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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er

에로티시즘

남자가 울 때는 연애가 시작되는 때라고 보아도 거의 틀리지 않는다.

 

 

 

 

여자가 계산을 한다고 착각하지 않길 바란다.

 

여자도 남자가 전부일 때가 있다. 그러나 그녀에겐 타오르지 않았던 과거가, 남자는 잊어버린 과거가 남아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자는 천천히 타오르기 때문에, 항상 사랑의 마지막에는 재가 남는다.

 

 

 

남성이 느끼는 성적 욕망은 여성에 비해 상당히 제한되어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남성은 여성이 자신과 똑같이 욕망을 느끼는 방식을 체험하길 원하거나 생각하며, 그래서 동인지에 나오는 여성의 자위는 거의 언제나 무언갈 넣는 행위로밖에 표현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여성들은 마스터베이션 말고도 욕구를 충족시키는 여러가지 방법을 알고 있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향수나 구두나 가방에 오르가즘 비슷한 걸 느끼는 여성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 그들처럼 되려 노력하지 못하면 도태될 것이란 점을 책에선 분명히 하는 듯하다.

여성은 보통 남자가 자기 자신을 봐주길 원한다. 설령 자신이 양다리를 걸치고 있으며 남자는 낚인 물고기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녀는 아이돌처럼 무대에 오르길 바라고, 적어도 한 명의 남자가 자신을 쳐다봐 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남자는 대체로 말을 거는 걸 귀찮아한다. 그래서 여자는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면서 남자가 자신을 봐주기 위한 모든 적극적 수단을 쓰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녀는 남자가 귀찮아서 그런 것임을 이해하지 못한다. 여자는 이 때부터 머릿속에서 추리소설을 그려나가기 시작한다. 결국 남자가 지쳐서 그녀 곁을 떠나려 할 때쯤 그녀는 자신에게 보여지는 모든 권태의 징조를 복잡하게 꼬아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그러다 결국 그 모든 서툰 추리가 거짓이었음을, 남자가 고난이도의 사랑(?)을 주작하기엔 너무 단순함을 발견했을 때 여자는 분노하여 남자의 무직이라거나 발기부전이라거나 하는 약점들을 캐내어 공격하면서 헤어질 이유를 찾는 것이다.
는 내가 고딩시절 읽었던 할리퀸 소설 내용임.

그러나 이 책에 의하면, 피부로 성감대를 직접적으로 느끼지 못한다 해서 남성들을 열등하다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여성은 느끼는 종류가 많기 때문에 어떤 남성에게서 풍기는 카리스마를 성적 매력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남성은 보통 보스(종교의 장, 회사 상사)의 매력과 여성의 매력을 확실하게 구분할 줄 알기에 스캔들이 나는 경우가 드물다. 그러나 여성들이 보스에게 정신적 숭배와 함께 몸을 바친 탓에 인생이 파탄난 경우는 자주 볼 수 있다. 물론 사랑은 죄가 아니지만 성애에 구애받지 않고 아무 탈 없이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여성이 딸리다는 걸 이 책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렘이 스토리상 예쁜 여자를 가진 남자를 사랑하는 대표적인 예이기 때문에 올렸으며 예쁜 거 쫓는 건 한결같은 남자의 특성을 매우 실천적으로 대표하는 사진이라 생각했습니다. 

 

또한 거세를 끝낸 후에도 유독 불안이 심한데 상대방을 너무 사랑해서 자신이 주는 만큼 달라는 여성의 보챔이 강해질 때가 있다. 그게 보통 남성들에게는 공포로 다가오는가 보다. 그래서 요새 공포스런 동인지에서는 남성을 (실제로) 거세시키는 여성이 많이 나오며 이를 캐릭터화한 게 얀데레이다. 사실 이들의 걱정을 덜어주는 데 성공하여 분노를 없애고 나면 이토록 지고지순한 사랑이 없다. 그러니까 메가데레가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앞뒤과정은 생략하고 후반의 메가데레나 초반의 라이벌 여성들을 제압하는 여성이 좋다고 하는 남성들이 의외로 많다. 참 그렇게들도 여자를 모르니 통탄할 일이다... 그 분들하고 사귀시는 여성들은 정말 인내가 대단하신 것이다.

생각해보니 사드는 소설을 썼다고 이야기하면 그럭저럭 넘어갈 수 있는데, 바타이유는 철학에서 연애가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니 용서받을 수는 없겠다. 혼전 성관계로 애가 생길까봐 전전긍긍하는 커플들이 얼마나 많은가. 까딱 잘못하면 새로 생성(...)될 판에 에로티시즘이 죽음이라니 너무하신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두철수에서 이야기했듯이 결혼을 해서 애를 낳지 않았으니 저런 소리를 쉽게 할 수 있는 거라 생각한다. 아니면 책임감이 없던가.

 

 

 

 

계속 제복 관련 논란이 나오니 에리치카 제복 스페셜 사진을 올려봤다. 남자들은 누드를 더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스타일 좋은 사람이 제복을 입은 모습도 꽤 좋지 아니한가<- 

 

남자에 대해 새롭게 알아가는 중이다. 남자들이 나에게 피해를 끼쳤다는 사실을 안 게 7이라면 내가 남자들을 이해하지 못했구나 깨닫는 게 3 정도인 듯하다. 심지어 남자가 강간을 당하는 건 여자가 강간을 당하는 기분과는 큰 차이가 있으며 섹스 자체로 당하는 게 아니라 이데올로기로 당한다는 견해는 참으로 지당한 듯하다.

 

 

 

 

확실한 예를 들자면 이성애 남자들의 이상향 하렘은 아이마스고 지도자(P)적인 남자 한 명에 다수의 여성이 들러붙음. 

 

일대일의 관계를 중요시하고 우정과 사랑을 분간하기가 어려운 건 러브라이브. 그래서 아이마스는 가능한 한 많은 여자가 있는 편이 좋고, 러브라이브는 1학년 셋 2학년 셋 3학년 셋이 이상적인 것이다. 하나면 쓸쓸하고 둘이면 커플결성 가능성이 너무 높아지니까.

 

 

 

책의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다. 

 

일단 썸을 탄다. 나는 상대방에게 선망이나 호의를 품게 되며 이는 연애라고 볼 수는 없지만 징후라고 볼 수는 있다. 구체적인 사랑으로 대상을 고려하게 되면 증오도 깊어진다. 상대의 한계점이 보이는 것이다. 남자는 여자의 슬픔을 자기 탓으로 보며, 이를 억울기구라고 한다. 여자는 남자의 상한 기분을 다른 일 때문으로 돌리며, 이를 박해기구라고 한다. 그런데 억울기구가 과잉부담되어서 사라지게 될 때 공격은 사랑의 대상에게 향할 수 있으며, 이는 생성과정에 들어가게 되는 인간의 상태이다. 각각의 요소가 완전히 재구성되며, 이 때 사람들은 종교를 바꾸게 되는 등 개인적이지만 큰 변화를 겪는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사랑이 나타난다. 여기서 새로운 사랑은 내가 사랑했던 그 대상일수도 있고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 탁월하게 숭고한 자질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좋다. 여기까지는 개인의 변화지만 쌍방의 연애는 두 사람이 서로 그런 상태에 있는 걸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전염이라 일컬여지기도 한다.

 

 

 

P.S 남자들은 보험?같은 잔머리 쓰지 않는다고 본다. 

 

물론 미래를 생각하고 여자 한 명 들여놓긴 하겠지만 이 남자놈들은 여자랑 같이 자는 것만 아니면 여자랑 모든 감정교류 다 하고 밥 다먹고 스킨십 다 하는 걸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러면 보험 아니고 뭐냐고? 정답은 '애완동물'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기분이 나쁠테니 예의상 보험?이라 하자. 이 나쁜 놈들은 보험?보다 더 이쁜 여자만 보면 정신이 나가서 넙죽거리고 굽신거리지만, 그것도 잠깐 뿐이다. 그러니 여자들이 할 선택지는 세가지가 있는데, 1번 그 남자의 전부를 수용하던가, 2번 싸우고 헤어지고 만나고를 반복하던가, 3번 그냥 그러고 살게 내버려두는 게 있다. 3번을 선택하면 좀 외롭긴 하겠지만 아무 슬픔 없이 살 수 있다. 그리고 이후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으니 그에 대비할 것.

'너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만날 사람 다 만나. 그래도 괜찮아.'에서는 (너는 보험?이니 내가 맘이 내키면 갈 건데 좀 돈도 많이 벌고 이쁘게 하고 살아, 지금은 이유는 딱히 없는데 너 참 맘에 안 들어)라는 뜻이 있다. 이것도 세 가지 방법이 있다. 돈을 많이 벌어서 남자 집 차려주던가, 다이어트하고 성형하고 화장 배워서 꾸미던가, 아니면 아예 만나질 말던가. 근데 아무리 그 남자 꼬시려고 고생해도 넘어갈지 안 넘어갈진 장담 못한다는 거. 이 세상에 예쁜 여자는 많고 우리는 나이가 들어가며 남자는 어린 여자를 좋아하니까.

3번은 좀 수정할 필요가 있어서 더 써본다. 여성들이 남성들에 대해 저지르는 가장 나쁜 버릇은, 헤어질 때 남성에 대한 모든 추억을 곱씹으며 약점을 찾아서 헐뜯고 결국엔 그가 처음부터 나를 섹스토이로밖에 여기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점이다. 만에 하나 그런 경우가 있을 수는 있으나, 다른 케이스가 있을 수도 있다. 그 땐 정말로 사랑했거나 혹은 사랑했다 생각했지만, 정말로 더욱 크게 사랑하는 상대가 찾아온 것이다. 남자도 안정된 애정을 갈구하며, 상대가 안정된 애정을 베풀기를 요구한다. 그저 그게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뿐이고 다른 사람을 찾게 되는 것이다. 만약 요구가 과한 쪽이 있다면 서로 타협을 해 나가면서 맞출 필요가 있는데, 그러면서 애정이 확고해진다고 난 생각한다. 예전에는 시간과 거리가 사랑에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좀 생각이 다르다. 뭔가 길게 말했지만 남자던 여자던간에 헤어진 이 인간이 처음부터 꽃뱀(제비) 혹은 나쁜 여자(남자)였냐 아니냐가 중요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1992년에 이 책이 번역되고 25년이 지났지만 이 책의 논리는 아직도 필요한 듯하다.

 

 

 

 게이나 폴리아모리에 대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편인데, 특히 폴리아모리 쪽에 대해서 자세히 다루는 편이다. 일단 레즈비언에 대한 글귀 중 마음에 드는 대목을 가져왔다.

 

 레스비언끼리의 사랑은, 적은 수의 사람이 서로 사랑하고, 자기들이 세상의 상식에서 벗어나 모범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함에 의하여 성장하여 왔다. 베르린의 커뮤니티에 관한 여자의 말을 인용해 본다.
"동료의 한사람, 한사람이 다른 동료에게 나타내는 유순함과 보살펴 주려는 마음가짐은, 그대로 연인끼리의 관계에 해당됩니다. 우리들의 기분이나 느낌도, 서로 융화되어 있는듯한 느낌입니다. 그러므로 우정 같은 것과 섹스에 관계되는 것, 즉 신체에 관한 것을 엄밀히 분간하기는 어렵겠지요. 우리는 서로의 몸을 부드럽게 다룹니다...... 그러한 부드러움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특정 상대와 연애관계를 맺지 않고, 4년간 거기에 있을 수 있었습니다. 사랑에 대하여 고민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따뜻함에 관한한 부족한 것은 없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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