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oem&Essay

나와 작은 새와 방울과

꿈과 생시

꿈이 생시이고 생시가 꿈이라면,
좋을 거야.
꿈은 아무것도 정해져 있지 않으니
좋을 거야.

낮 다음은, 밤인 것도,
내가 공주님이 아니란 것도,

달님은 손으로는 딸 수 없다는 것도,
백합 속으로는 들어갈 수 없다는 것도,

시곗바늘은 오른쪽으로 간다는 것도,
죽은 사람들은 없다는 것도.

정말로 아무것도 정해져 있지 않으니,
좋을 거야.
가끔씩 생시를 꿈으로 꾼다면,
좋을 거야.

 

 

 

  항상 어떤 말을 감명깊게 들었다가 최근 들어 갑자기 확 식어버리는 그런 유형이 있다. 그게 내가 아니라는 장담을 할 수가 없다. 친구관계는 유지하면서 그 사람이 하는 말은 듣지 않으려 한다니 굉장히 이기적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어떤 말은 그런 법이다.

 

 나에게는 그 말이 "걷는 사람은 달리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달리는 사람은 나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노력하는 사람은 천재를 이길 수 없다. 천재 중에서도 노력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라는 문장이었다. 나는 그 문장을 부정하진 않았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도 어쩌자는 말인지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나와 작은 새와 방울과'라는 시가 나의 그 찜찜한 기분을 명확히 문장화해주고 있었다. 아니, 솔직히 내가 새보다 빨리 달릴 수 있다는 말은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사람은 방울의 음을 낼 수는 없지만 노래를 알고 부를 수 있다. 나는 나고 새는 새고 방울은 방울이며 각기 다르기 때문에 모두가 좋다는 긍정은 한없이 아름다웠다. 이 시집이 전반적으로 슬픈 시가 가득하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이 시 말고도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시를 굳이 꼽자면 얻어맞는 흙과 밟히는 흙이 각기 농사를 짓거나 자동차를 지나가게 하기 쉽다는 내용의 '흙'이란 시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또한 밟히거나 차이지 않은 흙도 생명이 살기에 소중함을 강조함으로써 반전을 꾀하고 있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남들을 소중히 생각하고 쓸쓸함을 위로해주려는 마음씨 좋은 시들이 자연을 배경으로 찬란히 빛을 발하고 있다. 장르가 동시라서 짧고 쉬운 한자가 많으니 한번 가벼운 마음으로 쭉 읽어 내리기 딱이다. 하지만 무거운 주제로 인해 생각이 많아지면 한번쯤 깊이 숙고해보길 바란다. 예를 들어 위에 눈도 아래 눈도 가운데 눈도 모두 쓸쓸하다는 '쌓인 눈'이란 시에선 순식간에 온 우주를 무대로 하기 때문이다. '꿈과 생시'라는 시는 아직도 왜 죽은 사람들이 없다는 게 정해지지 않아서 좋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살면서 천천히 곱씹어보게 될 시들인 듯하여 시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면서 읽었다. 시에서 나온 것처럼 놀던 사이에 어느새 친해진, 모르는 언니가 내 두뇌에 나막신 끈을 단단히 동여맨 느낌이었다.

'Poem&Essa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쑥쑥  (0) 2017.05.10
임화 해협의 로맨티시즘  (0) 2017.05.09
콩이나 쪼매 심고 놀지머  (0) 2017.04.28
버려진다는 것  (0) 2017.04.22
소주병  (0) 2017.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