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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tasy&Comics

이리야의 하늘 UFO의 여름 그 네번째

"나는, 나는 말이다, 마지막에 네 손에 죽는다면 그걸로 좋았다고!"

 

 

 

사실 난 스이센지보다는 에노모토가 더 좋았다. 아저씨같은 캐릭터로는 스이센지가 이 작품에서 더 인기가 많았으리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작가의 의도를 추측해보건대 그는 그냥 엑스트라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유행에 따르는 건 인간의 본능이라고 흔히 생각들 하지만 유행은 '아무도 밟지 않은 신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일단 진실을 제대로 깨우친 순간에는 일단 '자신의 발자국'이 남아있기 때문에 그것조차 버려지기 마련.

 

 스이센지는 일단 환상적인 기분을 쫓는다는 느낌이 더 컸다. 달에 처음 발을 딛은 지구인을 생각해보자. 인류가 달에 발을 딛은 건 처음이라는 식의 온갖 뉴스가 서두를 장식할 것이다. 하지만 그가 한 번 더 달에 발을 딛고 싶다는 생각을 할까? 그가 만일 그럴 생각을 한다면, 나는 그가 말년에 돈독이 올랐다는 생각을 할 것 같다. 달 위에서 콘서트를 한다는 뮤지션의 새로운 '시도'가 겹쳐진다면 또 모를까. 하지만 스이센지는 취향을 바꿨다. 자신은 호기심은 있어도 주류의 더러운 짓에는 끼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미 정복된 무언가, 나중에는 다들 알게 될 미스테리엔 끼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읽었다. 혹은 군에게 본능적으로 세뇌되서 외계생물에 대해선 피해간다는 설정인지도 모르겠으나, 아무래도 작가는 평범한 사람들을 무시하지 말라고 설파하는 게 이 작품의 최종 목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므로 그쪽에 대해선 가능성을 적게 하고 싶다.

 에노모토는 이 작품의 오브라이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 작품에서 매우 노골적으로 드러나지만 그는 주류이자 악인에 속한다. 하지만 그는 악인이 되기를 택했고, 결국 여기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도 이리야의 선택을 전적으로 지지함으로서 악인의 축에 속해버리고 만다. 의도인지 의도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1984의 주인공을 아사바와 겹치고 있다. 마치 강아지처럼 연약하지만 죽기 전에 그는 혹시 자신을 배반(?)한 여자 주인공을 지지하려는 생각 끝에 빅브라더가 지배하는 세상을 찬미한 게 아닐까라고. 만약 그렇다면 그 악을 우리가 비판할 자격이 있을까라고. 끝에 있는 번역가의 말처럼 이리야가 끝까지 저항하길 바라지만, 그녀를 사랑하니 그녀의 의견이 무엇이던 간에 지지한다고. 글쎄, 나는 그의 마음을 알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처음부터 이 작품의 그늘인 에노모토를 주목했지 아사바를 주목하지는 않았다. 위의 글은 아사바의 아버지같기도 하고 이리야의 아버지같기도 하고 이리야의 전 애인같기도 한 에노모토라는 군인이 이리야를 떠나보내고 아사바에게 한 대사이다. 그는 끝까지 좋아하는 이리야를 지켜봐주었다. 좋아하는 사람을 지지한다는 건 그 세계를 모르는 사람이 할 수 있을만한 일이다. 하지만 내부 사람일 경우는 어떨까? 누구한테나 그런 용기가 있는 건 아니다.

 결국 악보다는 어리석음 때문에 대부분의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나 이 작품에선 이리야와 아사바가 도망치고 나서 만난 최악의 부랑자조차도 어리석지는 않았다. 그저 환경만 탓하며 절망만을 품어선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나는 아사바를 성장시킨 결정적인 계기가 된 사람은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결정적인 태도를 딱 한번 취하고 있는 이후의 아사바를 묵묵히 지켜본 에노모토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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