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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Essay

무슨 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 나는 이리도 살고 싶은가

부활

내 너를 찾어왔다 순아. 너 참 내 앞에 많이 있구나. 내가 혼자서 종로를 걸어가면 사방에서 네가 웃고 오는구나. 새벽닭이 울 때마닥 보고 싶었다. 내 부르는 소리 귓가에 들리드냐. 순아, 이게 몇만 시간 만이냐. 그날 꽃상여 산 넘어서 간 다음 내 눈동자 속에는 빈 하눌만 남드니, 매만져볼 머릿카락 하나 머릿카락 하나 없드니, 비만 자꾸 오고...... 촉불 밖에 부흥이 우는 돌문을 열고 가면 강물은 또 몇천 린지, 한 번 가선 소식 없든 그 어려운 주소에서 너 무슨 무지개로 내려왔느냐. 종로 네거리에 뿌우여니 흩어져서, 뭐라고 조잘대며 햇볕에 오는 애들. 그중에도 열아홉 살쯤 스무 살쯤 되는 애들. 그들의 눈망울 속에, 핏대에, 가슴속에 들어앉어 순아! 순아! 순아! 너 인제 모두 다 내 앞에 오는구나.

 

 

 

어떤 청년이 시를 읽어도 이게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어서 시를 읽기 싫으니 시를 재밌게 읽는 방법을 알고 싶다고 나에게 부탁해 왔었다.

 

 그래서 나는 마침 그때 읽고 있었던 서정주의 시를 추천해 줬는데 '교과서에서 충분히 공부해왔으니 옛날 시들은 싫다.'라고 대답했다. 이후 시쓰세영 같은 책들은 너무 쉬워서 흥미가 없다는 둥 뭔가 이야기를 더 하긴 했는데 내가 결국 화제를 다른 데로 돌려버렸다. 허세로 보인다면 할 수 없지만 나는 그런 책들을 결코 시로 보지 않는다. 그저 글일 뿐이지. 그는 아마 서정주의 화사 같은 얌전하고 진지한 시들만 생각했지(사실 화사도 신중히 잘 읽어보면 섹시하다.), 쌈바춤에 말려서라거나 돼지 뒷다리를 잘 부뜰어 잡은 처녀 같이 섹드립이 풍부한 시는 결코 읽어보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그냥 당신이 시라는 분야를 읽기 싫다고 솔직히 말해라. 떠먹여주지 않는 주변 탓하지 말고.

 

 

 그런데 확실히 서정주의 시는 시간이 지날수록 훨씬 가벼워지고 유머가 풍부해지며 읽기가 쉬워진다.

 

 한자라던가 고상한 문체를 쓰는 데엔 변함이 없는데, 여성에 대해서 특히 천지개벽이 일어난 듯 태도가 바뀐다. 아내도 아내지만 40대에 그를 사랑한다는 노처녀를 만난 이후로 시인 자체가 많이 변화한 듯하다. 시에 굉장히 활기가 담겼다. 바람피는 사람들을 싫어하긴 하지만, 바람난 사람이 그 경험으로 인해 작품의 혁명적인 진화를 이룩한 경우라면 어떨까? 나는 이 시집을 보며 회의를 느꼈다. 친일 행적 또한 용서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그가 친일파에 선 것도 아닌데 그의 예술적 능력에 대한 평가를 깎아 먹어서는 안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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