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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Essay

글짓기 조심하소

붉은 앵두 중에서

우물 가 빨간 앵두 몇 천만 열렸던고
긴 가지 짧은 가지 열매 맺어 늘어졌네.
연희가 손수 따서 광주리에 담고 보니
동글동글 하나같이 수정빛이 영롱한데
한 알 집어 입에 넣고 연희 아씨 이르는 말
"내 입술이 붉은가요 앵두 알이 붉은가요."

늙은 이내 몸이 산골에서 귀양 살 때
세 해 동안 그 앵두로 주린 창자 달랬네.

 

 

 

조선 후기에 김려라는 사람이 쓴 시와 산문을 모두 모은 글이다. 어떤 사람인지도 모른 채로 글을 쭉 보았다가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정약용과 같은 시기에 글을 썼다고 하는데, 그의 유명세에 말려들어 묻힌 모양이다. 사실주의에 바탕을 두고 글을 쓴 탓에 정부를 비방했다는 모함을 받고 귀양을 가서 글을 다 수습하지 못한 까닭도 있을 것이다. 또한 북쪽 태생이라고 하는데, 당시에는 무신들만 뽑기로 유명했고 전쟁이 일어나는 등 안정적인 시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문신이 나는 일은 이례적인 사건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일어났던 일에 기반하여 시를 쓰기 때문에 시의 밑에 저자가 간단히 설명을 붙이는 점도 특이했다. 북쪽에서 남쪽까지 여러 지방을 돌아다닌 이력 덕분에 조선 후기 여러 곳의 풍속을 알 수 있어 흥미로웠다.


 

 안타깝게도 이 선비는 높으신 분들을 강도 높게 비난하지만, 그 이상으로 나가 군주제를 비방하진 못한다. 한시만 너무 좋아해서 멀쩡한 한글시를 한자로 번역해서 다시 쓴 데서도 양반집에서 태어난 옹고집 티가 너무 팍팍 난다. 그러나 아무리 한계에 부딪쳤다 하더라도 명망 높은 집에서 태어났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던 모두가 인간이고 모두가 친구라는 그의 생각에는 군데군데 놀라운 점이 있다. 아무래도 전쟁에서 공을 많이 세운 듯한 무신이 원님의 자리에 앉자, '국방인가 민생인가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한탄의 시를 쓰는데 이 고민은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통하는 바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안보를 핑계로 국민들의 편의는 뒷전으로 했지만, 그게 모두 국민들의 고혈을 짜내어 삼성 재벌 등을 배불리기 위한 수법이었다. 여인의 아름다움에 대한 시를 많이 쓴 점도 독특했다. 경박하기보단 예술성이 돋보인다. 특히 어느 기생으로 짐작되는 연희에 대한 시를 쓸 때 그는 그녀를 극히 찬미하지만 그녀의 아름다움을 애정하는 마음만 쓰지 않는다. 그녀가 길쌈하는 모습, 술을 마시는 모습, 정세에 대해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등을 면밀히 관찰하고 적어낸다. 우리나라 역사 어디에도 적히지 못하고 그저 스쳐갔을 여성이 그의 시에 적혀 앵두같이 아름다운 여신으로 남았다. 그리고 후손들이 지금 그의 글을 읽고 그녀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예술이란 이렇게도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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