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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er

아라네스프의 시간

유년기혁명사

공산 당원이었던 나의 어머니는 소련군의 얼굴에 키스를 퍼부었다. 나는
인파들 사이에서 어머니가 다른 남자의 얼굴에 키스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분위기는 황홀했고, 어머니는 환호했고, 나는 살짝 발기했다.

불편한 잠에 취하자 나방이 한 마리 날아들었다.
나는 세상이 깨닫는 첫 존재라는 걸 끄적이고 싶었다.
자고 일어나면 생기는 그런 비탄이라도 없기를 바라보았다,
불완전한 삶 속의 완벽한 소설을 꿈꾸어보았다.

나의 유년은 왠만한 혁명보다 더욱 피 냄새가 짙었다.
바로 이것이 나의 지난 십 년간의 유년에 대한 침묵 자세 말투 신화 소설이다. 아직도 내 눈에는 나방이 보이지만, 나는 안다, 나방은 내 눈에만 보이는 환영
이라는 것을.

십 년, 무려 십 년 동안 배인 냄새

 

 

 

 

이 책은 해방촌 북카페 치읓 2층에서 찾았다.

 

그 때 발견한 이후로 몇 년은 흘렀으니 아마 지금은 찾지 못하리라 생각된다. 사실 시간도 때울 겸 아무 책이나 잡는 대로 사겠다는 심정으로 갔는데, 예상 외로 많은 시간이 소모되었다. 맘에 쏙 드는 책은 너무 비쌌고, 가벼운 책들은 과하게 가볍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사진이 든 책들을 많이 취급하다보니 텍스트가 해설 위주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에 비해 이 책은 병적인 분위기를 제외하고는 사진과 아무 관련도 없는 텍스트가 나열되어 있어서 마음에 들었다. 한동안 점찍고 있다가 변함이 없어서 샀다.

처음에 볼 때는 이를 닦다가 잇몸에 피가 나는 장면이 마음에 들었던 듯하다. 그래서 쭉 훑어보다가 어떤 사람과 아파트 옥상에서 상자 종이를 깔고 앉아 키스하는 장면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키스했던 그가 화자를 수치스럽게 만드는 장면도. 왜 우리는 나의 삶에 대해 놀리는 다른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대항하지 못하고 그가 더 이상 놀리지 않게 내가 똑바로 행동할 방법(?)을 궁리하는 걸까. 하긴 경험상으론, 그 사람은 99.9% 대항을 반항으로 알아듣고 날 더 마구 대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냥 마음대로 살도록 무념무상으로 내버려두는 게 좋더라. (그리고 연인이면 반드시 헤어져라.)

내 기억으로는 이 책을 쓴 사람 혹은 편집한 사람 혹은 둘 다 다함께하고 관련이 있는 듯하다. 운동권 여러분들은 다들 알다시피 그 내부가 몹시 개판이고 이 책을 쓴 사람들 중에서도 그런 인물들이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하자. 난 워커스를 욕하면서도 보는 이유가 있듯이, 이 책도 몇몇 부분은 좋아서 보고 있다. 근데 왜 워커스랑 디자인이 무지 똑같은지는 물어보고 싶다. 패턴 좀 바꿀 생각 없나.

이 책엔 가상 인물인지 실제 인물인지 도통 헷갈리는 체코의 게이 곤조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1984년에 사망한 그는 (Aran으로 추정되는) 1990년에 태어난 누군가의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그는 2013년에, 그가 빠진 강물은 아니지만 아무튼 물이고 심적으로 가장 가까운 한강을 찾아간다. 그는 한강의 어떤 섬을 찾아가려 노력하면서 그 섬의 역사와 가까워 보이면서도 먼 그 거리에 놀란다. 그와 섬 사이엔 법이 가로막혀 있었다. 섬 주민들은 정치가들에게 속아 와우산으로 이주해 가려다가 몇몇이 한강에 희생당했다고 전해진다. 과연 용의자는 한강뿐인가.

 

간지러움 중에서

껍데기에서 껍데기로 옮겨진 낯선 이의 혈액보다 피부에 닿아 끈적이던 과즙이 오히려 더 내 피 같았다.

고속버스는 태연히 출발했고 나는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아이스크림 하나를 빨아 먹었다. 배트맨 마크에 그려진 노란 봉지에 든 열대 과일 맛 아이스크림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아이스크림을 수박 맛으로 기억한다. 신발 밑창부터 손 끝까지 퍼지던 수박 맛으로.

 

 

 

 

틀렸다 건담빠가 된 이제는 수박 하면 수박바만 생각나(...)

 

 

그래도 배트맨 씹은 건 미안해서 근엄진지한 짤로 올려본다.

 

1948-1984
1990-2013 중에서

"춘천 청평사 극락보전에 날 세워달라고 했다. 소양강 굽어 보며 놀러다녀야지."

 

 

 

그런 곳이 있었구나. 왠지 갈 곳이 자꾸 늘고 있다.

 

 

근사한 질병 중에서

지난날, 수혈을 하며 오른팔에 꽃힌 주삿바늘로 나오는 피를 보며 그의 에이즈와 매일 남의 피를 때려 박으며 2년을 살아온 그녀의 혈관이 떠올라 막연하게 두려웠어요.

동성애 에이즈 만성신부전증 자살, 단 네 단어로 설명되는 더럽고 고통스럽고 오염된 썩어빠진 몸뚱이가 그들의 몸이라서 내 팔에 남은 멍 자국이 행복했다.

1984년에 이름 없는 강가에서 발견된 시체. 물에 불어서 200kg이 넘는 시체로 발견된 나의 환영과 2013년 자신의 질병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버린 너의 육체가 아슬아슬한 다리 위에서 위태롭게 생을 건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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