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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Essay

2015 내가 뽑은 나의 시

동행

임술랑

여름 장마는 설악산 꼭대기 그 심중이 으리으리한 흰 바윗돌을 씻고 씻어서 용대리 백담사 앞개울을 콸콸콸 흘러가고 있습니다. 만해마을 앞 사방보 시멘트 구조물 물웅덩이로 세차게 흐르는 그 차가운 물이 빠르고 빨라서 작은 인간의 마음을 물레방아 돌리고 또 돌리고 있습니다. 소슬한 바람 한 줄기 지나가고, 물 통로 이쪽과 저쪽 난간을 만약에 뛰어서 건너야 된다면 나는 어찌어찌 발돋움으로 건너뛸 수가 있겠습니다만, 당신은 건너지 못할 것 같습니다. 세찬 세상의 풍파가 먼 데서 울리는 종소리처럼 오고 가는 속에서 당신이 이 내를 건너지 못하므로 나도 그냥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오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에서 흙먼지가 되고 바람이 됩니다. 솔바람이 됩니다. 냇물에 닳은 돌멩이가 됩니다. 그래서 이 땅을 떠날 수 없습니다. 당신과 함께 여기 이 감옥에서 해골이 될 것입니다.

 

 

 

아침저녁 10편씩 읽어서 500페이지 넘는 시집도 읽을 수 있다니 역시 인간 뭐든 할 수 있구나하는 자신감이 생긴다.

 

 박찬세 시인의 시를 보려고 샀는데 뭔가 최지인 시인도 그렇고 다른 분들도 엄청난 시를 쓰셨구나 싶었다. 예상대로 세월호에 관련된 시가 엄청 많이 올라왔지만 그를 초월해서 인생에 대해 시를 쓰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임술랑 시인의 시가 그 중 하나라 생각하고 한용운을 오랜만에 떠올리게 해서 고맙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설악에 관련된 시가 두편, 여수에 관련된 시가 그것보다 조금 더 많이 나왔다.

 

 여수 갈때는 잘 몰랐는데 감나무가 유명하단다. 검색해보니 감나무집이란 한식당도 있고 1억원 짜리 감나무도 있다고 하니 감과 관련된 무슨 사연이 있는가보다. 좋은 정보를 하나 얻은 것 같아서 왠지 뿌듯하다. 그림정원 게하 들를 때 물어봐야지.

 

 

 

생각보다 음악이라던가 덕질에 대한 시가 많았다.

 

 애니에 대해서는 두 편이 있었는데, 하나는 세월호 사건 와중에도 애니를 보지 못해 아쉬워하는 청소년 이야기였고 다른 하나는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듯한 시였다. 게다가 별의 목소리는 그 감독이 만든 영화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어서 유달리 눈에 띄었다. 앞으로도 용기있게 시로 덕밍아웃하는 시인들이 많아졌음 좋겠다(?)

 

별의 목소리

신남영

우주 비행사인 너는 지구에 있는 내게 메시지를 보낸다
네가 멀어질 수록 메시지의 교환 시간은 그만큼 늦어진다

너는 이제 명왕성을 지나는 중이라 했다
지구의 시간을 그대로 가져간 너는 옛날의 너이지만
지구에 남겨진 오늘의 나는 옛날의 내가 아니다

우주엔 천억 개의 은하가 있고
한 개의 은하엔 천억 개의 별이 있다 한다
마음이 가닿을 수 있는 거리는 어디까지일까

사람이 죽으면 별이 된다는 말이 있지
네가 돌아올 때쯤은
난 별이 되어 있을지 모른다

메시지는 끊어진 지 오래이지만
마음에서 지워내지 못한 것들
한세상을 건너야만 들려올 별의 목소리

넌 차라리 안녕을 이야기하지만
사별보다는 나을지 모를
오늘의 단절을, 나는
멀어진 시간만큼 되돌아가야 하지 않겠나

 

 

놀랍네요.
나이도 지긋하신데 가장 좋은 시로 애니메이션 시를 뽑다니.
별의 목소리 보세요 전 다섯번 봤네요.

 

수학여행 다녀올게요 중에서
ㅡ유령 6

이영광

4. 16. 08 : 59-10 : 11

살고 싶어요......를 지나는 시간입니다
수학여행 큰일 났어요 나 울 것 같아요를,
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를 지나갑니다
걱정돼요, 한 명도 빠짐없이, 아멘......을 기억하는 시간입니다
실제 상황이야 아기까지 있어 미치겠다가
가만히 있으세요 절대 이동하지 말고가, 기다리세요가 사라졌습니다
기울어지고 기울어지고 기울어지고가 지나갑니다
잠깁니다 잠기고 있습니다 잠깁니다
무섭습니다 무섭습니다 무섭습니다
이제 없어, 가자고가 가버립니다
오지 않았습니다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쳐다보며,
안 보았습니다 우리는 여기, 없습니다
마지막 기념을 엄마 보고 싶어요를, 사랑해
사랑해, 나가서 만나를 잃어버렸습니다
내 동생 어떡하지? 아직 못 본 애니가 많은데,
난 꿈이 있는데,
내 구명조끼 네가 입어가 우릴 놓아버리고
끝났어 끝난 거 같아가 끝납니다 사라집니다
검은 물이 옵니다 물 샐 틈 없는 물이 왔습니다
끝났습니까 끝났습니다 끝났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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