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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

엄마의 골목

"하여간 네 아버진 친구를 너무 좋아했단다. 남자들이란 참!"

 

 

 

 

이별은 사별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일 다른 좋은 사람을 만난다 해도 그때의 사랑을 후회하고 그때의 분노를 경멸하고 이 사람과 저 사람을 비교한다면, 당신은 그저 청춘을 낭비한 것이 된다. 왜, 당신이 만인에게 그렇게 잘 떠벌렸듯이 말이다. 그리고 청춘의 낭비는 죄다. 죄를 지으면 지옥에 가서 벌 받는다. 그렇게나 그 사람이 밉다면, 아니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그 상실감이 배가 된다면, 차라리 바다를 보고 하모니카를 불어라. 바이올린을 켜라. 목청껏 노래를 불러라. 기분이 풀릴 때까지 그 바다를 가라. 그리고 당신이 감히 버리거나 태울 수 없었던 그 추억의 물품을 버려라. 당신은 그걸 잊어버리고 있었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그걸 잊었을 리가 없다. 그리고 추억의 물품을 버려도 추억은 살아 있다. 그 골목에. 그리고 생각날 때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라. 그걸 가슴 속 깊이 묻어버릴 수 있는 사람에게. 혹은 완곡하게 세상에 표현해낼 수 있는 사람에게. 나는 당신이 점점 나빠지는 걸 도저히 볼 수 없어서 당신에게서 거리를 두었다. 살다보면 기적같이 만날 수 있는 날이 한 번 정도는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걸 명심해라. 영원히 못 만날 수도 있다. 그건 내가 변화하지 않은 당신을 보고 싶지 않아서다.

 

 

 

어머니가 가난한 집안의 여성으로서 학교를 1년 쉬는 등 갖가지 이중차별을 겪었다면, 화자는 군대에서 연애도 제대로 못하는 청년들을 보면서 이른 나이부터 마음에 간접적인 상처를 입었다.

 

 이것도 또한 페미니즘적인 이야기이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사람들의 눈에는 아이라는 망막이 씌일 뿐, 엄마로 된다고 해서 딱히 벌레나 괴물로 바뀌는 것도 아니다. 페미니즘은 여성의 이야기인 만큼, 여성의 본성을 최대한 발휘한 어머니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시바삐 세상에서 전쟁을 없애야 군인들의 긴장감도 없어지고, 시스템도 파괴할 수 있다. 잘못된 군대 시스템이야기는 결코 군대에서 축구하는 이야기와 퀄리티가 같지 않다. 높으신 분들은 그걸 왜 모를까?

 

 

 

음악은 각각의 사람과 장르를 넘나든다.

 

 

 이 책에서는 베토벤의 피아노곡이 거론된다. 102년의 역사가 있는 흑백다방의 현재 주인장이 여성 피아니스트이기 때문에. 차는 팔지 않고 연주회를 연다고 한다. 거기서 4월은 너의 거짓말이란 애니메이션이 생각났다. 남자주인공이 카오리라는 시한부 인생의 여자아이를 만나서 사랑을 했다. 베토벤 곡을 같이 연주한 순간은 한 번 뿐이었고, 카오리를 잃은 순간 그는 혼신을 쏟아 벚꽃을 피워내듯이 쇼팽을 연주했다. 원작이 만화인 애니는 거기서 끝나지만 난 그 이후의, 벚꽃이 진 이후의 앙상한 나무 코우세이란 남자의 삶이 궁금했다. 이 책에선 그가 죽고 그녀가 오래 살아남았다. 이 애니메이션에선 다리 위에서 뛰어내리는 카오리가 석양과 젊음에 반짝반짝 빛난다. 이 책에선 주인공인 아들이 뛰어내린다. 이 책에선 남자는 죽고 여자는 살아남았다. 꽃이 없어도 기억이 살아남고 담벼락이 헐렸어도 그 안의 집이 보이는 이 책은 사건이 없어도 잔잔하고 아름다웠다.

 

 

 

애초부터 진해에 놀러가고 싶었고 그 곳의 명소를 찾기 위해서 이 책을 집었다. 김탁환 씨와 페친으로 지내고 있지만 그의 저서는 99 드라큘라 사진관으로의 초대를 도서관에서 잠깐 쓱 훑어본 게 전부다. 요새 페친들이 써낸 책들을 보는 데 재미 붙였는데, 홍보도 많고 겸사겸사해서 책을 샀다. 그런데 거짓말이다라는 소설을 여기 안에서 그렇게 홍보하시더라. 꽤 힘들게 쓰신 거 같은데, 볼까말까 망설여진다. 왠지 그 책을 보려고 결심하면 목격자들도, 걸어본다 시리즈도, 민쟁 님의 시도 결국 다 보게 될 것 같다. 끝없이 이야기를 보게 되는 건가. 

 

 어쨌던 진해로 출발하기 전에 이 책을 다 보게 되어서 다행이다. 저자의 동생이 설계했다는 표지 속 지도를 손에 들고 내일 새벽 포항가는 버스를 탄다. 어머니랑 같이 사진을 찍으려 한다.

 P.S 세월호 관련 소설로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도 나왔다고 한다. 3권째라고 하신다. 시리즈가 더 나올지 기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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