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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igion&Development

세상의 모든 최대화

항구의 겨울

 

항구의 겨울, 항구한 겨울은 뺄셈이 불가능한 세계. 마냥 쌓이기만 한다. 쌓여서 오직 잊힐 뿐. 항구의 겨울, 항구한 겨울 앞에서 우린 입을 다문다. 함구한 하늘이 속으로 울고 내리던 눈이 녹는다. 내리던 눈이 녹다 말고 공중에서 춤을 춘다. 눈의 속도는 늘 비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어 항구의 겨울, 겨울의 항구는 공중에서 천천히 짓이겨지는 춤을 마냥 바라보기만 한다. 그러다 자신을 밟고 가는 연인들을 기습적으로 미끄러트리고는 항구의 겨울, 한 구의 시체라고 읊조리면서 유쾌한 관객들처럼 웃어 보이기도. 그래도 웃음이 뺄셈에 가장 가까운 것이라 믿으며 그 믿음을 얼린다. 항구의 겨울, 항구한 마음. 몇 해 전에도 분명 비슷한 걸 얼렸었던 기억이 떠올라 잠시 부두에 모여 떨고 있던 선박들의 빈자릴 쳐다봤지만, 결국 모든 것은 덧셈이겠지만, 영원한 영을 꿈꾸며. 최대한 동그랗게. 차가운 얼음을 얼린다. 나는 가만히 자리에 앉아 술잔 속에서 얼음 깨지는 소리를 듣는다.

 

 

여러모로 무라카미 류가 생각나는 시들이었다. 이 분은 한국 시인계의 무라카미 류 같은 존재가 아닐까? 제법 인기도 있고 말이지.

 

산수가 나오는 시이긴 하지만 그렇게 복잡하진 않으니 걱정할 게 없다. 뭔가 스페인어인가 포르투갈어같은 게 나오는데 그게 더 어렵게 느껴질 정도이니 말이다. 이전에 기하학이 나오던 함기석의 시보단 훨씬 낫지 않은가(...)

이건 여담인데, 엄마 찾아 삼만리에서 주인공이 살던 곳은 이탈리아라고 한다. 그의 어머니께서 일하러 떠나신 곳은 아르헨티나의 바이아블랑카 항구 도시였다고 한다. 이 당시만 해도 아르헨티나는 비교적 잘 살던 곳이었다. 소년은 그 바다를 보며 어머니를 만날 상상에 젖어있던가, 혹은 이탈리아에서 그 항구를 보게 되는 상상을 했을 것이다. 나는 이 시에서 어머니를 만나지 못한 채 항구에서 그대로 정착해 일하며 삶에 쪼들려가는 소년의 모습이 떠올랐다. 상상은 자유라고 하지 않던가.

 

새처럼 우는 성 프란체스코를 위한 demo tape 중에서

 

성 프란체스코여

그대 새의 음성

투명한 예각들 부서져 내린다

돌을 쪼아 조각내듯

그러나 돌멩이 하나 상처 입히지 않고

돌 틈으로 꽃 몇 송이 밀어내는 힘으로

산산조각 나는 공중

번개처럼

번개가 지나가고 난 뒤의 말짱한 하늘 같은 것들 남겨두고서

공중분해되는 새들

(...) 새들의 자세

새들의 종종걸음

새들이 거는 전화

마이크만 한 새들이 떨어뜨리는 노래

 

 

전반적으론, 단순히 여행한 이야기와 음악에 대해 말하는 것 같으면서도 인생에 대한 교훈을 던져주는 시 같다.

 

대표적인 예로 구경거리같은 시가 있다. 가끔 페친 분들 중에 유령 페친들 보고 자신을 관찰하는 것 같아 기분 나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던데, 난 관찰당하는 것도 좋아하고 관찰하는 것도 좋아한다. 얼굴이 좀 생겼더라면 연극 배우를 했을지도.

특히 종교와 관련한 시가 많은데, 성 프란체스코가 등장하는 걸로 봐선 천주교 쪽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님 단순히 성당에 가서 시를 쓴 지도. 아무튼 신자로서 반가운 시들이 보였다. 사실 제목은 바흐 음악을 따온 듯하고, 초반엔 불교에 관련된 시가 많기도 하지만.

 

개미지옥 중에서

ㅡ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결국

그토록 뜨거웠던 욕탕도 식고 말고

불타오르던 사랑은 불태우는 사랑이 되고 말고

그 온갖 잿빛들 위로

생전 처음 추락해 보는

저 하늘 위

한 마리

 

 

긴 시가 많은데, 특히 개미소년 이야기는 하나하나가 긴 호흡을 지닌 연작시처럼 느껴졌다. 의외로 쉽고 간단한 우화같이 쓰여져 있어서 정말 재밌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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