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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Essay

아무도 모르게 어른이 되어

에스키스

네 얼굴이 빛난다
백지 위 모래바람을 맞으며
대체로 너는 기억이 없고
단호한 표정이 없다
내일은 새로운 사건이 올지도 몰라
발갛게 익은 사지를 버둥거리며
기형의 아이가 하나의 세계를 그린다
어떤 이야기는 부끄러운 몸이 되고
귀기울이면 잠든 애꾸눈 하나가
뒤척이는 소리가 들려
원 안에서 소스라치듯 놀라는
저기, 죽은 새의 부리
점 속의 불길한 운명처럼
가까운 곳에서 먼 시간으로
모호한 정지를 덧칠한다
백색의 안쪽은 적색
다발의 안개는 짙어지고
저를 버린 사람들이 잠에 들면
기꺼이 짙어지는 창백들
죽은 새의 부리가
울음이라는 작은 묘혈을 판다
구름의 평화가 시작된다
맵고 거대한 심장이
부풀어오른다

 

 

 

 

동생이 자꾸 글을 쓰겠다고 되도 않는 소리를 한다.

 

 그러면서 한 자도 못 쓰는지 안 쓰는지 하는 걸 보면 아마도 평생 쓰지 못하리라고 생각한다. 그 녀석이 되고 싶다는 공무원도 될 수 있을지 의문인 판국이다. 안철수를 지지하고 문재인은 싫어하지만 둘 다 싫어한다는, 성서의 탕아를 생각하게 하는 그 남자애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원숭이에 비유하는, 조지 오웰 식의 풍자소설을 쓰고 싶다고 한다. 참 경청이란 게 사람 스트레스 받게 하는 짓이구나. 차라리 치고박고 싸우며 우는 게 덜 스트레스 받을 것 같다. 하지만 녀석은 180 이상의 키를 자랑하고 전에는 몸싸움을 하다가 앞니가 날아갈 뻔한 적이 있어서 얌전히 귀를 파면서 들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때가 있다나. 그래 자기계발 소설 열심히 써라, 빈정거림이 섞인 격려를 하니 녀석도 갑자기 열심히 귀를 파며 공무원 시험 대비하러 지 방으로 들어간다. 문득 노르웨이의 검은 황소라는 시의 일부분이 생각나 이렇게 물어보고 싶었다. 너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받기 위해 하얀 스타킹을 신고 발바닥이 까매지도록 원숭이춤을 출 수 있니? 근데 녀석의 이전 연애 경력을 보건대 남자의 알량한 자존심에 기스를 남기기만 할 거 같아 그만두었다.

 시인이 묘사한 엄마와 딸 간 창녀 대물림의 불행은 그래도 많이 사라지지 않았나 싶다. 성적 특성은 둘째치고 정말 성추행을 당해도 그게 추행인지 모르고 살았고 성폭력을 당해도 쉬쉬 넘어가기 급했던 내 어릴 적 시절을 보면 말이다. 지금 세상을 보면 참 어안이 벙벙해진다. 핸드폰 끼고 자면 암 걸리네 어쩌네 해도 네트워크 때문에 좋은 세상이 온 건 사실이다. 덕분에 이런 시도 알게 되고 말이다. 예를 들어 여초 카페란 곳에서 이런 글이 올라왔다. 처음엔 부산 남포동에 가면 겪는 일이라고 하다가 나중엔 지역 상관없이 한번씩 다 당했다고 한다. 남자는 못 건들고 여자들만 머리채 휘어잡고 강제로 휴대폰 대리점으로 끌고 간다고 한다. 핸드폰을 숨겨서 안 돌려주지 않나. 남직원이 여자손님 데리고 들어가면 다른 남직원들이 문 닫고 입구를 지킨다고 한다. 사진 찍은 뒤 경찰서에 직접 사진 들고가서 고소장 적으면 접수된다고 하니 참고 바란다. 그런데 이 시인도 부산 출생이라고 하더라... 고통받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시에 너무나 많이 나와서 안타깝다.

 왠지 이 시집에 대한 수많은 리뷰 중에서는 누런 벽지란 단어의 의미를 한 분밖에 의식하지 않는 듯한데, 아니, 그 분도 누런 벽지의 진정한 의미를 아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이런 제목의 단편 소설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이 시집을 읽은 사람은 소설의 성격을 짐작하고도 남겠지만, 페미니즘에 기반한 공포 소설이다. 고어물이라기보단 전형적인 우리나라 공포 영화를 연상케 하는데, 19금 여고괴담 정도가 딱이라 생각한다. 여성의 광기에 대해 잘 쓰고 있어서 영문학도라면 꽤 즐겁게 감상할 수 있으리라.

 

 

 

시 중에서 사루비아가 있어서 검색했는데, 사루비아 짱 무려 담배피는 갸루였구나... ㄷㄷㄷ 더욱더 사랑스러운데♡?(?) 어렸을 때 봐서 기억을 못하는 건지 아님 한국방송이 시키지도 않은 심의를 해서 담배 끝에 사탕을 그려놨는진 모르겠지만 여러분 사랑스럽지 않습니까!! 웨딩피치 중 최애에요!!! 츤데레 눈빛 사이쿄오!!!! 그래서 내 인생이 정상적인 여성의 길로 가지 못했나 싶기도 하지만.

 

사루비아 중에서

떠돌이 개의 발정난 눈알처럼
불현듯이 터져나오는 산모의 하혈처럼
너의 빛깔은 리듬에 취해
격렬한 영혼이 된다

차가운 심장을 옷깃에 달고
유일무이한 존재의 방이
아무도 없는 방으로 변하는 일

붉음의 일, 금지된 것들의 탄생, 그리고 서서히 사라지는
세상의 감탄사들을 생각해내는 일

커튼을 열면 흩날리는 입술들
황달에 걸린 땅거미가 덮치면
모든 격렬한 것들이 눈을 감고
공중의 잎들을 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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