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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ce&Math

면역에 관하여

저널리스트 제니퍼 마굴리스는 잡지 마더링에 쓴 기사에서 신생아에게 B형 간염 백신을 맞히는 관행에 분개하면서, 왜 자신이 자기 딸이 '걸릴 가능성이 없는 성 매개 감염병에 대한' 백신을 딸에게 맞히도록 권유받아야 하느냐고 물었다. B형 간염은 섹스뿐 아니라 체액을 통해서도 전달되므로, 신생아가 B형 간염에 걸리는 제일 흔한 경로는 산모를 통해서다.

 

 

 

 

 자연주의 출산으로서 아주 중요하고 애를 살리느냐 죽이느냐의 기로에 서 있는 게 병원이다.

 

 옛날에 (육아의 여왕 저자 부모님처럼) 백병원같은 큰 곳에서 아이를 낳았고 그걸 자랑으로 여겼다면, 지금은 좀 더 세분화되었고 좀 더 자본화되었다. 결국 남들이 다 하는 출산이나 백신을 거부하는 행위들도 자본의 여유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판가름이 난다. 마치 마트에서 파는 채소를 먹느냐 유기농 채소를 먹느냐 고민하는 것처럼. 물론 돈과 시간이 없어서 이 모두를 자신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는 '자연요법'도 있을 것이다. 근데 난 2박3일 동안의 진통 끝에 나왔다는데 대체 그 시간동안 애가 나오길 진득이 기다릴 수 있는 산부인과가 어딘지 물어보고 싶다. 서울 외곽인거 같던데.

 내가 상당히 면역이 약해서 뭘 했냐면
 1. 가루영양제
 2. 요구르트
 3. 죽
 4. 한약
 5. 호두, 잣, 밤 등.
 한약은 특히 한 번 먹는데 당시 4~50만원이었다. 지금 가격으로는 150 정도...? 잘못 먹으면 죽는다고 할아버지 한의사가 경고했던 걸로 기억함.

 여기다 살짝 면역에 대한 내 의견을 말하자면, 백신을 거부하는 건 아나키즘과 비슷하다 본다.
 나는 또한 그 둘이 어리석다고 보는데, 우리의 몸은 우리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 보기 때문이다. 죽음을 극도로 무서워하고 죽으면 내가 세상에서 살았다는 표식이 사라질까봐 두려워하는 인간들이 있다. 나는 그들에게 그렇게 불안하면 헌혈을 하고 장기기증에 서명하라 권유하고 싶다. 일단 신기하게 마음은 편해진다. 사실 그것도 어리석은 짓이지만. 애초에 '내'가 아닌 것들로 이루어진 몸뚱이를 내 소유라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최근에 난 내 정신도 온전히 내 것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뭐 어쨌든,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자.

 이 세상에서 중도인 척하는 사람이 제일 위험하다. 작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독자들에게, 아니 그녀를 대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그녀는 말 잘하는 저널리스트이며(왜 이들은 자꾸 시인이란 타이틀을 달고 싶어할까? 신춘문예는 합격했나?) 면역학자의 편을 들며 카슨을 신랄하게 공격하는 책을 썼다. 이원론 어쩌고 해봤자 소용없다. 이 책을 출간한 이후부터 당신은 이미 저쪽의 사람이니까. 이 책을 마크 주커버그와 빌 게이츠 같은 기업인이 추천했다는 데 주목하자. 그리고 세상에, 이 책이 빌 게이츠의 여름휴가 추천도서라고? 이걸 읽으면서 그는 얼마나 이 시대 엄마들을 놀림거리 삼으며 낄낄거리고 있을까?

 비합리적 합리주의자라는 괴랄한 단어를 쓰며 미쳐 날뛰는 시인들의 단점이 뭐냐면, 인구 통계가 집계되면 그 속에 숨어 있는 함정은 검토해볼 생각도 안 하고 그걸 십계명처럼 믿으며 마치 자기네들이 신인 것처럼 IF로 남을 죽이고 살린다는 것이다. 백인들이 흔히 하는 븅신탈춤이다.

 솔직히 DDT 이야기 나올 때 책을 집어던지고 싶었다. 그렇게 DDT가 좋으면 당신 아이 입에나 집어넣던가. 지금은 21세기다. 어디서 '나 어릴 시절엔 DDT 다 먹고 살았어~.' 같은 고전적인 개수작을 부려? 그러나 그 이야기 빼고는 제법 괜찮았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읽지 않으면 왜곡될 수 있는 민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계속 연달아 나오는지라 도저히 긴장을 늦출 수 없다. 그러고보면 아이의 건강에 신경이 날카로운 이 어머니의 감정에 내가 이입된 건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침묵의 봄은 읽지도 않았지만, 그 책에 무슨 원한이라도 있는 듯이 공격하는 말투가 나는 심하게 거슬렸는지도 모르겠다. 면역에 관한 책을 이것말고도 더 읽고 싶다면 이 저자의 의견과 정확히 반대되는 지점에 있는 후나세 슌스케의 백신의 덫을 추천한다. 원래 논쟁은 극단과 극단의 지점에 있는 책 두 권을 다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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