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oem&Essay

임화 해협의 로맨티시즘

한 잔 포도주를 중에서

찬란한 새 시대의 향연 가운데서
우리는 향그런 방향 위에
화염같이 붉은 한 잔 포도주를 요구한다

새벽 공격의 긴 의논이 끝난 뒤 야영은
뼛속까지 취해야 하지 않느냐

명령일하!

승리란 싸움이 부르는 영원한 진리다
그러나 나는 또한 패배를 포기하지 않는다
승패란 자고로 싸움의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니냐

중요한 것은 우리가
피로하지 않는 것이다
적에 대한 미움을 늦추지 않는 것이다
멸망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지혜 때문에 용기를 잃지 않는 것이다

결별에 임하여 무엇 때문에
한 그릇 냉수로 흥분을 식힐 필요가 있느냐
벗들아! 결코 위로의 노래에
귀를 기울여서는 아니 된다.

 

 

 

페친의 페친이 예술에 우열이 있는가 없는가에 대해서 거론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임화를 거론해야 옳다. 

 

 소위 문학 아닌 것들에 대한 거론은 임화에서부터 시작했기 때문이다. 비록 그가 월북했고 배우로도 활약했으며 조선프톨레타리아예술가 동맹의 지도자가 되어 계급혁명 운동을 했었다지만 그는 한사코 예술의 우열에 대해 확실한 주장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시절 그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예술의 완성에 대해 고민한 사람이다. 그는 문학을 직업이 아니라 업으로 삼았으며, 이는 현재의 전업 작가 즉 작가로 먹고산다는 안이한 개념과는 확실히 다르다. 아예 그는 열등한 것들을 내성소설과 세태소설로 나누어 그런 쓰레기는 문학이 아니다라고 까지 주장했다. 그는 문학의 해협에서 노닌 사람이다. 그리고 그걸 나중에 김동리가 적절히 채갔는데, 흔히 '문학에서 정치얘기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김춘수에게서 나온 줄 알지만 사실은 좀 더 일찍 김동리에게서 나왔다. 그로 인해 '본격문학'이라는 단어가 생겼는데, 이렇게 임화의 예술에 대한 성찰은 왜곡되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소설도 동시에 와해되고 궤멸되어 소위 지식인층들에게 비웃음당하고 손가락질 받게 된다. 예술의 우열은 있다. 그러나 왜 예술의 우열이 거론되는지, 그걸 입밖으로 꺼낸 사람의 속마음이 뭔지 그걸 먼저 살펴봐야 한다.


 확고한 계획과 만신의 용기. 굉장히 뭔가 있어 보이지만 선택과 집중이다. 좋은 것을 향해 우리는 지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거를 것은 걸러라. 앞을 가로막는 장난감이 운전대에 너무 많으면 정신만 사납다. 확실히 우리나라 시인 중에 임화만큼 시원명쾌하게 선택과 집중을 주장하는 사람이 또 없지.

 지금도 가부장제 때문에 고생하는 (청소년) 운동권들이 많은데, 그 때는 어땠겠나 싶다. 고향집에도 들어가고 싶겠지. 하지만 청년은 역시 집을 나가야 한다. 들어가서 고향을 보는 건 일단 20대 청춘 다 지나서 해도 늦지 않음. 일단 집을 나가면, 고향을 그리워하지 마라. 특히 엄마가 한 음식 먹을 생각 하지 마라. 요리할 수 있으면 혼자 요리해라. 고향에서 엄마가 절대 만들지 않았을 그런 음식으로. 설령 탕아로 욕을 먹어도 아들의 손에 정말 아무것도 없을 때 부모는 아들을 받아준다. 그 전에 물론 쫄쫄 굶어봐야 하고.

 

 게다가 박헌영 선생이 북한에서 처형되기 전 박헌영 선생을 찬양하는 시를 지으며 우리에게 군림해 달라고 호소하는 모습을 볼 땐 착잡하기까지 하다. 결국 모두가 국가의 농간이자 대본이라는 걸 임화가 눈치챈 건 감옥 속에서였다. 나이가 드시고 자식을 잃어버려서 둔해졌던 걸까? 서울 이후의 시들은 어딘가 딱딱하고 무언가 그 당시의 다른 시들을 베낀 듯한 티가 있다.

 

 

 

 말이 나온 김에 더 까보자. 청춘을 찬양하며 젊은 운동권들에게 힘을 불어넣는 수많은 장점이 있음에도 내가 왜 임화가 별로냐면, 현해탄 시를 봐도 알 수 있듯이 사람이 너무나 마초적이기 때문이다. (바다가 왜 너네 남자들 꺼냐?)

 

 내가 일제 선전 영화 너와 나의 시나리오를 교정한 것보다 더 안 좋다고 보는 게 바로 이귀례와의 관계였다. 본 이름은 귀남이었는데, 촌스러우니 귀례로 바꾸라고 강요한 것도 임화였다. 게다가 여성이 결혼하지도 않고 남자와 살면 욕 먹는 그 시대에 동거를 하다니 말도 안 되고 기가 막히는 일이다. 이건 설령 귀례라는 사람이 원했다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카프를 해산하라고 해서 해산시키고, 임화보다 더욱 사회주의자 성격이 강했던 귀례가 헤어지자고 해서 (자식까지 있는데) 그냥 헤어졌으며, 무엇보다 두 번째 여자인 지하련과는 결혼했기 때문이다. ㅋㅋㅋㅋ 프톨레타리아 입장에서 결혼식이라는 형식적 허례를 갖출 필요가 없다는 견지에서 그만 두었다고? 혁명 전사들의 동지적 결합이라고? 그럼 계속 이상적인 동지로 남았어야 옳지 동거는 왜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것도 이귀례가 먼저 그렇게 말하도록 냅뒀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좋아하는 여성이라면서 감싸줄 생각 전혀 없냐? 임화가 두 번째 부인과 결혼한 이후의 삶이 너무나 처참했다지만, 일단 첫 번째 부인과 그 자식보다는 오래 살았던 게 아닌가. 너 어느 곳에 있느냐라는 시에서는 자식(딸이다.)이 보고 싶다고 울부짖으면서, 그 와중에, 이렇게 말한다.

 

경애하는 우리 수령은
무엇이라 말하였느냐
한 치의 땅
한 뼘의 진지일지라도
피로써 지켜내거라
한 모금의 물
한 톨의 벼알일지라도
원수들에 주지 않기 위하여
너의 전력을 다하거라
원수가 망하고 우리가
승리할 때까지 싸우라'

 

 

 

 발렌티노인지 뭔지는 몰라도 난 얼굴 잘 생긴 남자는 딱 싫다. 야수에게 가까이 다가가면 손만 물리고 치료는 여성이 도맡아야 할 가능성이 높다. 미녀와 야수에서 벨이 야수 길들이기에 성공한 이유는 '미녀라서' 그럴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야수에서 미남으로 돌아온 다음엔 어떻게 되었을까? 은혜는 털끝만큼도 기억 못할 가능성이 크다. 벨의 얼굴이 늙어가고 똥배가 나와간다고 지적질이나 안 하면 다행이지.

 

주리라 네 탐내는 모든 것을 중에서

그러나 네 높고 큰 산악의 귓전을 기울여보라!
네 잠잠히 넓은 대양과 호수의 푸른 눈알을 굴려보아라!
벗 '김'이 누워 있는 불룩한 무덤 위에
조으는 듯 피어 있는 머리 숙인 할미꽃이라든가,
아침 햇빛에 잠자던 머리를 들어
아득히 먼 저 끝까지
날마다 푸른 물결 밀려가는
이 아름다운 봄철의 들판이라든가,
그 위에 우뚝 허리를 펴
지나간 시절에게 패전한 흉터가 메일랑 말둥 한
움 터오는 나뭇가지들의 누런 새순이라든가,
저 버들가지 흩날리는 언덕 아래
텀벙 엎더져 눈을 털고
동해바다 넓은 어구로 흘러내리는
성천강의 얼음 조각이라든가를...
오오, 유수이다!
보는가! 저 얼음장 뒹구는 위대한 물결을!
(...)
정말로
가을에 아프고 쓰라린 기억은 한 번도
누런 풀숲에서,
가만히 머리를 숙이고 얼굴을 붉히는
할미꽃의 용기를 꺾지는 못했었고,
거센 동해의 산 같은 격랑도
삼동 긴 겨울
길 넘게 얼어붙은 빙하를 녹여
하구로 내려미는
한 오리 성천강의 가냘픈 힘을
막아본 적은 없었다.

'Poem&Essa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초록의 감옥  (0) 2017.05.13
쑥쑥  (0) 2017.05.10
나와 작은 새와 방울과  (0) 2017.05.08
콩이나 쪼매 심고 놀지머  (0) 2017.04.28
버려진다는 것  (0) 2017.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