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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Essay

심장에 가까운 말

김밥천국

연인이 밥을 먹네
헝클어진 머리통을 맞대고 늦은 저녁을 먹네
주방 아줌마 구함 벽보에서 한걸음 물러나 정수기가 놓인 맨 구석에 앉아
푸한 김밥 두어줄 앞에 놓고 소꿉을 살듯
여자가 콧물을 훌쩍이자 그 앞으로 쥐고 있던 냅킨 조각을 포개어 내미는
남자의 부르튼 손이 여자의 붉어진 얼굴이
가만가만 허기를 달래네
때마침 식당 앞 정류장에 당도한 파주행 막차
연인은 김밥처럼 동그란 눈으로 젓가락질을 멈추네
12월의 매서운 바람이 잠복 중인 바깥
버스 뒤뚱한 꽁무니를 넋 없이 훔쳐보다 이내 버스가 떠나자
그제야 혓바닥 위에 올려놓은 김과 밥의 부스러기를 내어 재차 오물거리네
흰머리가 희끗한 주인은 싸다 만 김밥 옆에서 설핏 풋잠에 들고
옆구리가 미어지도록
연인은 밥을 먹네 김밥을 먹네

 

 

 

시에서는 어지간히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단상이 많이 나온다. 아버지에 대한 시는 맨 끝에 지익이라는 시에서 나온다. 시집에서는 전반적으로 어머니와 언니와 같이 살았던 것처럼 나온다.

 

 이 시집을 쓴 박소란 시인은 세상과 타협을 하기 시작한 시기의 시들을 뒤에 넣은 것 같은데, 지익은 그 마지막을 장식했다. 20대에 혼자 실컷 울음을 터뜨렸던 자취방에서는 이제 이사를 갔다고 하니, 울음에서 그만 벗어나고 싶은 것일까. 눈물을 너무 많이 흘려 더이상 나오지 않는 삶을 표현했던 그녀였다. 시 속에서의 그녀를 보자면, 말 그대로 박복한 삶이다. 자살은 너무 힘들어서 싫고, 자연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직접적이던 간접적이던 도처에 드러나있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저절로 우울하고 아픈 시이다. 그녀는 아프다고 중얼거리며 황량한 거리들을 헤메인다. 연인은 그녀의 얼굴에 침을 뱉고 때리며, 무당은 그 옆에서 차라리 웃으라고 충고를 해 준다.

 

 

 

신파극의 절정에 있는 이 시는 아무리 음식으로 분위기를 따뜻하게 하려 한들 이미 통제가 되지 않는다.

 

 

 감동적인 시, 눈물을 쏟는 시라고 할 사람들이 많지만 뒤에서는 심하게 감상적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나마 희망적이라 생각되는 시가 김밥천국밖에 없는데, 요즘 사회에선 연인들이 데이트를 하면서 김밥을 먹는다는 건 보통 상상도 할 수 없다고 여기지 않던가. 좀처럼 오지 않는 파주행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집이란 것도 어떤 곳일지 충분히 머릿 속에서 상상할 수 있다. 독산동만큼은 아닐지라도...

 자기 자신의 불행밖에 생각하지 못하고 사회의 불의를 따지지 않는 것도 치명적인 단점이다. 이를 커버하기 위해 시인이 선택한 길은 다른 여성들의 어려움을 시로 읊어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보기에 그 스토리는 너무 짧고 작위적이었다. 초반에 나온 참외를 깎는 여성에 관한 시는 괜찮았다고 본다. 경에게라는 시는 레즈비언성 전복의 분위기가 느껴졌지만 업계 여성에 대한 동정심에 그냥 한 번 말해본 듯한 느낌이었다. 여성주의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렇게만 된다면 그녀는 페미니즘운동의 송경동이 될 것만 같은 가능성이 보인다. 이 시에서는 그 외에도 수많은 가능성이 보이고, 그게 이 시집의 장점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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