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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igion&Development

그리움이 그림자처럼

"신부님 아녜스와 단 둘이 영화관에서 영화 보던 걸" "신부님 루치아와 차타고 다니는 거 봤어" "신부님 마리아와 단 둘이 찻집에 있던 걸" "저 자매는 왜 자꾸 본당사제관에 들락거려" ....., 본 것을 자기방식대로 생각하고 말한다. 마치 목격한 장면을 최신 뉴스 전하듯, 트위터,페이스북,카톡,밴드 등 SNS를 통해 사진과 함께 상황을 적어 올린 것은 생방송에 가깝게 급격하게 확산된다. 이렇게 무심코 자신이 던진 말과 행동에 본당공동체는 흔들리고 신자 상호간 큰 상처가 되기도 한다.

 

 

최근 박원순의 성추행 사건에 대해 어떤 의사가 '저게 왜 죄야? 내 병원에서는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들이 내 빤스도 빨아주는데'라는 말을 함으로서 논란이 되고 있다. 성당에서도 의외로 이런 일이 참 많다. 여성 신자들이 거의 당연한 듯이 신부님의 밥을 해주거나 설겆이를 해주고 심지어 빨래(빤스까지는 아니겠지만)까지 해주기 때문에, 일을 잘하는 사람에게는 이런 말이 나오기 십상이다. 이전에 나도 이런 소문으로 인해 힘겨웠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도 말씀하셨듯이, 싫다면 굳이 그런 일을 자발적으로 할 필요가 없다. 마치 교회가 우리 아버지인 마냥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성경에선 하느님이 아버지며 인류 모두가 다 평등한 그의 자식들이라 설명되어 있다. 지금은 자발적으로 신부님을 돕는다 해도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 정히 신부님이 아무 가사일도 안 하는 데 대한 불만이 있다면, 그 가사일을 대신 해줄 게 아니라 '신부님께서 직접 일하시면 안 되겠습니까?'라고 직접적으로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여자와 돌아다니는 것에 대해선.. 신부님도 사람이지 않은가. 사람을 대하는 데 차별이 있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의심간다고 한들 헛소문을 퍼뜨리면 결국 공동체는 깨지게 된다. 그리고 나만 잘하면 상관없지 않은가.

 

근데 다 재밌게 읽었는데 중후반부에 글 쓴 신부가 뭔가... 다 틀린 문법에 구마의식에 대해서 얘기하시더라. 신자(특히 여성)들을 공격하는 듯한 표현도 서슴지 않고 쓰시던데 그런 걸 말씀하시는 분이나 옮기시는 분이나.. 구마의식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 중 괜찮은 인물 그다지 본 적이 없는데; 다른 사람들 다 일상 얘기를 꺼내는데 그 신부만 유독 글을 읽기 불편했다. 아마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런 신부는 불편하지 않을까.

 

또 지도 신부님이신 배광하 치리아코 신부님을 모시고 영동지구 가톨릭 독서포럼에 참가하여 활동하고 있는데 이 모임에서 여러 방면에 박식하신 신부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의 은총 속에서 회원들끼리 서로의 마음을 나눌 수 있어 좋았다.

 

또 솔올 성당의 그라시아 성가대에서 성가대원으로 활동하면서 목소리를 천상에 전하는 느낌으로 열심히 봉사하며 주님과 함께하는 삶은 그 무엇보다 큰 축복이라 생각한다.

 

 

ㅎㅎ 이 글을 올린 이유가 있지만 밝히지 않으련다. 그나저나 지금 코로나19 때문에 종교 소모임도 중지되고 있는데 독서포럼이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ㅠㅠ 걱정된다.

 

짤짤이 순례길

 

김혜경

 

낯선 사연을 전하는 TV는 혼자 분주하다

한강 뱃길 얼었다는 수은주의 목쉰 소리가 새벽을 흔든다

지하철 2호선을 향한 잰걸음의 그림자들이

순례길에 오른 수행자의 검은 얼굴이다

동전 500원을 나눠주는 천사들이 있다

동전을 받기 위한 치열한 발걸음,

줄은 길이 되어 저 혼자 서성인다

순례길에 오른 김간난 할머니, 연신내와 이촌동을

오가는 단골손님 하루 종일 걸어 모은 대가는 육천 원,

한 끼 빵값의 동전은 목숨이 된다

내 유년의 골목에 있던 남자아이들은

동전 짤짤이 게임에 과자 값이 오갔다

먹자골목이 순례길이 된 지금,

길에 떨어진 동전을 줍는 것은 허드레 같은 일이다

방 하나에 쪽문들이 수없이 반짝이는 곳,

두 팔을 벌리면 양쪽 벽이 닿는 동자동 쪽방,

한쪽 어깨가 기울어진 손자와

삶의 바다에 다다르기 위해 돌계단을 오른다

몽돌이 아니라고 금이 갔다고 돌이 아닌가

모난 돌도 담벼락이 된다 나도 담벼락이 되어

쓰나미 같은 내 어둠을 막고 싶다 도시의 어둠까지

 

 

이 시 말고도 다른 시들도 많이 쓰셨는데, 각각 어딘가 눈에 띄는 독특함이 있었다. 가난하고 삶이 어려운 사람들을 깊게 생각하는 모습이 느껴졌다.

 

날개

 

이용희

 

매미 울음 어두운 창을 연다

카운트다운을 세는 날개의 밤은 길다

커튼을 찢는 매미의 첫음절

현의 스타카토는 초마다 끊어진다

 

오늘이라는 하늘을 열기 위해

언제부터 손가락을 펴고 꼽았을까

한 주일을 허락받기 위해

어떤 주검으로 살았을까

 

칠 일이라는 선물을 날개에 이고

초를 마이크로로 쪼갠다

리허설도 없이 펼쳐지는 연극의

구경 온 하루살이 떼는

매미의 턱시도에 넋을 빼앗긴다

 

나는 백 년의 숨을 위하여

어디에서 그물을 벗으려 버둥였을까

덮고 떠날 홑 겹 날개 지으려

밤이면 줄 하나 그으며 하루를 묶고

아침이면 오늘을 되돌이표로 닫는다

 

 

이 말하면 좀 분위기가 깰 것 같지만 매미는 일주일이 아니라 무려 한 달 정도를 산다고 합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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