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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Essay

김수영 전집 1 시

만시지탄은 있지만

루소의 '민약론'을 다 정독하여도
집권당에 아부하지 말라는 말은 없는데
민주당이 제일인 세상에서는
민주당에 붙고
혁신당이 제일인 세상이 되면
혁신당에 붙으면 되지 않는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제2공화국 이후의 정치의 철칙이 아니라고 하는가
여보게나 나이 사십을 어디로 먹었나
8.15를 6.25를 4.19를
뒈지지 않고 살아왔으면 알겠지
대한민국에서는 공산당만이 아니면
사람 따위는 기천 명쯤 죽여보아도 까딱도 없거든

데카르트의 '방법통설'을 다 읽어보았지
아부에도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말일세
만사에 여유가 있어야 하지만
위대한 '개헌' 헌법에 발을 맞추어 가자면
여유가 있어야지
불안을 불안으로 딴죽을 걸어서 퀘지게 할 수 있지
불안이란 놈 지게작대기보다도
더 간단하거든

베이컨의 '신논리학'을 읽어보게나
원자탄이나 유도탄은 너무 많아서
효과가 없으니까
인제는 다시 비수를 쓰는 법을 배우란 말일세
그렇게 되면 미,소보다는
일본, 서서, 인도가 더 뻐젓하고
그보다도 한국, 월남, 대만은 No.1 country in the world
그런 나라에서 집권당이라면
얼마나 의젓한가
비수를 써
인제는 지조랑 영원히 버리고 마음 놓고
비수를 써
거짓말이 아냐
비수란 놈 창조보다도 더 산뜻하거든
만시지탄은 있지만

 

 

 

 일단 맘에 드는 작가나 시인을 접할 때, 나는 전집을 읽거나 그의 작품 전부를 보는 것으로 그들에 대한 존경을 대신한다. 그런데 지금 되돌아보니 작품 전부를 읽으려고 노력한 경우는 네 번 있었던 것 같다. 이육사, 무라카미 류, 로레타 체이스(할리퀸 소설가다), 그리고 김수영.

 

 그런데 교과서나 다른 매체들로 접한 것과는 상당히 다르게 느껴진다. 일단 시의 후반에서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를 많이 보고 들으며, 거기서 재밌게 느낀 점을 시로 담는 게 그렇다. 아무래도 김수영보다는 그의 아내가 그걸 사 오는 데 적극적으로 찬성한 모양인데, 그 때문에 투덜거리면서도 즐겨 듣는다는 게 왠지 츤데레스러웠다. (응?)

  김수영과 그의 아내는 오래 투닥거림으로 알려지긴 했다. 그런데 맞불륜일 줄이야... 그 정도로 셀 줄은 몰랐다. 그걸 시로 담아내는 김수영도 김수영이지만, 생활에서는 이런 어두운 면이 있었다니.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버려진 것이나 다름 없던 장남을 계속 외면하려다 결국엔 의식하게 되고, 필사적으로 집을 지키려 노력하는 데서 남성의 세계가 느껴진다.

  결국 그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있으니 자신만, 자신의 성만 불운하게 느껴지고 이 시인처럼 아내한테(혹은 아내와 자식 둘 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거겠지. 그러나 어쩐다? 요즘 무려 김수영문학상을 내 또래가 받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나는 그가 전혀 불쌍해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설령 그가 시인으로서 유명해지지 않았더라도 말이다. 아마도 나름 고등 교육을 받았고 나름 쁘띠 부르주아 계통쯤에 속해 있어 문화를 향유하며 소설과 시를 읽을 정도로 한가한 나로선, 여성들이 폭력을 받는 역사의 반복을 지켜보는 것만 해도 너무 지쳤나보다. 요즘 백인 남자들의 여성에 대한 매너가 한국 남자보다 월등하게 좋다는 따위의 페미니즘 글들을 보다보면, 최진실의 냉장고 광고가 문득문득 생각난다. "여자라서 행복해요." 그녀의 소름끼치는 아름다움과 아름다운 집안 경관에 쫓겨 잠시동안 여성들은 행복한 꿈을 꿨다. 즉, 너도나도 돈을 털어 그 냉장고를 샀다는 거다. 그러나 최진실은 자살했고 그녀의 불운한 삶이 매스컴을 타고 동네방네 폭로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최순실이, 정치적인 만행을 넘어 여성이라는 존재만으로도 공격당하고 있다. 최진실도 사실 정치에 개입되었다는 의혹이 많았다. 무리도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유명했던 여배우였으니까. 김수영의 시에서도 개혁이라는 단어가 자주 나온다. 4.19 다음에 쓰여진 시들에서 세 번은 본 것 같다. 김수영은 정면에서 그 단어를 비웃는다. 그리고 새누리당을 나온 무리들이 들고 나온 임시 당 이름은 개혁보수신당이다. 역사는 이렇게 계속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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