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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Essay

눈만 봐도 다 알아

고양이

어른들은 만나면 맨날 묻는다
ㅡ넌 하고 싶은 게 뭐야?
ㅡ꿈이 뭐야?

나는 공부를 못하고
얼굴도 잘생기지 않았고
집도 잘살지 못한다

나는 내가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가만히 있고 싶고
그냥 놀고만 싶다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그냥 이렇게 살다가
그냥 이렇게 죽고 싶다

내 꿈은 그냥그냥 고양이다

 

 

 

최저임금 인상에 관한 시위현장에서 어르신들에게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최저임금으로 살 수 없으면 최저임금을 받는 그 일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그럴 때마다 원칙적인 말만을 되풀이해왔다. 뭔가 재치있게 반박하고 싶은데 조리있고 재미없는 말만 되풀이되기에 피곤할 때가 많다. 듣는 사람도 마찬가지일거라 생각될 때가 많았다. 그럴 때 페이스북에서 재치있는 말을 들었다. 최저임금은 사람을 벌주려고 만든 정책이 아니라고. 님비현상에 대해서 궂이 구구절절 친절하고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 없이 모두가 끄덕거릴 법한 이야기였다.
마찬가지로 시원하게 이야기하고 싶은데 잘 이야기하지 못하고 지루한 글만 늘어놓았던 일이 있다.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대결을 청하는 이야기이다. 불량아이들과 같이 술을 마신다거나 게임을 하면서 (자신이 그 아이를 이기는 건 덤이고) 이런 건 안 돼 어쩌고 설교를 하면서 아이는 감동하고 자 같이 석양을 향해 뛰어가자 저쩌고 하면서 파도가 치는 장면이 배경으로 나오는 흔한 망상. 그 몹쓸 선생님들의 집단환상을 쓰리쿠션으로 시원하게 깨뜨리는 글이 있다.

자의식이 비대해지는 가장 피곤한 자아성찰은 스스로에 대한 과민성을 메타 인지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오히려 타자화가 근본 베이스인 메타 인지의 기본 태도는 자의식에서 빠져나와 스스로를 타자 보듯 건조하게 보고 세척하고 점검하는 것이다. 사람 얼굴이 360도 돌아가는 물건도 아니고 본인이 본인 눈으로 몸 전체를 아무리 훑어봤자 몸 전체를 봤다 할 수 있는가. 유체이탈 해야지.

결국 네 꿈을 이루라는 말은 다시 하고 싶은 걸 이루라는 강요로 뒤바뀐 요즘이다. 마치 나 전달법을 배운 부모가 '니가 이런 잘못을 저질러서 내가 몹시 속상해.'라는 왜곡된 감정표현을 다시 되풀이하듯이 말이다. '전 저만 되고 싶은데요!'라고 강력히 말할 때 청소년은 강하게 빛나는 것 같다.

 

 

 

솔직히 이런 진솔한 시들이 오히려 속마음을 잘 모르겠다. 

 

난해한 시들이라면 혼자서 멋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다. 하지만 적나라하게 일상생활을 써 놓은 시에서는 말문이 막힌다. 나는 대학이 너를 거부할테니 더 이상 '우리' 고등학교에 나오지 말라는 말을 듣고 복수심에 뻗쳐서 하루 2~3시간 자면서 공부만 하고 남들이 좋다하는 수도권 대학에 붙은 인간이다. (이런 경험을 한 건 나뿐만이 아니다. 내 친구는 고딩 때 머리 다쳐서 한해 휴학하고 복학했는데 아픈 몸 끌고 결석을 밥 먹듯이 해서 '우리' 고등학교에 나오지마라 다른 애들 공부하는거 방해 된다는 소리듣고 악착같이 졸업하고 수능점수 엄청 올려서 절대 못 간다는 대학 갔다나. 고등학교 대체 뭐냐 학생들이 개소리 들으며 맘고생 하러 가는 건 아닐진대.) 수학을 모르고 저항을 모르고 가끔 남들이 상처를 받은 나에게 던져준 마음을 몰랐다. 수능날 자느라 시험을 보지 못했다는 친구에게 심한 말을 했었다. 그런 인간이 이 시에서 던져준 하나의 인생에 대해서 뭐라고 할 자격은 없다.

그렇다고 해서 더 나은 삶을 살지도 않았고 더 못한 삶을 살지도 않았다. 나는 더 이상 살기 싫다고 도망쳐나온 곳으로 다시 돌아왔고 여기 어딘가에서 나를 괴롭히던 친구는 나와 비슷하게 버는 직장에 다니더라. 나는 또 다른 인생을 살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도서관과 학원과 집으로 나를 끌고 간다'. 최근 SNS에서 자살글이 유행하는 걸 많이 본다. 발광을 하든 저항을 하든 숨쉬고 햇빛 쐬고 사는 것만으로도 그냥저냥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P.S 물론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배후에 있었다.
'니가 다니는 그 대학은 3류야. 결국은 스카이가 짱이지.'
정확히 내가 다니던 대학에 다니던 친구였다.

P.S 2 현재 새로 다니는 대학에 삼성생명에서 자칭 20년째 '심리상담사'로 잘 나가는 친구가 있다. 내가 전에 다니던 대학과 학과에 대해 묻길래 대답해주니 왜 거길 다녔는데 선생님이나 대기업으로 취직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관심없다고 했더니 무려 노오오오력을 하지 않아서 니 인생이 이렇게 된 거 아니냐 하더라. 차에서 내릴 때 그녀가 한 말은 내가 현재 다니는 대학을 그만두고 자신의 직장에서 직원으로 취직하지 않겠냐는 것, 그리고 50대 아저씨랑 맞선을 보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둘 다 너무나 지극히... 꼰대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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