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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Essay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

가을 저녁의 말

나뭇잎은 물든다 나뭇잎은 왜 떨어질까?
군불 때며 돌아보니 제 집으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꾸물대는 닭들

윽박질린 달이여

달이 떠서 어느 집을 쳐부수는 것을 보았다
주소를 적어 접시에 담아 선반에 올려놓고

불을 때고 등을 지지고
배를 지지고 걸게 혼잣말하며
어둠을 지졌다

장마 때 쌓은 국방색 모래 자루들
우두커니 삭고
모래는 두리번대며 흘러나온다
모래여
모래여
게으른 평화여

말벌들 잉잉대던 유리창에 낮은 자고
대신 뭇 별자리들 잉잉대는데

횃대에서 푸드덕이다 떨어지는 닭,
다시 올라갈 수 있을까?
나뭇잎은 물든다

 

 

 

일단 시인은 시골같은 외진 데에서 살면서 가난하다면 오히려 청빈하게 살면 된다, 버리면 된다의 소리를 늘어놓고 있다. 하지만 그가 정말 가난한가?

 

 일단 그가 청빈의 코드로 내놓은 메밀베게를 사려면 당장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어디에서도 메밀베게를 팔지 않아서(혹은 수와 복이 쓰여있는 메밀베게가 우리가 먹는 햄버거보다도 가격이 더 비싸서) 그 베게를 만들려면 우리는 시골에서 얼마 이상 살아야 메밀을 얻을 수 있는가? 10년? 메밀을 재배할 수 있는 땅은 얼마나 돈을 들여야 살 수 있는가? '소시민'이라는 단어는 어감상 '서민'과 비슷한 뜻으로 인식되지만, 실은 '쁘띠 부르주아지'라는 뜻이라는 페친의 글이 머릿속에 너무나 뿌리깊게 각인되었다. 시인은 가난한 서민이 아니라 부유한 소시민이다. 나이드신 높으신 분들은 경제상승의 덕이라도 보았지, 지금 청년 세대는 죽어라 노력해도 성과를 얻는 게 없고 빚은 더욱 쌓여갈 뿐이다. 그런데 단순히 시대의 흐름 때문에 얻은 돈을 가지고 꼼지락 꼼지락 아껴쓰고 살면서 빈의 철학을 논하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당신같이 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심지어 시골에서 부모의 밥을 축내는 내 형편을 부러워하면서도 그러지 못하는 청년들이 부지기수다.

 

 하지만 그는 교활하게도 그의 그런 단점까지 시로 써내고 있다. 그는 사물들을 회초리로 때리면서 민들레를 만드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 민들레를 아름답다고 칭찬하는 걸 보면서 회의감을 느낀다. 그러자 계속해서 민들레를 때리는 자신을 비웃음으로서 자기비하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는 '불임'이라는 시나 '동화'라는 시에서 정관수술을 한 자신을 넣은 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언젠가 자신의 죽음은 두려워하면서도 검은색을 그렇게 좋아하던 남자애를 만난 적이 있다. 아마겟돈이 오기를 바라는 남성들이 의외로 많아서 놀랐다. 이 시인도 자신의 불운을 은근히 즐기고 소멸을 바라는 그 부류에 속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빛으로 둘러싸여 윤곽을 잃어가는 것, 열기에 활활 타서 재가 되는 것,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고요 속에 녹아드는 것, 추락. 나는 시인이 이미 호랑이, 즉 죽음에 호젓하다고 생각한다. 아니, 오히려 관심을 절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상에 굉장히 영감을 받았는지 자꾸 건축 이야기를 하면서 띄어쓰기도 생략하던데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보기엔 그다지 인상적이지도 않았고. 차라리 하이쿠같이 짧은 시들이 더 좋았다.

 

어찌하여 민들레 노란 꽃은 이리 많은가? 중에서

긴 하루 지나고 노을 물들면 오늘도
아무 지나는 이 없는 이 외진 산길을
늦봄인 양 걸어내려가며
길에, 하늘에, 민들레 노란 꽃을 총총히 피워두면
이쁘다 이쁘다 하면서 올라오는 이 있겠지
그 말이 누군가를 막 때리는 말인 줄은 까맣게 모를 테지
여전히 나는 민들레 노란 꽃을 남기면서 내려가고 있을 거야

 

 

 

https://www.youtube.com/watch?v=zeF-VimaE1k&feature=youtu.be

들국화- 사랑한 후에

전인권씨 노래 가사라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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