌아다니면서 세상 사람들이 왜 사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는지 궁금해하는 시인조차도 내가 물어보면 선뜻 대답하기 곤란해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이렇게 시로 풀고 있을 테지만.

 

 


요즘엔 내 주변 사람들, 전애인들, 두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동창생들, 가족들을 용서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사람들이 살아왔던 전날에 대해 글을 쓴다면. 나에게 이메일을 써서 안부를 전했던 사람이 있었다. 나를 원망한다면, 나에게 미안하다면, 나에게 조금의 감정이라도 있다면(없으면 그런 이메일을 쓰진 않았겠지.) 글을 써라. 그런 말을 해주고 싶었다. 물론 답장은 해주지 않았다. 누군지 기억도 안 나는데 답장해주는 것도 미안하고. 

 

유달리 장례식에 관한 시가 많다. 쭉 훑어보는데 권진규의 장례식이라는 시가 있었다. 유일하게 장례식에 이름이 적혀있는 것도 독특하고 모차르트의 이름이 거론된 것도 신기했다. 도서관에 검색해봤더니 그를 소개하는 것 같은 책이 있는 듯하다. 흙으로 조각상을 만든 사람이라 한다. 한번쯤 본 듯한 작품이었다. 나중에 한번 빌려서 볼까. 그러고보니 자주 어깨가 빠졌거나 없는 사람들의 군상이 자주 나오는데 이 조각상을 보고 느낀 점이었나. 하기사 어딘가 사람이 축 늘어진 몰골이긴 하다.

시인의 이름이 관심을 끌었다. 허연이라니. 연이라는 이름이야 있을 법하지만 성과의 밸런스가 기묘하다. 허연시를 반대로 발음하면 시허연이지 않은가. 직업도 어째 시인으로 선택했는지. 빼도박도 못하게 허옇게 될 수밖에 없다. 그에 대한 항거인지 또 시집 이름은 검은 피랜다. 표지도 검다. 내용을 보면 빛도 피해 다닌다고 한다. 궁금해서 자연히 눈이 갈 수밖에 없는 책이었다. 그런 책은 일부러 잘 안 잡지만 또 우연히 허연을 산문으로 접했다. 그 굉장히 어머니 중심적인 산문이 의외로 좋아 시집까지 읽게 되었다. 타자기에 대한 로망도 한몫했다. 이 시집에 담긴 시를 쓸 때 타자기로 쳤다더라.

 

진부령

걸으면 산이고
또 다시 산이다
그리고 미칠 것 같은 눈이다
눈발은 지쳐 쓰러진 것들의
체온으로부터 오고
어디에도 없는 눈 덮인 이 길이
잡목 숲에 버리고 온
그대의 마음이란 말인가
주고받았던 힘이란 말인가
뒤돌아보면
채 닦이지도 않던 눈물만 얼어붙어
먼 불빛들 사이
우뚝 서 있어라. 운명처럼
그대를 사랑한다
어디에도 희망은 없으므로

 

 

 


그러나 저번 해엔 눈이 오지 않았네요ㅡ.

여름에 오랫동안 물이 공급되지 않을 것 같아 걱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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