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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tasy&Comics

태양의 탑 2

 


태양의 탑 2 TOWER OF THE SUN

저자
전민희 지음
출판사
제우미디어 | 2009-12-1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형태가 없는 것을 빚어내어 독자의 손에 쥐어주는 작가.일본,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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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내 세계 안에 있다는 것을. 난 내 세계를 완전하게 지킬 거야. 그러니 거기서 나가지 마라. 그럼 식사 잘 하고 와."
키릴로차는 말문이 막힌 채 식당을 나가는 일츠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물론 그들 둘은 어려서부터 같은 공간에서, 많은 이야기를 공유하며 살아왔다. 일츠는 그것을 '내 세계'라고 불렀다. 나쁜 뜻 같지는 않았지만 묘하게 마음에 걸리는 말이었다.- p. 34

 



 


태양의 탑을 읽는 독자들 모두가 만장일치로 일츠일 것이라 추정하는 일러스트.

똥폼은 잘 잡지만 소설상에선 퍽이나 못난 놈이다.


 분란의 시대가 찾아온다. 일츠는 친구들과 함께 조국인 로존디아와는 다른 나라에 가서 교육을 받고 있으면서도 틈틈이 서신을 받으면서 나라의 정세를 공부하고, 남들 몰래 마법을 배우며, 난세에 자신이 앉아있을 자리를 확보한다. 그러나 세계가 만만치 않다보니, 그는 부득이하게 키릴의 세계도 짓밟게 된다. 고민 끝에 결국 그는 모든 악당들이 그렇듯이 처리를 잘못하게 된다. (추측컨대 클라리몽드와의 거래때문에) 분노한 키릴을 그대로 놓아주게 된 것이다. 키릴의 뛰어난 마법 자질을 경계하기도 하지만, 고대 네냐족일 가능성이 있으니 약할 때 당장 뿌리를 뽑아야 한다는 동조자 카의 반대에 '이 녀석이 언제 일어나서 송곳니를 드러내던 상관없어, 또 쳐죽이면 되니까.'라는 말까지 남기는 여유를 보이며. 

 거기까지는 좋다. 일츠에게도 인간적인 면이 있었다, 라고 치면 그냥 넘어갈 수 있으니까. 그러나 이 녀석이 못난 놈인 이유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도 정치적 흐름에 휩쓸린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대로 인정한다. 자신은 로존디아의 전제 정치를 이끌어가는 하나의 말이기 때문이라 한다. 그는 그러므로 자신이 악이라고 하더라도 별 수 없지 않은가 주장한다. 자신의 의사가 100% 개입되지 않은 학살이니, 언뜻 들을 때 그 말은 합당하게 보인다.

 그러나 그는 카뮈의 이방인이 아니다. 뫼르소는 햇빛이 너무 밝아 짜증이 치솟자 그냥 앞에 가던 지나가던 인간 한 명을 죽인 것 뿐이다. 그게 그가 살인한 이유의 전부다. 하지만 그는 오랫동안 자신의 그림자로 여겼고, 자신과 궁극적인 의견은 똑같을 거라 여긴 키릴이 성장하면서 점차 의견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짜증을 내고 있다. 요컨대 마음의 내부에서 오랫동안 묵혀뒀던 감정이 악취를 풍기면서 터져나온 것이다. 키릴에게 가한 '정신말살'은 일츠의 마음 속에 꼭꼭 숨겨진 그의 진심이다. 아무래도 그도 당시엔 나이가 어리다보니 말을 해도 무슨 의미를 함축하는지 모르는 듯한데, 언제 어떤 계기로 그걸 깨닫게 될지 흥미진진하다.

 사실 키릴이 받는 대가가 너무 커서 문제이지, 이 녀석도 그렇게 떳떳한 놈은 아니다. 태양의 탑 1권 맨 처음에 처형당하는 알스노아 아가씨는 사실 키릴 패거리 중 하나인 프란디에의 사촌누나이다. 그런데 그녀가 이렇게 의미있는 장면을 연출하게 될 줄은 몰라서 나도 깜짝 놀랐다. 방학을 맞아 친구들과 함께 돌아온 키릴과 같이 무도회에서 춤을 출 때, 그녀는 가난한 백성들의 근심에 관해 물어보다 말이 통하지 않자 포기한다. 이는 태양의 탑에서 직접적으로 말하듯이 키릴의 순수함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귀족 신분인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기에 다른 삶엔 무지한 채로 남아버리기로 결심하는 키릴의 묵인을 상징한다. 놀랍게도 영문학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 장면은 제임스 조이스가 쓴 <더블린 사람들> 단편 중 하나에서 가브리엘과 아이버스가 만나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가브리엘은 새 책을 받고 싶어 아일랜드의 진절머리나는 현실을 묵인하고 친영파 신문에도 서슴없이 글을 써 왔던 사람이고, 아이버스는 아일랜드의 전통문화를 숭앙하는 여교수이다. 가브리엘의 연설능력과 키릴의 마법능력은 출중하지만, 둘 다 세상을 구제하는 데엔 큰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에피파니, 즉 현현을 겪음으로서 가브리엘은 참회하지만 이모들과 세상 속에 섞여사느라 (라고 쓰고 시다바리하느라로 읽는다.) 그 이상 진전하진 못한다. 키릴도 세상이 무너지고 갈 곳이 없어지자 그제서야 복수할 결심을 하지만, 태양의 탑 1권의 전개를 볼 때 그의 칼날은 여전히 어디를 향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듯하다. 아직은 냉정하고 차가워보이는 가면을 쓰고 있지만, 워낙 그의 적들이 뻔뻔하다. 대가로 뭘 처먹고 일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특히 그의 스승이었던 카의 철가면은 정말 얄미워보인다. 그를 한 대 때리지 못해 안달복달하는 키릴의 심정이 이제야 이해된다고 해야 할까. 죽은 자들 중 하나였던 키릴이 어떻게 부활하여 일츠 무리들을 이겨낼 수 있을지 지켜볼 것이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순수와 경험의 노래>에서 나온 메시지처럼, 키릴이 제대로 미치지 않으면 해결하기 힘든 사건인 건 확실하다.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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