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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igion&Development

죽음과 죽어감에 답하다

저는 병원 원내 목사이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죽음과 같은 소식을 처음으로 전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어떻게 하면 유족이 고인의 죽음을 수용하도록 가장 잘 도울 수 있을까요?

나쁜 소식을 전하는 순간에는 유족이 죽음을 수용하도록 도울 수가 없습니다. (...) 그리고 신에게 따지고, 만약 필요하다면 신이나 의료진에 대한 분노를 터뜨리게 내버려두십시오. 그들에게 브레이크를 걸지 마십시오. 분노에 찬 표현이나 욕설을 사용하지 못하게 막지도 마십시오.

 

 

우문현답. 지금은 목사 얘기지만 이거 못하는 의사 참 많더라. 심지어 기물파손하면 고소한다는 내용이 쓰여져 있는 종이를 진료실에 붙인 자도 있었음. 그런 글을 본다고 죽음이 선포된 환자가 진정될까 싶더만 역시나 잘 안 되는구만.

 

이 얘기는 처음 해보지만 거기서 일해본 지도 오래되었으니 괜찮겠지? 이 글 보시면 경악스러워 하시겠지만 말하지 않았습니까. 의사들 중 싸이코 많다고.

 

주로 환자에게 병을 가르쳐주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이 배배 꼬인 듯한 질문을 많이 한다. 내 페친을 검진한 의사들도 사실을 알려주지 않으려고 많이 그랬다 한다. 돌려돌려서 말하거나, 치료법이 없고 위험할 수도 있지만 괜찮을 거라거나, 정식 진단명을 알려주지 않거나 하는 식.

페친은 많은 정신과 의사-심지어 퀴어 프렌들리 한 곳의 의사들과도 문제가 있었던 사람이다. 일단 내과나 외과 전문의들은 그의 병은 희귀질환이라 했고 그 중에서도 여러 가지 희귀질환이 겹친 희귀케이스여서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문제는 정신과 의사가 오히려 상황을 부정하고 페친에게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라느니, 검사 결과가 다 괜찮을 거라느니 말했다는 점이다.

페친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고 일어나지 않을 거라 믿고 싶지만 십만명, 백만명에 한 명 꼴의 진단명과 합병증과 부작용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데 그 상황을 부정한다고 뭐가 달라지는지 모르겠다고 나에게 말했다. 적절한 정신과 치료를 위해서라도 과장된 공포와 당면한 실재적인 위협을 구분하게 해주고 현실을 인정하게 도와줘야지 왜 그걸 싹 다 부정적인 사고로 묶어 퉁치려 드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일단 자기계발 책같은 요소가 짙다. 이 책을 봄으로써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죽을지 혹은 자신의 죽음을 어떤 모습으로 받아들일지 생각할 수 있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할 수도 있지만, 특히 시한부 환자나 치매 걸린 어르신들에 대한 사회복지사의 올바른 대처법이 잘 설명되어 있다. 죽음과 죽어감과 함께 적극 추천하는 책이다.

 

현재 저는 시력을 상실하고 있는 한 여성과 함께 일하고 있고 그녀는 부정의 단계에 있습니다. 의사는 아직 그녀에게 사실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사회복지사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일까요?

 

그녀가 그 공포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해주세요. 그런 다음 그녀에게 오디오북, 맹인용 지팡이, 맹인 안내견, 시력을 상실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세요. 하지만 이것이 끔찍한 일이 아니라고 말하는 건 금물입니다.

 

 

이런 인간들 상당히 많다. 자폐걸린 사람 혹은 그 사람의 가족에게 '자폐는 옛날엔 아무것도 아니었어' 같은 말을 한다거나. 그 옛날 바보 형은 그럼 어떤 일을 당해왔었단 말인가. 앞으로의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식의 위로는 아무 도움도 안 되는데, 의외로 아직 흔하게 그런 말들이 나돌고 있더라.

 

환자들은 다양한 언어들을 이용하여 우리에게 자신의 욕구들을 전달할 수 있다. 매우 어린 환자들은 가령 그림이나 놀이 같은 '상징적 비음성 언어'를 이용하여 우리에게 '말을 한다'. 만약 어린 환자(이식용 신장을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는 어린 환자)가 상상의 권총으로 몸이 많이 아픈 룸메이트를 쏜다면, 이 환자는 룸메이트가 빨리 죽어서 자신이 그의 신장 중 하나를 받으면 좋겠다는 다급한 욕구를 표현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책을 부모님께 추천해드렸는데, 읽기가 너무 힘들다 하시더라. 자신도 저렇게 죽게 될 것이라 생각하니 슬프다 하시면서. 그러나 난 그것은 감정이입에 불과하다 생각한다. 이 책에선 불치병에 걸린 어린아이도 많이 등장한다.

 

말하지 않는 환자들도 있습니까? 이들은 우리 사회의 희생자들입니까?

 

예를 들어 어떤 여성은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몇 주 동안 병실에 혼자 누워 있었습니다. (...) 하지만 우리 병원의 음악치료사 중 한 명이 단순히 그녀의 병실에 들어가서 노래를 부르고 기타를 연주하자, 그녀가 갑자기 두 눈을 번쩍 뜬 후 노래를 부르기 시작해서 모두들 깜짝 놀랐습니다. 노래를 다 부르고 나서 그녀는 눈물을 흘리면서 물었습니다. "도대체 이 노래가 제가 제일 좋아하는 찬송가라는 걸 어떻게 알았나요?"

 

 

최근 의사가 적다고 하는데, 난 그렇다기보단 이런 분들이 국내에 심각하게 적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여성분 눈을 뜨셔서 정말 다행이다 ㅠ

 

환자가 혼수상태일 때 환자의 가족에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당신은 가족이 계속 일상생활을 영위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젊은이들은 데이트를 하고, 영화를 보러 가고, 보통 때 하던 일들을 해야 합니다.

 

 

나도 찬성하는데 나는 쓸데없는 도움을 주기보단 괴로움에 빠진 사람들에게 할 일에 대해 일러주는 게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건 화가 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평상시 하는 일을 완전히 망치면 더욱 분노가 마음을 잠식하게 된다. 집중이 안 되더라도 조금씩 할 일을 찾다보면 금방 마음이 가라앉게 된다.

 

자신의 감정을 지속적으로 들여다보면 자기 자신의 죽음과 대면할 수 있을까요? (...)

 

우리가 자기 자신의 죽음과 대면할 수 있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 우리는 문학 작품이나 시를 읽을 수 있습니다. 또는 음악, 드라마, 미술 등 다양한 형식 안에서 우리에게 제시되는 '죽음'이라는 주제를 숙고해볼 수 있습니다. (...) 그리고 편안한 친구들이나 지인들과 함께 모임을 만들어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자신만의 관점을 형성할 수도 있습니다. 종교는 훨씬 더 넓은 의미에서 죽음에 대해 숙고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심이 깊은 사람은 삶의 의미, 그리고 당연히 죽음의 의미에 대해 숙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질문과 대답으로만 이루어져 있기에 이 책에는 기존의 죽음과 죽어감에는 없던 단점과 장점이 동시에 존재한다. 단점은 일단 위에서 말했듯이 쓸모없어 보이고 어떨 때 저자에 대한 인신공격이라고 할 수도 있는 질문이 많다는 것이다. 다행히 저자는 이런 질문들에 침착하고 세세하게 답한다. 장점은 돌발적인 질문으로 인해 기존 책엔 없던 의사로서의 철학이 저자의 입에서 직접 나온다는 점이다. 죽음과 죽어감을 더욱 깊게 파고들 수 있는 책이다.

 

우리 사회의 양로원은 우리가 노인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슬플 만큼 여지없이 보여주는 공간이다. 우리는 노인들에게 주거지와 숙식을 제공하고 때때로 텔레비전과 수영장, 골프장, 댄스 시설까지 제공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에게서 다른 사람을 돕고, 베풀고, 자신만의 고유한 서비스(즉, 그들이 수십 년동안 축적한 지혜와 경험들)를 제공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

 

 

이건 지금도 다르지 않은 듯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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