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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Essay

보이스

내가 음악을 위해 안정적인 미래를 포기해야만 했듯이 누군가는 안정적인 미래를 위해 음악을 포기했을 뿐이었다. (...) 누군가는 가족을 위해 사랑을 포기하고, 로미오와 줄리엣은 사랑을 위해 가문을 포기했다.

 

 

꿈을 꾸지 않거나, 혹은 직업을 구하는 것 밖에 꿈이 없는 사람들이 흔히 현실이라느니 통계라느니 운운하며 꿈을 꾸는 사람들을 대놓고 질투하며 압박한다. 모든 것을 내 사회 생활 능력 부족이라 생각하며 그들의 말을 받아들이려 했던 나는,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이었는지 이제 와서 깨달았다. 이들을 내가 최근 멀리하는 이유는 그들의 쓸데없는 가르침에 물려서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그들처럼 시체가 되어 살아가기 싫어서다. 나는 내 꿈을 존중해주고 또 다른 꿈을 꾸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며 에너지를 불어넣어주고 싶다.

 

사이트: https://www.youtube.com/watch?v=FOLO2T0r8oc&feature=emb_logo

 

넘버 2를 강조하는 자기소개에 의해 평범한 것 같이 보이면서도 일면 또 평범하지 않아보이는 저자는(톰 요크의 Creep에서 전자기타 소리를 매트리스 침대가 지르는 비명으로 해석하다니 넘무 신박했다.) 꾸준히 달성하고 싶은 게 있어서 글을 쓰고 있다고 했다. 지금 그는 다른 에그들과 함께 유튜브를 찍고 있기도 하다. 책을 보고 나서 유튜브로도 그들의 소박하고 행복한 일상을 마주해보자. 스탠딩 에그가 아닌 에그의 취향을 검색해보면 에그 2호를 실물로 만나볼 수 있다. 아, 스탠딩 에그를 검색해보면 스탠딩 에그가 여태 부른 노래들의 거의 전곡이 앨범별로 정리되어 올려져 있다. 봄에 듣기 딱 좋은 청량한 음이다. 벚꽃 보겠다고 밖에 나갔다 코로나 걸려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 끼치지 말고 음악을 들으며 베란다 사이로 봄꽃들을 즐기는 데서 만족을 느껴보자.

 

수천 명의 사람들이 서로 나누는 이야기들ㅡ각자의 연애담, 지난밤의 드라마 이야기, 웃음이 섞인 상스런 욕지거리들ㅡ은 하나의 거대한 소음이 되어 묵묵히 혼자 걷는 나를 사방에서 조여왔다. 말소리야말로 다른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가장 명백한 증거라는 생각에, 아무런 소리를 내지 못하고 혼자 걷는 나는 춥고, 배고파졌다. 외로워진 것이었다.

그때 마침 인파의 강 너머에서 엉성하게 쓰인 '호떡'이라는 빨간 글씨를 발견했다.

 

 

그래서 자취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내가 그렇게 호떡이나 붕어빵을 자주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중국의 바삭바삭한 공갈빵 같은 호떡이 아닌, 쫄깃쫄깃 속이 꽉 차있는 우리나라 전통(?) 호떡이 좋아 일부러 찾아서 먹기도 했다. 그렇다고 씨앗 호떡같은 건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 청년은 양쪽 눈의 색이 달랐다. 왼쪽 눈은 짙은 갈색이었고 오른쪽 눈은 투명한 하늘색이었다. 영락없는 아콰마린 빛깔이었다. 청년은 자신의 눈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나에게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건넸다.

"수영이...... 처음인데...... 마음 같지가...... 않네요......"

나는 그의 큰 목소리와 어눌한 말투에 깜짝 놀랐다. 내 표정을 읽은 그가 곧바로 말을 이었다.

"저는...... 야구 선수예요...... 고양 원더스 소속인데...... 청각장애가 있어요......"

그를 빤히 본 내 시선에 죄책감이 들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확실히 장애인들은 빤히 보는 시선을 폭력적으로 느낀다는 글도 있었다. 아무튼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에피소드 중 가장 인상적인 글이었다. 말 그대로 자신의 꿈을 세상에 밀어붙이는 사람 중 표본이 아니었을까 싶을만큼 강렬했던지라.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메릴 스트립이 비가 쏟아지는 교차로에 멈춘 차 안에서 끝없이 솟아나는 눈물을 참으며 차 문을 열까 말까 망설이는 손동작을 연기했을 때, 나는 그녀의 손을 보며 소리 내서 "아"하고 안타까움의 탄성을 질렀다. 그녀는 대사 한마디 없이 손가락의 떨림만으로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했다.

 

 

아니 물론 막장 드라마 보면 화가 치솟을 때는 있지만 한낱 드라마에 등장하는 배우들과 세계적 영화배우 메릴 스트립은 하늘과 땅 차이인데 그걸 비교하시면;; 그런데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책으로만 봤는데 영화로도 괜찮나요. 기회나면 한 번 볼까.

 

다행히 일찍 문을 연 카페를 한 군데 찾았다. 살짝 열어놓은 문으로 엘라 피츠제럴드의 노래와 크루아상을 굽는 냄새가 동시에 흘러 나왔다. 새어 나오는 노래 소리와 고소한 빵 냄새의 밸런스가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마치 카페 안에서 진짜 엘라 피츠제럴드가 빵을 구우며 노래를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가 아몬드 크루아상과 아이스 라테를 주문하고 창가 쪽 구석에 앉았다.

 

 

워낙 글쓴이가 올바른 사람이라 자기계발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이 책은 군데군데 나오는 밝은 파스텔풍의 사진과 저자의 풍부한 표현력이 잘 어우러지기 때문에 더 놀랍다. 그나저나 어머니가 크루아상 정말 좋아하시는데, 가게가 어딘지 알아내서 코로나 사태가 끝나면 한 번쯤 가보고 싶다.

 

매년 밸런타인데이나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인터넷 신문이나 코스모폴리탄 같은 잡지에서 '받고 싶은 선물'에 대한 선물조사를 하고 그 결과를 싣는다. 그 기사에 따르면 수많은 사람들이 꽃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더 받고 싶어한다. 그리고 나는 도무지 그런 사람들을 좋아할 수가 없는데, 꽃의 아름다움에 감동하지 못하는 사람이 이 세상 어디에서 감동을 느낄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결국 실용적인 물건의 끝판은 돈인데, 사람들 대다수는 가진 돈이 별로 없다. 그럴땐 차라리 아무 꽃가게나 들어가서 꽃 한 송이나 사가지고 나오는 게 훨씬 무난하다. 꼭 가진 건 없는데 실용적인 선물을 사고 싶은 사람들이 다이소 가서 싸구려 물건을 사오다 구박을 받는 것이다.

 

강두는 운동으로 다져진 건장하고 단단한 신체를 가졌지만 마초와는 거리가 멀고, 말수는 적지만 웃음은 많은, 내 기준에서는 '진정한 남자'에 속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이다. 자기 고집은 있지만 자상하고, 누구에게나 매너로서가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는 배려를 하는 사람이랄까.

그런 강두에게도 의외로 귀여운 구석이 있는데, 하나는 '피카추'와 원피스에 나오는 '초파'를 무진장 좋아한다는 점이다.

 

 

'아니 이건 내 취향 갭모에 아닌가!

적당한 오타쿠라는 점도 딱 좋아!

그러나 이런 남잔 벌써 누가 채갔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저자 동생이자 소꿉친구인 분과 벌써 결혼하셨군요 헝헝 ㅠㅠ

 

히스테릭한 엇박으로 '끼긱, 끼긱'하는 전자기타의 굉음에 맞춰 "나는 비호감이야"이라고 창백하게 읊조리는 톰 요크의 노래는 라디오 전파를 타고 이 세상 구석구석 궁상맞고 사내 냄새 나는 작은 방, 눅눅한 침대에까지 흘러 들어갔다. 이 노래는 돌아누울 때마다 '끼긱, 끼긱' 소리를 내는 싸구려 매트리스 위에서 오후 내내 멍하니 누워 라디오를 듣고 있던 세계의 모든 '찌질이'를 비롯해, 도무지 여자들에게 인기라곤 없는 자신의 상태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모르던 수많은 소년들ㅡ다시 말해서 나를 포함한 거의 모든 소년들ㅡ의 심장에 불을 놓았다.

 

 

사실 이 구절을 베스트로 꼽고 싶었지만, 문제의 베스트 구절이 상당히 공감가기도 해서 그냥 이 구절은 마지막으로 장식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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