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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Essay

시 창작 스터디

마음이 사라지지 않아서 10 중에서

 

이제 진짜로 끝내, 너무 지겨워. 할 수 있는 말을 다 내뱉고 문을 있는 힘껏 닫는다 당신에 대한 나의 실망과 분노를 들려주려는 듯이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가다 다시 눈앞에 펼쳐지는 실내에서 나의 실망과 분노를 받아낸 당신이 손에 얼굴을 묻을 때 나는 내가 단 한 번도 끝내자는 말을 한 적 없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테니스공이 라켓에 부딪치는 소리가 울린다 테니스공은 선을 넘으며 부단히 움직인다 두 명의 선수가 공에 매달린 인형처럼 뛰어다닌다 나는 두 명의 선수가 아주 예쁘고 하얀 인형 같다고 생각한다

 

 

옛날이었음 이 시 읽고 울었을텐데 지금은 만년솔로된지 오랜지라 ㅋ 시인이 내 얘기를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그 문제의 '당신'은 멋대로 내가 그 관계를 끝내버렸다고 생각함 ㅋ 핑계도 아니었고 강력한 이유가 있었건만.

 

여기엔 올리지 않을 거지만(전반적으로 사회고발 성격이 강한 시집이고 그 중 제일 쎈 시지만 난 이 시인이 쓴 시 중 그렇게 특출나게 훌륭한 시는 아니라 생각한다.) 시 창작 스터디라는 시에서 자칭 오빠라는 인간의 맨스 플레인을 보고 있자니 지금은 좀 가라앉은 문단 내 성폭력 테마가 생각난다. 대체 그 가해자 한남들은 왜 그따구일까? 유달리 그 놈들이 빻아서일까? 아니면 여류시인은 성추행에 화내지도 신고하지도 않고 온화하게 그 놈들이 그렇게 타령하는 '젖무덤'을 열어줄 거라는 무슨 판타지라도 이 사회에 역병처럼 돌고 있는 것일까? 차라리 그녀들이 시 쓸 능력이 없어(?) 가르치는(??) 거라면 좆 잡고 가르치기나 할 것이지 말이다.

 

뜬금없긴 한데 늦게 오는 자장가란 시를 읽으면서 우리 집 강아지가 내일이라도 무지개다리를 건넌다면 어떻게 될까 라는 생각을 했다.

정말 주님께 나도 데려가 달라고 사정하게 되지 않을까..

 

희극 중에서

 

꿈속에서는 항상 누군가와 함께 있었다

혼자서는 꿈속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홀로 걷는 골목에 서 있는 내가

나를 보는 것을 알아차릴 수 없다

 

보고 싶은 사람들은 여기에 다 모여 있어

서로 얼굴을 던지고 받으면서

슬픔 없이 죄책감도 없이 감정 없이

이 놀이에 동참하고 싶다

 

보고 싶은 줄도 몰랐던 얼굴이

나에게 던져졌고

나는 그 얼굴을 들고 가만히 서 있었다

다음 사람에게 얼굴을 던져야 하는데

 

내가 놀이를 망친다

나는 내 꿈 속에서 쫓겨난다

(...)

만들다 만 천사가 비척비척 걸어와

꿈의 시나리오를 넘기며 어디쯤, 어디쯤

 

 

어떤 사람에게 왜 주어와 목적어를 분명하게 말하지 않느냐는 지적을 받은 적이 있다.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주제였다. 아마도 다른 사람을 상처받게 하지 않음으로서 자신을 보호하려는 게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세상에는 명확하게 말하지 않는 게 좋은 일들이 많다. 예를 들어 내가 치과에서 일할 때 ~같아요라는 표현을 쓰라는 지적을 받은 적이 있다. 이 세상에 확실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이 어그러졌을 때 '이 치과의사가 데리고 있는 직원이 확실히 그렇다고 말했다'라고 클레임거는 걸 방지하는 게 본래 의도인 듯하다. 원래 을들이 갑들에게 제대로 말도 못 붙이는 게 이 시대의 철칙 아니었나. 시인은 그런 상태를 보여주는 것처럼 문장을 완성하지 못하고 쉼표로 끊는다.

 

(2020)

 

선물을 싼 얇은 포장지가 리본까지 달려 있는 포장지가 선물과 같이 왔다 상자를 흔드니 소리가 났다 자세히 들어봐 비틀즈의 미공개 음악 아닐까 그렇다면 대박인데 난 아직도 고민이 생기면 신해철씨한테 먼저 물어봐 머릿속으로 그냥 머릿속으로 아직도 오노 요코를 원망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얼핏 우는 소리 같기도 해 그렇다면 굳이 열어봐야 할까 얇게 언 눈밭을 걸어가는 기분이야 슈가코팅이 깨지기 전에 먹던 막대사탕을 눈사람 옆구리에 찔러넣는 것 같아

 

예쁜 포장지는 찢어버리기 아까워 2020번의 선물과 2020번의 포장지가 거대한 마트에 쌓여 있는 건 아닐까 부드럽게 카트를 밀고 물건들을 구경하는 것이 좋아 뒤쪽의 성분 표시를 유심히 읽어보자 졸피뎀과 같이 먹으면 치명적인 성분이 있을지도 몰라 약국에 또 가야지 안전 수칙을 반복해서 듣고 순순히 고개를 끄덕거려야지 불투명한 유리 너머로 사라지는 약사를 쳐다봐야지 전문가들이 불투명한 유리 너머로 사라질 때 나는 그들이 신비롭다고 느껴 폰을 꺼내서 검색하고 또 검색한다 같은 문장을 새롭게 읽으면서 카트를 민다

 

 

2020에 굳이 괄호를 붙인 건 어떤 의미였을까. TIME지 표지에서도 그랬듯이 2020년을 빼버리고 싶다는 사람들이 참 많다. 제일 화나는 건 이런 때 잘 사는 사람들은 더 잘 살고 못 사는 사람들은 생사의 기로에까지 놓인다는 것이다.

그나저나 아무리 금지된? 로맨스였어도 그렇지 왜 오노 요코를 탓하냐. 멋대로 비틀즈 탈퇴해버린 존 레논을 탓하는 게 올바른 거 아닌가.

 

트렁크 중에서

 

방에는 싱글 사이즈 침대 하나 간이 탁자 하나 아주 작은 냉장고와 냉장고 위에 놓인 전기포트가 있어 간이 탁자에는 내가 마시다가 둔 커피가 있고 재떨이가 있어 이 호텔은 건물 전체가 금연인데 재떨이가 있네 지배인은 신중한 것일까 너그러운 것일까 생각하다가 구글 검색창에 north korea를 쳤어

(...)

내가 밖으로 나가려고 하니까 남자가 앞을 가로막았어 여기는 밤 되면 너무 위험하다고 나는 갑자기 오늘 있었던 일을 털어놨어 공원 벤치에 앉아서 샌드위치를 먹고 있었는데 그사이에 소매치기를 당했다고 지갑에 사진도 있는데 너무 아깝다고 그가 날 진심으로 위로하는 거야 나는 눈물이 핑 돌았어 그가 방에 올라가서 이야기하자고 하더라 나는 삼 초 만에 눈물을 그쳤지 아임 노스 코리아 우먼 소리치고 뒤를 돌아 엘리베이터로 걸어갔어 뒤를 돌 때 얼핏 그 남자 얼굴이 십 년은 늙어 보이더라

 

 

외국 가서 남자들이 추근거리면 나도 북한여자라고 소리질러야겠구만 ㅇㅇ 근데 이것도 통할까 싶은 게 강원도 고등학교에서 수학여행 갔을때 아저씨들이 대놓고 북쪽에 있을수록 여자들이 이쁘다고 이 지랄하며 실실 쪼개더만.. 참고로 이 사건을 겪으면서 처음으로 한국에서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위의 시처럼 외국 사람들도 동양인이 유교에 쩔어있다는 환상을 가지고 찝쩍댄다고 하더라. 그냥 죽어서 백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게 나을 듯.

 

외설이 지나가고 슬픔이 지나간다 중에서

 

나는 총알을 장전한다

한 발로 적을 죽일 자신이 없으므로 총이 허락하는 총알 전부가 필요하다

기껏 모든 준비를 마치고도 나는 용기가 없어서

손끝이 냉정하지 못해서

급기야 총으로 적의 뒤통수를 가격한다

비명을 지르며 총알 대신 내가 나가버린다

아니 오히려 이것은 용기 있는 행동이 아닌가

총을 쏠 용기가 없어서 더 큰 용기를 내버렸어

아, 괜히 뒤통수가 아프다 꿰맨 자국을 보여줘

이 영화에서 흉터는 통행증이 된다 동료를 만날 수도 있고 애인의 죽음 앞에서는

면죄부가 되기도 하지

 

아주 가까이

 

이 영화 속에서 나는 언제 울게 될까 외설이 지나가고 슬픔이 지나간다

내내 조용하던 거울은

깨질 때

최대치의

비명을

지른다

 

 

이 시 보면서 생각난 게 웨스턴 샷건이란 만화다. 다들 짱이나 용잡이 같은 거 좋아하던 때 내가 가장 좋아하던 만화다. 아마 바지라거나 패션이 특이해서 좋아했던 걸로 기억한다. 메 모 게임이 이 만화의 주인공을 베꼈다고 내가 한창 주장하고 다녔던 적도 있지만 워낙 유명하지 못했던 만화라 그런지 주변에선 다들 제목을 얘기해도 모르는 기색이 있었다.

현재는 여자들 판치라가 등장하기도 해서 호불호가 많이 갈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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