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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Essay

봉주르 뉴욕

세든 집 중에서

"넌 다시 돌아오지 않을 테니까......."
큰소리로 말고 속으로만 말하렴.
하지만 알아 두렴,
지금이 네가 이 계단을 내려가는 마지막이라는 것을.
그저께도 내려갔던 바로 이 계단을,
그리고 내일이면 이 계단은,
네가 아닌 다른 사람이 밟게 된다는 것을.
안녕 정들었던 집이여, 안녕 격벽이여, 안녕 벽돌담이여.
나를 향해 활짝 열려 있던 문들이여 안녕,
안녕. 하지만 너는 잊지 마라.
그곳에서의 사뭇 행복하기만 했던 그 기억을.......

 

  

책에서 이야기하는 사강의 모습을 보면 대충 이런 이미진가. 이 정도라면 롤랑 바르트를 만난 사강보다는 사강을 만난 롤랑 바르트를 부러워해야 할 듯한데.

 

 뉴욕에서 베네치아까지 쭉 도시를 소개하다가 중간도 안 되어 갑자기 시로 바뀐다. 그 다음에 나오는 수필들은 도시와 관련된 수필이라기엔 굉장히 주제가 뒤죽박죽이다. 그러나 국가나 역사와는 아주 연관이 먼 이야기도 아니니 반드시 편집자 주와 뒷페이지에 있는 주석을 읽어야 한다. 그래야 저자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따라잡을 수 있다. 물론 이 시에는 어떤 해설도 없고 난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다만 여성 작가들이 흔히 그렇듯이 분열증세가 있는 작품같다.

 

 

 

 

아리아 동인지를 보다보면 베네치아에 대한 환상을 깨뜨리는 대목이 많이 등장한다.

 

 아리시아 씨가 곤돌라에 탄 손님과 이런 짓 저런 짓(...)을 하면서 베네치아에서는 아름다운 여인들이 많기 때문에 남자들이 몇 명씩 떼거지로 달려들어서 추근거린다고 속내를 털어놓는다던가. 하긴 아리아 본편에서도 '베네치아에서는 소문이 금방 난다'는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한다던가, 소문을 쑥덕쑥덕거리는 여편네들이 엑스트라로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고보면 "곤돌라 토오리마스~"는 일본어라서 아기자기하지, 뱃사람 남정네가 걸쭉한 이탈리아 말로 고함을 내지른다면... 그냥 아리아의 네오 베네치아에 대한 환상을 계속 지니고 싶다 ㅠㅠ

사르트르의 말과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간접적으로 언급하는 듯하다. 그녀는 그들이 어린 시절을 회상할 때 징징거리지 않았다고 극찬한다. 이후에 그들의 책을 읽을 때가 다시금 기대되는 바이다. 또한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언급할 때, 어떤 나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열거한다. 그런데 이런 기법을 박은정 씨의 시에서 본 듯하다. (기억은 흐릿하지만) 박은정 씨는 여성으로서 받는 학대와 차별을 열거하는데, 시는 재밌었지만 사강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하다. 고향에서 그녀의 삶은 별 탈이 없었다고 하니 말이다.

종종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다. 특히 번역가가 프랑스 속담에 약한지 어떤 구절은 어물쩍 넘어가려는 게 보인다. 검색 좀 해보지 쩝.

 

그 유명한 페르젠의 손자 자크 드 페르젠은 카프리 별장에 아편굴을 만들어 놓고, 어느 날 밤 그곳에서 시를 읊으면서 죽어갔다. 당시 유명했던 빨간 머리의 팜므파탈 미미 프란케티도 있었다. 그리스풍의 민소매 페플럼만 입고 다녔던 그녀가 나타나는 곳에는 으레 오케스트라가 함께 있었다. 몇 차례의 자살 소동이나 그에 얽힌 뒷이야기, 그녀가 새롭게 개발한 나무 나막신은 제외하고도, 그녀로부터 유래된 많은 것들이 남아있다. 예로, 그녀가 즐겨 입던 페플럼은 미국에서 덩굴무늬 유아복 롬퍼로 교체되었으며, 그녀가 낭송하던 그리스 서정시는 '아름답고 훌륭하지만 금지된' 시들이 대신하게 되었다. 과연 어느 쪽이 더 해로운지 의아스러울 따름이다.

 

 

자크 드 페르젠은 최초로 동성애 전문 잡지를 만든 사람이다. 또한 미미 프란케티는 카프리의 레즈비언 살롱을 오랫동안 주도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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