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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tasy&Comics

뉴로맨서 "몰리, 넌 어떻게 우니? 눈이 완전히 막혀 있는 것 같은데. 궁금하구나." 노인은 눈 언저리가 붉었고 이마는 땀에 젖어 번들거렸다. 안색이 무척 창백했다. '병이 들었거나 마약이겠군.' 케이스가 생각했다. "별로 울지 않아요." "하지만 누군가가 너를 울리든가 한다면, 그땐 어떻게 울지?" 몰리가 말했다. "침을 뱉죠. 관이 입으로 연결되어 있어요." "그렇다면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중요한 교훈을 배운 셈이군." 그는 권총을 쥔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은 다음 옆에 있는 테이블에 놓인 대여섯 종의 술 중에서 한 병을 아무렇게나 골라 집어 마셨다. 브랜디였다. 술 한 방울이 그의 입가에서 떨어졌다. 주인공 상황보고 어느 정도 귀환병 이야기려니하고 짐작했는데 세상에 코르토 에피소드는 이 정도면 조커될 만하다.. 더보기
젤리와 만년필 3호 한 소설가가 내가 잠든 사이 성행위를 시도하려 한 바 있었다. (...) 친구가 어떤 지방 소도시로 놀러 가지 않겠냐고 했다. 그곳은 그 친구와 내가 함께 들었던 대학 창작 수업의 선생님이 계신 곳이었다. (...) 모두 술에 거나하게 취했다. (...) 내가 잠든 사이 하의가 벗겨져 있었고, 그 선생은 물리적인 접촉을 시도하고 있었다. (...) '...해야만 끝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의 행위에 동조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동조는 아마도 보통 "너도 원했잖아"로 치환되어 버리고 말겠지. (...) 또 다른 한 친구와 만나 어렵게 이 이야기를 꺼냈는데, "좋았겠네" "멍청한 놈, 줘도 못 먹냐?" 같은 반응이 돌아오자, 나는 정말이지 주먹을 쥐고 그 친구의 .. 더보기
급소 비용 때문에 빠듯하게 짠 일정 안에서 각 나라의 수도와 국립박물관, 유적지를 찍고 다니느라 무슨 서바이벌 게임을 치르는 것 같았다. 단 한 군데라도 빼먹으면 '유럽일주'를 하지 않은 게 될까 봐 몸살기가 있어도 일정을 조정하지 못했다. '가봤다'를 증명할 일이라도 생길 줄 알고 입장권과 안내서 따위를 악착같이 챙겼고 매일 다른 옷을 입고 셀카를 찍어댄 뒤 곧장 페이스북에 전시했다. 친구들은 내가 게시한 사진과 글에 별 호응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런 철저한 무반응이 부러움과 시샘의 메아리라 해석하고 더 많은 사진과 글을 올렸다. 여행은 그렇게 일상과 마찬가지로 관성으로 진행됐다. 세계 곳곳의 역사 지리 문화 사회 정치 경제 등의 정보가 데이터베이스에 취합되어 있고 따라잡기 불가능한 속도로 매일 업데이트.. 더보기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 그러던 그가 다른 일로 잠시 술에 취하기를 잊었다. 혹은 다른 것에 취해 세월 가는 줄을 잊었는지도 모르지만. 몇 달인가 몇 년 뒤엔가 문득 그는 첫사랑처럼 그 술집을 떠올렸다. 그러나 당연히 취하기 전에는 그 집을 찾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성석제 작가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님 같은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는 영문학 교과서의 서지에 속하는 시의 예술성에 관한 대목을 찢으라 명한다. 성석제 또한 시와 소설 사이를 자유롭게 드나드는 글을 썼고 그런 속성은 아마 여기에서 더 잘 드러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러나 '선생님' 같은 면모도 잘 드러나 있다. 노벨상을 통 받지 못하거나 받지 않는, 혹은 자신이 좋아하는 소설가들을 묶어서 '비밀결사'로 표현해내는 자신감. 그리고 분명하게 드러나는 권선.. 더보기
회장님은 메이드사마 14~18 도쿄에 왔다면 성지(교토 국제 만화 박물관)에는 가야만 하잖아?! 결국 미사키가 메이드를 해야만 했던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었다. 아버지가 돌아왔고, 미사키가 집안일에 대한 걱정을 너무 심하게 했던 게 가족들과의 이야기 끝에 증명되었다. 확실히 급전개라고 할 수는 없지만, 아버지에 어찌 되었는지에 대한 뒷처리가 너무 미숙한 듯하다. 별거하면서 그 집안의 딸들만 아버지 얼굴 보고 살아가는 건가? 불편한 마음이 들었는데 생각해보면 아버지와 어머니 그 누구도 다른 사람과 재혼을 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이혼을 했다는 이야기는 없었으니 아마도 그냥 별거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뭐 그렇게 살 수도 있는 거지. 그런 남자한테 집안을, 아니 자기 자신을 맡기고 사는 건 영 내키지 않았겠지. 사정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 더보기
먼 북쪽 "저들은 우리와 다릅니다. 땅 한 뼘을 내주면 한 평을 가져갑니다. 우리가 땀을 흘려 모아놓은 먹거리를 내주면 등 뒤에서 바보들이라며 비웃을 뿐입니다. 예, 저자들도 보답이야 하겠죠. 여러분들은 제 아버지와 똑같은 선물을 받게 될 겁니다. 바로 사방 2미터짜리 무덤 말입니다." 전형적인 디스토피아 세계의 소련에서 혼자 살고 있는 메이크피스는 얼어 죽더라도 책을 불태우는 게 제일 싫은 사람이다. 어느 날 한 사람이 책을 불태우려 하는 걸 발견하고 총으로 쏘았지만, 곧 자신이 실수했다는 걸 알고 자책감에 집으로 데려간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상당히 어렸던 데다 그가 가지고 있던 무기라곤 녹슬어빠진 칼밖에 없던 것이다. 무엇보다 그'녀'는 임신하고 있었다. 주인공이 세상 험한 일 다 겪은 지혜로운 여성인지라.. 더보기
회장님은 메이드 사마 6~13 "맞다, 우스이 씨! 식사준비를 해준다면 뭐가 먹고 싶어요?" "..죽." 먼저 사진은 더 이상 읽기를 허용하지 않는다. 사진은 텍스트라기보다는 곧장 (사진 찍힌) 대상의 표정이 된다. 사진에서 우리는 더 이상 세계의 한 조각을 바라볼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사진의 프레임 안에 갇힌 채 제시되는 피사체와 그 배경 너머에 외부가 있음을 떠올리는 것, 지배적인 표면을 넘어 너머의 세계를 암시하거나 비유하고 있다는 상상이나 충동을 길어내는 것은, 더 이상 사진을 보는 것에서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p. 14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이걸 회장님은 메이드 사마라는 만화책에서 느끼게 되었다. 이 작가가 그린 첫 단편에 투명한 세상이라는 제목을 붙인 게 미묘. 내용은 돌발적으로 죽은 첫 사랑이 억울해서 성불하지 못.. 더보기
회장님은 메이드 사마 1~5권 "... 화가 난 건 내가 아니라 너잖아." "그럴 지도 모르지. 왜인지 알아?" "... 그, 그냥." "그래...? 그럼 화해할까?" 일단 이 만화는 하이틴 로맨스이다. 요즘 날씨가 추워서인지 자꾸 로맨스를 읽고 싶었던 나는 기존에 봤던 할리퀸말고 좀 더 새로운 걸 보고 싶었다. 90년대 로맨스가 과격하고 끈적끈적했다면(신조 마유라던가 시노하라 치에라던가) 요즘은 알콩달콩 밀당하는 로맨스가 유행이라길래 일단 가장 유명하고, 이전에는 스토리 질질 끌고 씬도 없는 게 너무 지루해서 덮었던 메이드 사마를 집어들었다(...) 일단 이야기는 과격하게 남자를 제압하는 학생회장으로 시작된다. 이유는 아버지가 어머니와 자신을 버리고 떠나갔고, 그 경험으로 인해 무능한 남자들은 싫다는 것. 그녀는 마침 여성이 20%.. 더보기
그 산 그 사람 그 개 "네 아버지는 신을 믿지 않으니까. 그러니 신령스런 뱀을 볼 수 없지. 믿거나 인연이 있는 사람이라야 신령한 그분을 볼 수 있단다." 나를 해치는 사람은 나의 입장으로서는 밉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나를 해치는 그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일 수도 있다. 내 입장으로서는 그들이 다 밉겠지만, 존재를 부정한다거나 악마같은 초월적인 것으로 규정함으로서 터무니없는 자기 합리화를 시킨다면 결국 자기 자신에게 피해가 오는 법이다. 반대로 나를 도와줬거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우상시하는 것도 똑같은 이유로 똑같은 결과가 초래된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님이 쉴 곳 없지만 또한 내 속엔 다른 사람이 너무 많아 나를 찾을 수가 없는 법. 적어도 아군을 해치는 일은 없도록 하자. 그래서 "왜 사람에게 도움.. 더보기
루리색에 흐려진 일상 4 조용히 잠들려는 혼을 산 자가 멋대로 이 세상에 얽매이게 해서 좋을 턱이 없다. 때문에 아무리 납득이 가지 않더라도, 견디기 힘들더라도, 다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생과 사를 가른다. 죽은 자가 떠나는 것을 배웅한다. 유령 따위로 만들어 이 세상에 남기는 것은, 자신을 저주하거나 복수하는 데 이용하는 것은, 결코 고인을 위한 일이 될 수 없다. 죽은 자는 그대로 잠들게 해줘야 마땅하다. 명복을 빈다는 것은, 아마 그러한 의미일 것이다. 새삼 체페리 가문 집안을 애도합니다... 왠만큼 일본 만화를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일본에서는 처음 본 인물이나 이름을 막 부르기 힘든 사람들을 성으로 부른다. 개그로서도 영능으로서도 콤비가 된 우도 루리와 콘노 타카미. 그러나 그 둘도 서로를 이름으로 부르기가 어지간히 쑥..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