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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Essay

콩밭에서

궤적, 이도 저도 아닌

부슬 부슬
가을 해 어스름한 저녁을 짓누르며
비가 온다

산 어둠이 먼저 내린
빈 밭 끄트머리

한 사내가
담배를 피우며 서 있다

희끄므레 한
반딧불이

그는 치열하지 못했다
여름내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개땅빈대나 망초꽃은
어떤 결핍과 과잉 사이에서
방황한 게 아니다

틀렸을 때 그는


피 흘리지 못한 것이다

 



 

 

 

 

1. 그래. 내 관점에선 도무지 이해가 안 가겠지만 아직도 농사가 6차 산업혁명이라고 믿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세상에 온갖 인적 재해와 자연 재해가 일어나고 세상이 멸망한다고 해도 꼭 정상 등교를 하는지 확인하는 아이들같이, 세상에 대한 불안감과 사명감으로 농사를 시작해보는 사람도 있겠지. 핵발전소 찬성론자들이 '근데 너는 핸드폰 충전 안 하냐? 컴퓨터 사용 안 하냐? 그것도 다 전기로 이용하거든? 핵발전소 지어야 그거 사용 가능하거든?'라고 개소리하는데 깜빡 속아넘어가 자연적인 생활을 하러 시골에 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요새 잘 알려져 있듯이, 세상 특히 시골은 자비가 없다. 농사한다고 실질적으로 지원해주는 법 별로 없듯이, 농사 망했다고 보완해주는 법도 없다. 개샹마이웨이와 각자도생 사이에서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은 고통받고 있거나 쉽게 인생에서 겪을 수 있을법한 유혹에 끌려간다. 내가 사는 곳에서도 모모랜드나 펀드매니저에게 당하는 사람들이 숱하다. 특히 농민들이 그나마 부빌 수 있는 이유는 농민으로서가 아니라, 그들의 연령과 재산으로 인해서다. 시인은 50대의 농민의 겪는 일상을 자신이 겪는 각종 고통과 땀과 눈물로 풀어간다. 쌀을 생각하는 그의 마음은 시인으로서의 예민함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다만 이 시인조차도 '옛날엔 더 어렵게 살았어' 같은 생각으로 자신을 세뇌시키며 살아가고 있다는 게 단점이다. 아내와 투닥거리며 지내는 모습은 보기 좋았다.



 

 

 


2. 그는 그 자신이 살아가는 일상은 가볍게 풀어놓았지만, 농촌의 주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꽤 애잔하게 풀어놓았다. 자신보다는 남의 아픔을 더욱 살피고 챙기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남도의 사투리는 대부분 알아듣지 못했지만, 소리내어 읽을수록 구수한 맛이 난다.


3. (지구온난화같은 과학적 이론을 뺀다면) 언제나 땅은 한결같고 농사는 그대로이다. 그러나 항상 농사일을 놓지 않는다면 그 땅에 쏟아붓는 마음 하나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솔직히 그 땅 위에서 꾸준히 농사를 한다면 누구라도 상관이 없지 않을까. 직장에서의 일 같은 것도 그렇다. 내가 아닌 다른 누가 하더라도 솔직히 크게 상관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정서이다. 메뉴얼대로 해야 하는, 틀이 정해진 일이 아니라면 내가 일을 해온 곳에선 망하지 않은 이상 내가 해왔던 것이 어디선가 쥐꼬리만큼이라도 남아있을 것이다. 그것이 즐거워 나는 거의 한번도 쉬지 않고 여러가지 다양한 일들을 해왔다. 역경이 있어도 누구 한 명에게라도 손 벌리지 않고 스스로 부딪쳐서 해결했다. 그런 일들로 다져진 마음이 만일 벽처럼 느껴져 여러 사람들을 접근하지 못하게 막아왔다면 미안할 따름이다.



 

 


4. 자연을 보며 잃어버린 사랑이라던가 지나간 과거를 기억하는 능력이 특히 뛰어난 듯했다. 후반에 그런 시가 상당히 많았는데, 앞에서의 생활시도 좋지만 역시 난 사랑이야기라거나... 아무튼 서정시가 가장 좋다. 특히 사월이란 시에서는 사월구라 너무 생각나서 혼났다 ㅠㅠ 살구꽃과 벚꽃은 좀 다를 것 같지만 핑크핑크한 이미지도 있구 ㅠㅠ 카오리짱 으헝헝 심지어 살구꽃은 왜 아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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