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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er

글로리홀

긴 꼬리 달린 중에서

눈보라를 채집하는 시기가 오면 남편은 오랫동안 집을 비워야 했네 남편은 혼자 사는 아내야말로 긴 꼬리를 지녀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었네 아내의 꼬리는 낮밤 길어지지 않고 남편은 눈보라를 짊어지고 돌아왔네 아내의 꼬리는 남편의 마음을 수축하게 했네 아내는 맞았고 눈보라는 흩날렸네 아내는 맞았고 눈보라는 흩날렸네 아내는 맞았고 마지막으로 눈이 흩날렸네 붉은무덤개미 떼들이 눈먼 아내를 찾아왔네 남편은 뒤늦게 요절했네 꼬리야 꼬리야 길어져라 아내는 주문을 외우네 꼬리야 꼬리야 길어져라 아내는 긴 꼬리를 가져야 살아 있고 싶네

 

 

 

사랑을 하고 있었다. 아픔을 겪었다. 지금 다른 사람을 사귀고 있던 아니던 간에 그 아픔은 마음 속에 담겨 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평생 그 사람 옆에 있고 싶다. 죽여서라도 곁에 두고 싶다. 이 사람하고는 도저히 안 되겠다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다시 그 사랑하는 기분이 되고 싶다. 하루하루 안드로이드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다시 이야기하자. 나는 게이다. 남자가 남자를 사랑한다. 하지만 사랑에 국경도 없다는데, 뭐가 나쁘단 말인가. 첫사랑을 사랑하며 살아가고 싶다. 하지만 내가 사랑했던 그 첫사랑은 나를 강간하고 내 입에 자신의 성기를 강제로 집어넣은 코치다. 그는 천사처럼 웃으며 나를 짓밟는다. 이 안타까운 죄악감을 어떻게 해야 할까. 무리해서라도 이 시집의 주제를 통일하자면 이 정도다.

 

 

시집에서는 수많은 꼰대들이 등장한다. 남성의 땀내를 흘리며 농구를 잘하지만 호모를 싫어해서 성폭행으로 그들을 짓누르고 싶어하는 꼰대. 광산에서만 일해서 바깥일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 불쌍한 꼰대. 호모들의 인권을 보장하자고 주장하면서도 정작 내부에서는 성추행을 즐겨 하기로 동네방네 소문이 쫙 난 운동권 꼰대. 남자아이들을 패다가 결국 사디스트에 눈이 떠버린 운동코치형 꼰대.

  

 방송 매체에서 그들을 아름답다고 띄워서 그랬던 원래부터 화자가 매저의 성질이 있어서 그랬던 어쨌던 간에 그는 그들을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바그너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그가 꼰대라는 사실이 꽤 충격적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실이다. 그는 탄호이저라는 캐릭터를 빌려(그도 땀내 꽤 나는 기사이다.) 사랑의 본질은 쾌락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한때 BL소설 계에서 "러브스토리의 시작이 대부분 강간이라니 너무 충격적이다."라는 논란이 있었고, 강간한 공은 물론이고 공의 밑에 눌려 쾌락을 느낀 수의 윤리에 대한 논란이 벌어진 적이 있다. 글쎄. 매우 윤리적인 그들의 주장대로 그런 식으로 동성애자가 된 일이 흔히 겪을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목소리가 점점 대중화되기 시작할수록 캐릭터가 처벌을 받고, 그로 인해 작가들이 자기 검열을 하기 시작했으며 한때 인터넷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퀴어문학은 사실상 사장되었다. 나는 그게 너무 짜증이 났었다. 제발 사랑은 사랑으로 작품은 작품으로만 봐줄 수 없겠니? 김현은 그런 나의 심정을 어루만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반전이랄까, 좀 아쉽다고 할까. 화자는 진지하게 카세트테이프 음악이 사라졌으니 사랑도 사라졌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놈의 R.E.M은 참 많은 사람들을 홀렸구나 싶다. 덕후라면서 응용한 애니메이션도 은하철도 구구구라던가 땅물바람 같은 것들이니 참 애잔할 노릇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왜 이제서야 이런 시집을 내놓았느냐는 것이다. 음악을 (외국락, 외국포크 일색으로) 편식하는 사람들을 신랄하게 비난한 장정일 씨의 시집이 생각나기도 했다.

 

 


P. S 시집을 읽고나니 난데없이 파나소닉 CD플레이어를 사고 싶어졌다. 고딩때 마의 안에다 이어폰 집어넣어서 수업시간에 아무로 나미에랑 벅틱이랑 몰래 듣고 정말 개꿀이었는데. 파는 데 요새 없나요? 국전에서 중고로 살 수 있는지 알아봐야겠다.

 

 * 각주를 위로 달면 어떨까요?라고 질문하셨던 낭만서점 팟캐스트 진행자 중 한 명, 재주소년 보컬 분이 생각나서 이 시의 제목 부분의 각주를 맨 위로 올렸다. 이 시집엔 각주가 상당히 많은데 무시할 수도 없어 난감했다. 통째로 사진을 찍는다면 모를까 인터넷에 적어서 불펌할래야 할 수가 없는 시들 같다.

 

 

 

지금은 유명한 이야기지만 사실 메텔은 어지자지다.

 

* 인간들의 우주 장례식을 위해 개발된 메텔사의 1세대 장의 열차. 비둘기의 몸통을 본떠 만든 차량과 비둘기 울음을 닮은 기적 소리 탓에 비둘기호로 더 자주 불렸다.

은하철도 구구구 중에서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면 모든 안드로이드들의 작동이 끝났다. 우주 장례식 시뮬레이션이 꺼졌다. 달밤은 더 달밤이 되었다. 장례식이 끝나길 기다리던 샘 빌은 G버튼을 눌러 지구의 문을 열었다. 유효기간이 지난 안드로이드들을 싣고 비둘기호는 불타는 지구를 향해 힘차게 달려갔다.

* 안드로이드들을 폐기하기 위해 세워진 대형 화장로. 안드로이드들의 출생, 거주, 이주 행성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시집에서 자꾸 섹드립이 난무하니까 주먹쥔 사진만 봐도 이상한 생각이 든다(...) 차칸... 생각...

 

 

* 본 픽션은 로라 헨리의 논픽션 소설을 써라, 소설을, 소설 캐비지 여사의 제 신발 좀 찾아주세요. 슬리퍼예요, 푸른 슬리퍼의 전체를 재구성하여 지운 것임을 밝힌다.

소설을 써라, 소설을, 소설 캐비지 여자의 제 신발 좀 찾아주세요. 슬리퍼예요, 푸른 슬리퍼 중에서

사람들은 이번 역은 이번 역에서 고개를 앞으로 뒤로 꺾었다. 삶은 환승역을 향해 갔다. 캐비지 여사는 지난 날, 우리 생애의 전부가 되어주었던 것들을 생각했다. 땅불바람물마음 다섯 가지 힘을 하나로 모으면, 그렇지만 캐비지 여사는 다시 한 번 큰소리를 삼켰다. 조용히 하자. 조용히 말해야 해. 우리는 공중도덕을 교육받았다. 우리는 매를 벌었다. 제 신발 좀 찾아주세요. 슬리퍼에요, 푸른 슬리퍼라는 말, 문이 열렸다. 스마트하게 밀려 나가는 사람들을 따라 캐비지 여사는 데굴데굴 문밖으로 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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