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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er

레퀴엠

비애! 비애! 당신의 입술에
영원히 감도는 여운, 아, 정열!
비애! 비애! 영원한 시험,
보다 확실한 올가미.

나는 비애에 젖어
멋쟁이 청년들과 입 맞추고
너는 비애에 젖어
밤이면 다른 여자의 손을 잡는다.

비애-슬픔, 비애-슬픔,
빵과 함께 먹고 물과 함께 마신다.
너의 초원에는 한줄기 슬픈 풀잎이 있다
러시아여.

 

 

 

 

 

작별, 이별에 대한 시가 굉장히 많아서 인상적이었다. 아무리 시가 일기와 별로 다를 바가 없다고는 해도 혁명가로 살아간 그녀들의 사랑과 헤어짐에 대한 이야기가 이렇게 적나라하게 문학에 드러날 줄은 몰랐다. 어느 영미시보다도 훨씬 감동적이었고 읽은 후에도 오랫동안 여운을 자아냈다.

 

 좌파들이 잘 모르는데 스탈린은 사람을 대거 감옥에 가두거나 총살한 것도 모잘라 문화를 말살하는 깡패로 사실상 유명했다. 이 시집에서 보다시피 수많은 여성시인들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음을 고발하고 있는데, 높으신 분들은 그녀들이 마녀라느니 반은 창녀고 반은 수녀라느니하는 식으로 조롱한다. 특히 내가 분개한 건 마리나 쯔베따예바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이다. 위의 비애!라는 시를 쓴 시인이다.

 

특히 빠스쩨르나끄는 모든 러시아 시인 중에서 그녀를 가장 높이 평가하여, 비록 그녀가 "온갖 종류의 히스테리를 압축된 형태로 구비하고 있고" 따라서 "그런 여자와 결혼할 것은 꿈도 꿀 수 없지만" 재능의 측면에서는 "보통 남자가 그녀의 천재성을 십분의 일만 가져도 시인으로서 성공할 수 있다" 라고 썼다.- <레퀴엠> p. 142

 

 충격적인 건 저 평을 쓴 인간이 10년 이상 그녀와 서신왕래를 한 친구며, 마리나는 이미 유부녀라는 사실이다. '친구'에 대해 저딴 식으로 추근거리면서 모욕을 주니 마리나가 이름을 남겼을 때 넌 듣보잡이 된거다 멍청아.

 

 

 

최근 프로듀스 101이 한창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아프리카던 팟캐스트던 개인 방송이던 무엇이던 간에 돈 벌려 너무 의식하지 않는 게 좋은 거 같다. 이전에 어느 팟캐스트 방송에선 돈 벌겠다고 인디밴드 홍보하다가 보컬을 게스트로 초대했는데 진행자 세명 다 음악에 대해 완전 무지한 거 다 들통난 적이 있다. 한 명은 게다가 힙합 욕했다가 완전 처발려서 고성내면서 씩씩대고. 실은 그 방송 듣고 그 프로그램에 더 이상 나가는 게 쪽팔려서 게스트 역할 때려쳤는데 그 분은 아직도 그 방송 계속 하고 있나 모르겠음. 아프리카에선 아이돌이 방송하면서 책 홍보를 했던 적이 있었다. 근데 워낙 잔지식이 없어서 스토리만 적어온 듯하고 사람들의 반응이 저조하니 겁을 먹은 듯 계속 책 홍보를 진행하지 못했다. 결국 자신의 방송 주제에 대한 사랑과 철저한 준비가 기반으로 깔려 있어야 뭘 할 수가 있다. 후자 이야기 말인데, 저 방송은 어떤 남자애가 추천했었다. 굉장히 자기 중심적인데다 마초이고 자신과 의견이 다른 인간의 말은 하나도 안 듣는데 지지리 돈 관리도 못하는 인간이었음. 나중에 손엔 금빛가루같은 거 묻히고 삐끼같은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는 거 아닐까 두렵다. 음... 그냥 갑자기 생각이 났네.

 아무튼 유명세를 단호하게 거부하고 자신들의 시를 '성숙한 포도주'라고 비유하며 꿋꿋이 책상에 앉아 펜을 든 이 당돌한 여성들의 시는 고금에 널리 읽히는 고전시가 됨으로서 세상 사람들의 귀감이 되었다. 그러나 이 시집에 나온 네 명 중 셋은 불행한 삶을 살았다. 물론 모스끄바의 콘서트홀에 검은 슬랙스에 하이힐을 신고 등장하여 자작시를 낭송한 벨라 아흐마둘리나는 정말 대단한 여자다. 그러나 씁쓸한 게 이 여자는 정치와 관련된 글은 하나도 안 쓰고 자연, 사랑, 이별을 표명했다는데... 예술관에 대해 뭐라고 하고 싶진 않지만 뭐랄까 '천상여자'답네. 그래서 골치아픈 생각하기 싫어하는 청중에게 환호받은 거 아닐까? 그러다 결국 얼굴에 주름이 생겼단 이유로 인기도가 점점 하락하게 되다니, 이런 비참한 삶들이 또 어디있단 말인가. 아무리 마음이 '사랑했던 사람들의 무덤'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그 무덤을 너무 크게 만들고 있는 거 아닌가 싶다. 미모뿐만 아니라 예술에서 천재로 선택받기를 원했지만 단 한번도 후자로 사회에서 선택받은 적 없는 여성들. 골방에 갖힌 미친 여자들. 그들의 절규가 과연 언제까지 히스테리로 치부될 수 있을까?

 

 

 

* 어떤 레즈비언 분이 퀴어문학같다고 의견을 제시하여 이 시가 담긴 레퀴엠 시집을 퀴어 목록에 넣는다. 예전에도 올린 시지만 다시 한번 올려본다. 잘 읽어보시길.

 

우리는 헤어지는 법을...

안나 아흐마또바

우리는 헤어지는 법을 모릅니다
어깨를 나란히 정처 없이 걸어갑니다
해는 벌써 저무는데
당신은 생각에 잠겨 있고 나는 침묵합니다.

성당에 들어가 장례미사와
세례식과 혼배성사를 구경하고
서로에게 얼굴을 돌린 채 나옵니다...
어째서 우리는 그들처럼 살 수 없을까요?

묘지에 들어가 가볍게 한숨을 쉬고
짓밟힌 눈 위에 함께 앉읍시다
당신은 눈 위에 막대기로 그립니다
우리가 영원히 함께 살 큰 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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