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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Essay

버려진다는 것

왜 눈물은 다녀간 것일까

조영심

이 파장은 모국어의 맥놀이라
귀를 세워 주파수를 탐색합니다

동글납작하니 고만고만한 대여섯의 품세 딱, 창밖 단풍잎만큼 물들어가거니와 어느 바람에건 떨어질 듯도 보입니다 늦가을 카페에서 깔깔대는 저 둥그런 회동에 가까워지려고 나도 자리를 옮겨봅니다 아, 합격을 한 모양입니다
칠순 넘어 늦공부 하느라 애를 먹었다는 둥 한 번 낙방하고 두 번째 붙었을 땐 장원급제한 것 같았다는 둥 다 늙어 필요 없을 것 같아도 붙고 보니 시원하다는 둥 철 지난 회고사는 단풍잎에 써내려가는 햇살의 기록이 됩니다 저 연세에 운전면허 딴 것도 대단하다 싶은데,
선서할 때 말이야, 성조기에 충성을 맹세하는데 가슴께로 무엇이 철렁하고 내려앉지 않겠어!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았어! 고국 떠나 온 지 삼십 년도 넘었는데 글쎄! 눈시울 훔치며 다시 깔깔댑니다

돌아보면, 추억도 가지 치며 자라는 생명입니다
흔들리는 단풍 쪽으로 누군가 귀를 돌려놓습니다

 

 

 
예전에 내가 애니 소개 코너로 나가려다 파토난 팟캐스트 방송이 하나 있었다. 나 없이 계속 진행하고 있을 거다. 그 방송에 참여하는 사람 중 소설가가 있었는데 항상 오프닝 멘트의 마지막 대사가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청춘들은 좋아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인지 알지만 버려진다는 것은 어떤 기분인지 모를 듯하다. 그러니 계속 사랑을 하려 하겠지. 버려진 것들은 모두 흘러간다.

 

 이 시집이 특히 그런 기분이다. 최근 소설들은 마치 유행이라도 되는 듯 작중 인물이나 풍경을 상세히 묘사하지 않고 넘어가는데, 여기에 나오는 시들은 대부분 굉장히 지금 여기의 현실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특히 소외되는 것들을. 소외되는 것들 그 자체가 문제가 되기보다는 시대라던가 권력이라던가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실수 한 번 할 수 있지. 하자 하나 있을 수 있지. 그들은 이렇게 외치며 이를 악 물고 날카로워진다. 혹은 둥글어진다. 저마다의 필요성에 의해 그들은 변해간다. 그 변화는 앞으로 그들 스스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그리고 무언가에게 버려지고 무언가를 버리며 내 안의 벽을 부수고 있는 나는 어떻게 변해가고 있을까. 적어도 사자 낙타 어린아이 중 낙타라도 되면 좋으련만.

 이번에도 김정원 시인 분이 주신 책인데 김명이 시인 분이 여기 애지문학회에 속하신 줄은 정말 몰라서 깜짝 놀랐다. 섹드립을 페미니즘 식으로 신명나게 하시는 분인데 니체의 피로 쓴 책을 여성의 월경과 연관지어 달에게 받은 힘이라 쓰실 줄이야 ㅋㅋㅋ 원래 이런 분이신 건 팟캐스트 방송으로 처음 뵐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아주 참신한 시이자 아이디어였다. 오랜만에 혼자서 유쾌함을 만끽했다.

 

 

 

의외로 강원도에 대한 시가 하나 있어서 반가웠다. 그런데 왠지 가본 기억이 없다(...) 생각보다 강원도끼리는 서로 오고 가기가 힘들다. 강릉은 좀 수월한 편인가? 아무튼 물속에서 수영하기엔 나이가 좀 뻘쭘해도 한번 보고는 싶다. 이번 여름에 계획을 잡는다면 계곡은 정말 오랜만에 가보는 거 같다. 어라 그러고보니 다음주 월요일날 삼척 가는데...? 블로그에 사진이라도 올려보겠다. 

 

내 삶의 징검다리

류현

강원도 삼척 삼화산 무릉계곡을 찾아서
조용히 지난 시간을 반추하는데

20대부터 지금까지
잡힐 듯 말듯 아득하기만 하네

감고 있는 두 눈 속에 부처님 미소가 어리고
지나간 추억의 징검다리들은 껑충 껑충
나를 향해 뛰어 오고 있네

보이지 않는 추억들은 어디 갔을까
징검다리 사이로 흐르는 계곡물에 실려
가냘픈 비파소리처럼 이별을 알려오네

내 앞으로 바짝 다가오는 시간들
흘려 보내야할
세월들은 잡히지 않는데

계곡물은 깨지고 부서지는
아픔의 상처를 안고
말없이 뒤돌아보며 흘러만 가고 있다

조용한 계곡에 산그늘이 어슬렁거리는데
후두두둑 떨어지는 빗방울
징검다리 건너라고 내 등을 밀어주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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