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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

혼불 1

"사람들은 나라가 망했다, 망했다 하지만, 내가 망하지 않는 한 결코 나라는 망하지 않는 것이다. 가령 비유하자면 나라와 백성의 관계는 콩꼬투리와 콩알 같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비록 콩껍질이 말라서 비틀어져 시든다 해도, 그 속에 콩알이 죽지 않고 살아 있다면, 콩은 잠시 어둠 속에 떨어져 새 숨을 기르다가, 다시 싹터 무수한 열매를 조롱조롱 콩밭 가득 맺게 하나니. (...) 생산의 근원이 여기 있는데 무엇이 두려우랴."

 

 

 

 

작품에서 남편을 두 번 잃은 소복여인이 잠깐 나오는데 천원돌파 그렌라간의 요코 생각나더라...

 

 간단히 말하자면 종갓집에 시집온 여자들의 이야기이다. 시어머니도 옛날에는 며느리였고 시할머니도 옛날에는 며느리였더라... 생각해보면 종갓집에는 결혼하지 않은 '여자'는 없다. 종갓집 여자애는 존재할 뿐. 여자애는 여자가 아니기 때문에 맞는 남자가 있을 때까지는 여자가 아니다. 소설에서도 나오듯이 종갓집 남자는 몇 번씩이나 여자를 잃어도 보쌈이라도 해서 얻으면 된다. 마치 인형을 얻듯이. 아니, 얻어야 한다가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다음의 여자들은 살아있다. 그러나 여자는 남편을 잃으면 잃은 대로 산다. 그녀의 옆엔 죽은 남편, 잃어버린 남편이 있다. 시체를 끌어안고 그들은 죽음의 철학을 향해 나아간다. 나는 우리나라에 열녀가 많은 이유가, 그들이 유달리 착하고 선해서가 아니라 갈 곳을 잃어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한다. 누가 그녀들의 갈 곳을 없앴을까. 누가 그녀들에게 종가라는 무거운 짐을 지웠을까.

 강모는 여전히 이해가 안 가도 화살로 바위를 뚫을 것이냐 피해갈 것이냐는 기표의 질문은 굉장히 의미심장하다. 나는 피해가고 싶다. 하지만 어쩐지 바위를 뚫고 못 쓰게 된 화살들에 유독 마음이 쏠린다.

 그 화살 중 하나가 청암 누님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그녀를 보면 나는 페론 부부가 생각난다. 그녀가 종가에 '취임'했을 때 업적을 세운 일은 '물을 트기 위한 공사'였는데, 이는 중국에서 치수를 함으로서 나라를 만든 우왕의 업적에 비할 만하였다. 그나마 우왕에게 물이 있었다면, 청암 누님은 없는 물을 만들다시피 하고 없는 자식과 손주를 만들다시피 했다. 종갓집치고는 다소 혁명적인 방식이었지만, 배경이 일제강점기이고 서민들의 계급타파에 대한 의식이 상승하다보니 아무리 그녀같이 크고 양기가 가득한 붉은 꽃이라도 결국 견디지 못하는 듯하다. 아무튼, 집안은 국가요 고부갈등은 정치란 걸 잘 보여주는 훌륭한 글이다. 그리고 이 소설에 의하면, 종가는 남성보다는 여성이 일구어 놓고 지켜온 우리나라의 문화였다.

 

 

 

종가 중에서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 강모는 근친의 감정이 아직 남아있어서 잠자리를 거부하고, 신부의 처녀막에 관한 환상은 그쪽이 먼저 부수어버렸다. 미러링이란 그런 것이다. 여자들이 분노했다고 해서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고, 그들이 한남한남한다고 해서 불쾌하다 따지고 들 일이 아니었다. 그들의 욕망이 먼저 여자들을 내팽개치고, 마음을 짓이겨버리고, 기운을 음기로 돌려버렸다. 그런 주제에 어딜 멋대로 여자를 음기라 하는가.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내가 그래도 죄와 벌에서 스미드리가일로프를 이해했으니 그래 혼불의 강모도 이해가 되겠지 했는데 손나 바나나 코레와 웃소다 아직도 이 새끼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어 어쨌던 결혼했음 딱 지 아내를 지 껄로 만들어야지 그것도 못 하고 첫사랑인 사촌누나 보고싶어 하는데 어릴 때 소꿉장난 한 이후 쭉 만나보러 갈 생각도 못하고 할머니가 무서워서 결혼했고 아무튼 슈발 죤나 처음부터 끝까지 지 생각만 하는 놈 하... 나 같으면 신방에서 발랑 드러누워 쳐 잘 때부터 벌써 뛰쳐나가거나 촛대 들고 때린다 어릴 때 이 책 잡고 나서 바로 집어 던질 뻔했는데도 신부가 불쌍해서 끝까지 봤지만 근본적인 감상은 지금도 변하는 게 없네 암덩어리 새끼... 여자가 부처다 여자가 부처야.

 아무리 토지가 불공평하게 나눠진 시스템에 대한 불평이 옳다 할지라도 모든 일엔 순서가 있는 법이었다. 일제강점기일 땐 제일 우리나라 민족을 많이 수탈하는 일제의 손에서 독립하고 평등을 이루는 게 옳았을 것이다. 청암 누님의 혜안은 본능에 가까웠다. 그녀와 율촌댁과 효원은 과연 일제강점기 후반에 속하는 이 시기를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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