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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er

언젠가 너에게 듣고 싶은 말

나는 오쇼 라즈니쉬의 섹스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산 적이 있다. 흰 바탕에 짙은 회색 글씨로 책등에 세액스으라고 커다랗게 적힌 책이다. (...) 저자는 힌두교 쪽의 영적 스승으로 일컬어지는 사람으로 특히 섹스 자유주의자로 이름나 있다. (...) 그의 주된 주장은 인간은 섹스를 너무나도 억압하며, 일단 섹스를 풀어놓는다면 그 풀림으로 행복의 궁극적인 통로인 명상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명상은 쏙 빼버리고 섹스에만 관심을 둔다며 그는 툴툴거린다. (...) 인간은 섹스를 너무나 억압하고 있기 때문에 그 반대급부로 언제나 섹스에 골몰한 나머지 성별부터 인식한다는 것이다.

 

 

이거 굉장히 공감가는데, 평소 굉장히 섹스할 여자 만나는 데 골몰하는 남자가 한남인 경우가 많다(의외로 남자에게 관심없는 듯이 행동하면서 섹드립 많이 하는 렏펨도 보다보면 점점 이쪽으로 가는 거 같음.). 반면 난 첫사랑 만나고 쭉 섹스걱정(?!) 없어진 이후로 퀴어에 상당히 관용적으로 됨.

의외로 섹스와 관련된 글들이 많으며(...) 음악에 관한 글이 가장 많다. 이 책을 사는 독자들이라면 뭐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일 확률이 높지만, 어쨌던 팝송으로 애플이나 미카 앨범 정도는 들어봐야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듣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그러나 이 사람의 사랑 철학에는 반감이 든다. 예를 들면 전화를 기다리는 것만큼 상대방을 숨막히게 하는 게 없다느니 하는 것. 근데 문자나 전화를 기다리는 건 다 이유가 있지 ㅋ 그만큼 상대방이 신뢰가 안 가는 말을 했다거나. 그리고 문자나 전화가 안 오면 화내고. 그러면서 점점 헤어지는 거다.

 

가장 인상적인 구절은 어머니에게 생일노래를 불러준 일에 대한 글이었다. 엄마가 사람이라는 걸 느껴보고 싶다면 엄마와 관련된 여러 사람들을 모아놓고 생일 노래를 불러보면 된다. 확실히 엄마 친구들까지 모시면 '엄마'라는 칭호로 통일되긴 힘들지 않을까. 마지못해서라도 이름을 부르지 않을까.

그나저나 글쓴이 나이도 지긋하실텐데 어머니가 대학을 가려 했다니 집안이 어지간히 잘 사는 듯하다. 공무원 시험 들어가신 것도 그렇고. 고등학교 졸업하시자마자 삼성에서 근무하셨다는 어머니 보면 짠한데. 그 당시 고졸에게 회사 근무는 정말 가혹한 것이었다고 한다. 특히 유부남들이 그렇게 어머니와 직장 동료들에게 찝적거렸다고ㅡㅡ 공부가 쉬운 건 아니지만 비교적 덜 고생하는 건 맞지 않을까.

 

중간중간 고양이 이야기가 시리즈처럼 이어지기 때문에 만일 중간 정도 책을 보다 덮고 오래 방치하다 다시 중단했던 부분부터 보면, 나중에 중단되었던 고양이 이야기가 뜬금없이 튀어나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될 것이다. 두세 번 반복해서 읽지 않으려면 한 번에 쭉 읽는 게 가장 좋다.

그나저나 임신했던 고양이는 보냈구나 ㅠ 잘 모르겠지만 임보를 맡아주시는 모양인데 나는 임보했다간 내가 품다가 떠나게 된 고양이가 자꾸 생각나 한밤중에도 벌떡벌떡 일어나게 될 것 같다. 역시 난 댕댕이가 좋다()

 

늘 그랬듯이 너는 누워서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궁금해서 슬쩍 머리를 가까이해보면 네 액정에 보이는 건 늘 같은 무슨무슨 게시판이다. 내 기준으로는 봐도 상관없고 안 봐도 별 상관없는 내용들이다. 아니면 오밀조밀한 그림들로 가득찬 게임. 남자들은 늘 일정량 이상의 잡동사니를 머리에 넣지 않으면 좀 허전한가보다 하고 새삼스레 나는 수긍한다.

 

 

저것도 사랑하고 싶거나 사랑받고 싶은 사람만 그렇게 생각하지;; 게임 좋아하는 전남친에게 크게 데인 적 있는 나로서는 저 글만 봐도 짜증난다. 바로 뺏어 집어던지고 싶은 걸 보니 난 이제 한남과의 연애는 불가능한 듯. 취침할 때 불빛 비치는 거 넘나 싫던데 ㅠ

 

"네가 모르나본데, 남자들은 남자를 지이이이인짜 싫어하거든. (...) 전에 어떤 놈이랑 둘이서 술을 마시다가, 첨엔 서먹서먹했는데 나중엔 완전 친해졌거든. 둘이 거나하게 취해서 담엔 우리 집에 가서 또 신나게 퍼마셨어. 그러다 그 친구가 나한테 자고 가도 되냐고 그러는 거야."

"게이 아니죠?"

"아녀. (...) 아 내가 이 얘기까진 안 하려고 그랬는데, 얘기해줄게. 근데 이런 얘기까지 너한테 해도 되는지 모르겠네."

"이제 와서 우리 사이에, 오빠."

"내가 있잖아, 야동 볼 때 모자이크 없는 건 안 보거든. 왠 줄 아냐?"

"왜요?"

"남자 거 보기가 싫어서."

"하하하하 오케이, 인정."

"이게 바로 전문용어로 ㄱㅊ포비아라고."

 

 

퀴어혐오를 그냥 보기 좋은 말로 덮었을 뿐이구만 뭐. 책에서 이전에도 남성성이라던가 여성성 같은 단어가 나와서 불편했는데 이건 불쾌함까지 느껴진다. 남자들이 남자를 싫어한다니, 일반화도 이런 일반화가 있을 수가 있단 말인가. 그리고 친구끼리 자는 게 게이라니, 그럼 세상에서 동성친구랑 같이 자는 사람들은 모두 동성애자인가? 그런 의문이 남는다. 마지막으로 야동 보는 게 자랑인가.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음 아예 입이라도 닫고 있지 ㅉㅉ

 

교훈 마니아로서 교훈의 즐거움에 대해 말하자면, 나의 경우 교훈이 없다면 영화나 드라마, 소설처럼 이야기가 있는 장르에서 재미를 훅 잃어버린다. 이야기의 스피드나 주인공에 대한 감정이입만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는 있다. 그렇지만 감정이입을 한 인물이 의외의 행동을 하면서 새로운 인식을 나에게 던져줄 때는 가슴이 꾹 하고 눌리면서 뭔가가 물씬 퍼져나간다. 그게 감동이라는 거겠지. 빨간색으로 밑줄을 긋듯 그게 교훈이라는 식으로 티를 내면 당연히 곤란하다. 수가 눈에 빤히 보이는 탁구를 치는데 칠 맛이 나겠는가. 휙 하고 날아온 공을 아슬아슬하게 받아냈을 때의 쾌감.

 

 

사실 이게 일본 드라마나 애니메이션이 가끔 무지 재미없는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요새 우리나라가 점점 일본 문화 코드에 물든 것 같기도 하다. 반일 감정은 그렇게 강한데, 간혹 있을 수 없는(?) 불행이나 반전이 나오면 스토리가 망가졌다고 난리를 친다. 정말 스토리를 중시하는 건지도 의문.

 

그는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만들고 있고 나는 옆에 늘펀하게 누워서 만화를 본다. 현실의 여자에는 모두 좌절만 하다가 결국 가상현실 속 미소녀와의 사랑을 이루려고 분투하는 아저씨가 만화의 주인공이다. '대머리에, 뚱보에, 안경잡이에, 이런 내가'라고 주인공이 말한다.

 

 

90년대 만화가 흔히 그렇지만 제목을 생략하니 호기심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는 듯하다. 그나저나 저런 내용이 팔리긴 팔리네; 난 만화 볼 때 어느 정도 비주얼은 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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