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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

사랑하는, 너무도 사랑하는

그가 말을 하고 있는 사이에 젊은 여자가 들어와서 포도가 세 송이 담긴 하얀 접시를 내려놓고 나갔다. 그런데 접시를 내려놓은 곳이 집주인의 손에는 쉽게 닿는 곳이지만 우리가 손을 뻗치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운 거리에 있었다. (...) 갑자기 배가 아파왔다. 만호와 함께 오다가 점심으로 먹은 육개장에 벌건 기름이 너무 많은 것 같았는데 그 때문인지도 몰랐다. 다행스럽게도 싸르르 아프던 배가 조금 나아지며 방귀가 새어나왔다.

 

 

 

 

기대치 이상이었다.

 

 소설집이고 초단편은 아니지만 보통 두세장 정도밖에 안 되는 소설들로 이루어졌다는 성석제의 특이한 소설이 확실히 내 눈길을 끌기는 했다. 그러나 무라카미 류가 야성적인 젊음으로 사람을 압도하고 세심하게 리드하는 성격이라면, 성석제는 다정하고 약간 헐렁한 성격의 글이라고 해야 할까? 이걸 에세이로 봐야 할지 소설이라고 봐야 할지 헷갈릴 정도로 소설들은 저자의 경험담같은 이야기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확실히 그런 점에서는 시 같다. 성석제 씨는 자신의 시같은 글에 살을 붙여서 늘린 소설이 자신의 소설집이라고 결론을 내린 듯하다. 그렇다면 장편소설은 어떻냐고? 놀랍게도 무라카미 류가 단편소설을 늘려서 장편소설을 만든 편이라면, 성석제의 중장편 소설들은 이런 단편소설집과는 또 완전히 다르다. 그의 장편소설은 구도가 완벽하게 짜여져 있는 편이었다. 말미가 열린결말로 두루뭉술하게 끝나는데, 그 점에선 좀 이 소설집과 비슷해 보이긴 하다. 아무튼 순수문학 작가 중에서는 다양한 장르를 시도해보는 사람들도 있고, 일부러 라노벨에 도전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장편과 단편의 느낌을 다르게 쓰는 작가는 또 처음 들었다. 그는 자신의 단편집을 설명하며, '쓸 수밖에 없어요.'라고 끝을 맺는다. 나는 그의 굉장히 소설가같은 부분이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이야기를 예전부터 많이 좋아하긴 했지만, 그를 어느 강연에서 만난 뒤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된 듯하다. 그래서 이 책을 강연에서 무료로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문학동네에서 그가 옛날에 쓴 단편집들을 재출간한 것들을 다 구입하게 되었다. 한동안은 시를 읽는 대신 이 책들을 읽게 될 것이다. 그렇다. 나는 이 책을 소리높여 읽었다. 그것도 10편씩. 시를 읽는 것보단 확실히 시간이 걸렸다. 단편 하나를 읽을 때마다 어른의 말씀이나 돈의 값처럼 깊이 생각할 거리들이 생기기도 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어째 그래요! 같은 짧은 문장이 핵심적으로 마음을 콕콕 찌르는 듯했다. 휴머니즘을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아도 사람 사이의 따뜻함을 충분히 담아내는 듯했다.

 

 

 

두번째로 내가 이 책에 감탄한 점은 정치에 대한 비판이었다. 

 

 이게 잘못 쓰면 완전히 아재개그가 되어버리는 면이 있거나 시대에 통하지 않는 게 있는데, 그는 무슨 선견지명이라도 있는 젊은이마냥 처음 글 쓰는 사람처럼 유독 설렘과 열정에 넘치는 글을 써냈다. 일찍 일어나는 새와 마을 발전 사업에 대한 글이 가장 인상에 남았었다. 두철수에서 계속 일찍 일어나라는 메시지를 던지는데, 보통 한국 사람들이 일찍 일어나면 보라는 책 안 보고 가라는 산책 안 간다. 일을 한다. 책도 보지 않는다. 외국에서 수입되어 온 듯한, 아침형 인간이란 개념은 그렇게 한국에서 망가졌다. 마치 우주선을 쏘아올리지 못하고 한국의 여성우주인은 결국 외국 가서 잘 먹고 잘 살게 되었다는 메데타시적 결말이다. 작가는 이를 풍력발전에 연결해서 글을 써내려갔다. 7년도 더 전에 쓰여진 글인데 이건 마치 미래를 예언한 것처럼 생생하다. 이 정도면 그도 김진명처럼, 기간은 짧았지만 훗날을 예언한 셈이 아닌가?

 

 

세번째로는 이 책에서 나오는 음식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강연의 진행을 맡았던 정용준이 지적했듯이 게에 대한 이야기가 상당히 재미있었다. (그리고 맛있어 보였다.) 작가가 개인적으로 가장 공을 들인 건 따개비죽 같았지만 저자의 의도와 독자의 느낌은 원래 따로 노는 법이지 않은가. 특히 난 생맥주와 소프트셸크랩 볶음 정말 궁금했다. 뉴욕에 있는 식당이라는데, 이거 먹으러 뉴욕가야하나 진지하게 고민했을 정도이다.

 

 

 내가 딱 한번 갑각류가 맛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그건 새우이고 코스요리였던 지라... 아, 제주도 여행 갔다가 우도 어느 카페에서 대게라면 먹었을 때 메챠쿠챠 맛있었던 건 기억나는데 너무 오래 걸어서 그랬을 수도 있고. 무튼 먹방여행 더 하고 싶다. 살 언제 빼나.
 그리고 최근 나이가 들어서 그러나 내 인생 절대 좋아하지 못할 거 같았던 멸치가 요새 끌리더라. 근데 이 책에서 또 요새 본인이 관심있어 하는 그 음식이 나온다. 제목도 멸치 교향곡. 무라카미 류가 추천하는 음식은 대부분 약간 먹기가 부담가는 면이 있는데, 이 책에 나오는 요리는 나같은 서민도 조금만 노력하면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게 또 한 번 매력이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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