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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Essay

집은 아직 따뜻하다

돌새 중에서

고성 영천 건봉사 들어가면
돌장대 끝에 새 한마리 앉아 있다
옛적에 아도화상을 태웠고
조선의 만해가 타고 식민지 조국을 굽어보았다 하나
지금은 주인이 없다

크기는 큰 닭만한데
한번 날면 천리를 간다지만
동강난 하늘 어디 날 데가 있겠는가
만해도 가고
동란 중에 절은 한줌 재로 변하니
인적 끊긴 민통선 안에서
새는 나래를 꺾었다
(...)
나라는 망했다
만해는 젊은 가을을 어떻게 보냈던지
날마다 능파교 아래 개울에서 가재를 잡았을까
공양미를 퍼내 간성 색주가에서 술을 마시고
불이문에 기대어 님을 기다렸을까

 



 

 


무심코 집었는데 알고보니 내가 살고 있는 지역 출신 문인이었다. 이런 경우가 꽤 있다. 시인은 아예 양양 토박이인 듯하다. 그래서 사투리가 좀 쓰여져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들이 흔히 그렇듯 진보적인 시각과 지역의 어떤 일이라도 솔직담백하게 말할 마음의 준비가 시에 물씬 배어 있었다. 역시 그냥 시인이 되는 건 아닌 듯하다.


영랑호를 걸어다니다가 명백히 무덤이라 할 만한 것을 본 적이 있다. 콘트리트를 피해 흙바닥에 만들어진 그 동그란 무덤은 딱 햄스터 크기만큼 불룩했고 조그만 나뭇가지로 십자가가 만들어져 있었다. 우리 가족은 장례 문화의 폐해 등에 대해 이야기하며 계속 운동을 하다가 집으로 갔었다. 그런데 빚 때문에 일가족이 모두 거기서 자살했었단 얘기는 좀 무섭다 실화냐.
거기 지금은 완전히 무슨 동네 개울가 같은 곳인데.
하기사 뭐 중심은 좀 깊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니 근데 거기서 사람들이 골프치고 운동하는 거 아니냐.
그보다 그 땅 일대를 어느 기업이 다 샀다고 하던데?
게다가 이 책 버젓이 '우리 지역에 사는 시인이 만든 책'이란 표를 매달고 팔고 있는데?
하기사 이 시집 이전에 우리는 읍으로 간다라는 시집도 냈다고 했는데 그건 보이지 않더라. 거기 쓰여져 있는 시들 중 하나의 제목이 '내 가는 모든 길의 검문소에서'라고 한다 ㅋ

양양에서 아이를 낳으면 송침이라는 소나무 가지를 소나무 끝에 꽂아넣는다는 사실을 이 시집에서 처음 알았다. 지금은 인간들이 다 불태우고 자르고 헐어서 그렇지 옛날엔 그만큼 소나무가 많았으며, 주민들과 제법 친숙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속초와는 옆 마을 사이인데 왠지 지독한 앙숙취급을 하는 양양. 속초가 너무 외지인들을 끌어들이고 개발을 한다는 제법 합리적인 이유를 들이댔었으나... 현재 속초가 정말 무지막지한 개발을 하면서 패스트푸드나 체인점에 길들여진 입맛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불러모으자(5년 전만 해도 친구가 나름 속초 시내를 걸어다니면서 '나는 밖에 나와 걸어나와서 5분 이내 커피점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인간이라 이런 곳에선 살 수 없다'라는 불평을 했는데 지금 내 집에서 딱 걸어서 5분 이내 커피점이 두군데나 있다.) 양양도 케이블카를 짓겠다고 성화를 부리고, 그러면서도 속초를 싫어하는 걸 보면 그냥 이유가 없지 않았을까 싶다. 아무튼 속초에 가뭄이 일어도 물 한 번 주지 않겠다고 버틴 곳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지방 고유의 문화는 속초와 달리 제법 잘 살리고 있는 곳이다. 관광오고 싶다면 양양 오일장에 들러보는 걸 추천한다.



 

 


신경숙이 자꾸만 생각난다. 나중에 또 언급하겠지만 자신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람이 사회의 핍박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으로 인해 주인공이 성장하는 외딴방이란 소설은 결코 주제가 가볍지 않다.


표절과는 별도의 시각으로 보아야 하는 문제이다. 마찬가지로 영랑호에 대한 사실을 사람들이 알았다면 그 곳에 골프장을 지어도 사람들이 찾아갔을까? 아무리 예전에 힘들었다 하더라도, 남의 가족이 영랑호에 들어가 '물 속의 집'을 차리던 말던 자신은 빚을 모두 탕감했다고 큰 소리로 웃어제껴버리는 것은 좀 문제가 있다. 나는 이번 평창올림픽 또한 무게가 가볍지 않았다 본다. 총소리 한 번 안 나고 무사히 끝난 올림픽은 처음이라고 세계가 깜짝 놀랐다지 않는가. 이 참에 대한민국의 통일에 대해서 모두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바이다. 그깟 알바비 좀 받겠다고 길거리에서 드러눕지 말고.



 

 


문학에서 가족, 어머니는 정말 한물 간 소재다.


새롭게 다룰 수 있지 않겠냐 말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솔직히 이젠 쓸 대로 다 쓰지 않았나. 약술 마시는 어머니, 아버지와 싸우는 어머니, 부동산 투자해야 한다며 이불 틈에 돈을 감춰두는 어머니(이건 정말 후손들이 보면 분통이 터지는 소재이지 그때가 좋았어라고 회상할 만한 소재가 아니란 말이다.)를 독자들이 대체 언제까지 봐야 한단 말인가. 당신 책만 보는 것도 아닌데 그런 소재들이 도무지 신선할 리가 없다. 그리고 남자 문인들은 대체 어머니같은 여자 언제까지 찾아다닐거냐. 이미 누가 어머니같은 여자 찾아다니다가 인생 망친 남자 이야기를 시로 쓴 것 같던데.

 

청호동에 가본 적이 있는지 중에서

혹시 청호동에 가본 적이 있는지
집집마다 걸려 있는 오징어를 본 적이 있는지
오징어 배를 가르면
원산이나 청진의 아침햇살이
퍼들쩍거리며 튀어오르는 걸 본 적이 있는지
그 납작한 몸뚱이 속의
춤추는 동해를 떠올리거나
통통배 연기 자욱하던 갯배머리를 생각할 수 있는지
눈 내리는 함경도를 상상할 수 있는지
우리나라 오징어 속에는 소줏집이 들앉았고
우리들 삶이 보편적인 안주라는 건 다 아시겠지만
마흔해가 넘도록
오징어 배를 가르는 사람들의 고향을 아는지
그 청호동이라는 떠도는 섬 깊이
수장당한 어부들을 보았거나
신포 과부들의 울음소리를 들어본 적은 없는지

 



 


이제는 지구온난화 때문에 물의 수온도 오르고, 무엇보다 관광객이며 토박이며 하도 물에다가 쓰레기를 버려대서 오징어가 안 온다. 우리나라 오징어 이제 그딴 거 없음. 홍게는 엄청나게 잡힌다고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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