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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er

샴토마토

블루 넌 중에서

 

달빛이 부비는 거리엔

꼬리 잘린 고양이들이 미유미유 울어 대고

내 피의 방향은 예의 없이 너를 향하지

 

도처마다 고독사한 인간들

죽은피를 마시는 거미들

하늘타리가 흐드러진 이 시간,

나는 흰 베일에 푸른 수녀복을 입어

촛농으로 네 이름을 쓰고

우울한 이 시대를 비웃어 주며

널 초대해

 

내 혀를 거부하지 마, 짐작한 것이 있다면 몰라줬으면 해

나는 내 세계를 완성하기 위해 네가 아닌 나를 할퀴어 왔어

그런 내가 달콤하지 않니 성모의 젖처럼,

(...)

그러니까 어서 와,

내 수녀복을 재빠르게 벗겨 줘

너의 유륜을 정성껏 그루밍해 줄게

야한 말로만 끝말잇기를 하자

근데 넌 어디서 왔니?

똥구멍까지 예쁜 남자는 처음이거든

 

 

블루 넌 광고에 좋은 시려나 하고 생각없이 읽다가 충격에 빠져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보통 시를 길게 적어 인용하지 않는 게 내 철칙이었는데 이번은 예외인 걸로 하겠다. 어음 여러분 블루 넌 와인인데,, 맛있어요,,, 크르노 크루세이드도 평범하게 재밌어요(응?)

 

설마 블로그에 이 시 올린다고 선정성있다며 차단하진 않겠지?? 이 시집 19금도 아닌데???(근데 도리어 왜 19금이 아닌지 의문이다.) 무튼 사이비 종교를 사이비라고 욕한 글에다 주인장이 직격으로 비판을 날리며 사과하라 요구했던 그 리뷰 카페에는 올리지 말자..

 

자궁폭력

 

혈관 밑 지하방의 불청객을 발견했나요? 아그배나무 밑동 독버섯처럼 이마를 치켜들고, 맹수 이빨에 착지한 순록의 살점처럼 숨어 있어요. 편의상 어른 1, 어른 2, 3, 4......라고 부릅니다. 양손엔 가지샐러드랑 지렁이샌드위치뿐, 요리도 레몬에이드도 없습니다. 낯이 익어, 깐 마늘처럼 반질한 그들은 어디서 왔을까요? 이틀 전, 은하철도 999의 삼등칸에서 봤을까요? 아저씨, 발가벗겨진 메텔에게도 안부 꼭 전해 줘요.

 

햇살은 폭력적으로, 바람은 나쁜 의도로 붑니다. 내 몸을 까부수고 어른 대역을 맡은 엑스트라들은 들어오고 곧 죽어 가요. 초대장이 없는 불한당들입니다. 작별할 때는 꽃을 든 손수건, 꽃물 든 손톱 끝으로 흔들어 줍니다. 미성숙한 문이 베푸는 최소한의 배려입니다. 아저씨들, 클레멘타인을 불러 드릴까요? 넓고 넓은 도시 곳곳, 지붕 없는 지하방들. 11살의 눈물과 생후 20분 된 기린의 허벅지로 흐릅니다. 아빠, 당신은 도무지, 비밀이에요.

 

 

바로 생각나는 게 사치코더라. 얘만 검색하면 자꾸 배빵 관련 그림들이 나와서 검색하기도 민망해 죽겠고 팬도 아닌데 괜히 미안하다. 어른인데도 자꾸 철 없는 척하는 개저씨들을 은하철도 999 주인공에 비유한 건 매우 탁월했다고 본다.

 

이 시집은 계속 아파보이고(...) 하드코어해 보이는 시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한다. 왜 이렇게 시를 썼을까 생각해봤다. 처음 이 시집을 접할 때 프랑스어를 집어넣고 SM 분위기와 19금 수위를 고수해가는 걸 보면 정신이 아연해진다. 그러나 두 번째로 읽어보니 조금 다르게 보였다. 겉으로 훑어볼 때 게이라거나 게이샤가 등장하는 걸 보면, 이 시집은 전반적으로 소외된 성적 욕망들을 아름답게 표현하려고 노력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일부 드러난 '소녀'의 고통이 뼈아프다. 그녀들은 사랑을 이야기하면서도, 사랑이 성적 욕망에 의해 발동된 것에 지나지 않다는 듯 섹스와 폭력에 집착한다. 그 폭력은 물론 자신이 가하는 게 아니라 '아저씨' 같은 사람이 가하는 것이다. 간혹 도S 수녀도 등장하긴 하지만, 그 시 또한 종교라는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 중 일부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이 시에 나오는 여성들은 대부분 남성들에 의해 노예가 되어간다. 그리고 '한쪽 눈을 잃은 고양이' 꼴이 되어서야 이들은 그 사실을 깨닫거나, 혹은 그때까지도 인지하지 못한다.

 

샴토마토 중에서

 

토마토 껍질 안에서

쌍태아였던 애인이 생겼지

덤으로 흐르는 피처럼

위악의 조각으로 찢겨 나간 어느 한 피부

콧잔등의 부스럼,

귓불을 타고 흐르는 화상 자국,

감정이 자라는 속도 같은 것들

값싸고 독한 맥주를 마시는 연인이면 어때,

서로의 창자를 꺼내 하나로 꿰매는 거야

새터의 자장가가 난간 위에서 흔들릴 때까지

후프 안에서는 부러진 뒤꿈치를 들고

꿈에서 해본 것처럼 엉덩이를 씰쭉거려

(...)

각질까지 새빨개지는 사람들 속에서

한쪽만 칠한 마스카라를 한

너에게, 피투성이 탐폰을 던져 줄 거야

(...) 너는 수련된 악마주의로 카혼을 두들겨

(...) 크래커 봉봉을 잡아당기면

생피를 뿜는 썩은 고환이 튀어나올까

 

 

 

대체 무슨 약을 먹으면 토마토에서 탐폰을 떠올리는 발상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무튼 생리에 관한 구절이 자주 나오며 음악도 꽤 등장한다. 카혼은 타악기 이름이라는 듯하다. 교본도 있더라.

 

레몬증후군 중에서

 

세면기에 오줌을 누다가 거울 속 피에타를 봤니

지퍼를 잠그는 법을 잊어버린 소년이거나

팬티 속에 날달걀을 넣고 다니던 게이거나

둔탁한 상자를 열기 전 초조한 프시케 볼에 오른 홍등을 알아

17번째의 담배를 지져 끄고 창문 난간에 선 남자였을까

장래 희망이 오후 4시의 햇빛이라고 말하던 여자의 외계인 병이었을까

하루에 한 알씩 레몬을 수면제처럼 먹던 그들, 혹은 우리

(...)

귀밑의 둥근 멍울에 대해서 말해 줄까

여자는 레몬이었어

(...)

찬란한 노랑, 단단한 껍질을 무기처럼 빼앗긴 생을 질투해, 망자의 혀는 도망치는 생명력을 시기해, 낙태를 하고 뻔뻔하게 마취약에서 깨어나는 증후군처럼, 굿바이 겨울, 예정된 이별은 익히기 쉬운 습관, 힘을 잃은 계절에 여름의 옷차림을 하고 떠난 레몬에겐 할당된 내일이 없어

 

 

시집에서는 몇몇 구절에 굵은 문체로 표시되었는데 자동적으로 그 구절들 중에서만 인상적인 것들을 꼽아서 인용하게 되더라. 이것이 한국 공부의 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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