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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igion&Development

몸이라는 화두

한글대장경 완간을 기다리며 중에서

눈물 콧물탄이 펑펑 날으는
이 어려운 시대에 살면서
짱돌 하나 꽃병 하나 던지지 않는 너는 흰손이구나
친구여 너는
싼스끄리뜨를 배우러 뉴델리로 떠나고
빠알리어를 배우러 콜롬보로 떠나는구나
동악 관악 안암 신촌 등
다발탄과 지랄탄이 날으는 이땅에서는
우리들이 뜨겁게 껴안을 말마저 잃어버리고
우리들의 혓바닥 위에서 구르는 자음 모음들을 잃어버리고
모두들 외국어를 배우러 상품처럼 수출되고 있구나
이 땅에서 시를 쓰는 나는
한글대장경의 완간을 기다리며
말씀의 한 귀절 한 음절을 씹어보지만
식민지 하늘에는
핵무기왕국의 성조기와
경제왕국의 일장기가 거세게 펄럭이는구나

 

 


그닥 동의하진 않지만 맞는 말인 것 같다.


전통문화 소비 같은 국뽕을 적극적으로 추천할 생각은 없지만, 자꾸 문제에서 도피하듯 치부 가리기에 급급하지 말고 우리나라를 직시해야 한다. 또한 이름만 한국형이 아닌 진짜 한국형 답변을 틀리더라도 계속해서 내놓아야 할 텐데... 이 책이 2000년에 발간되었는데 17년이 지나도 변한 게 하나 없고 오히려 일본색이 짙어지고 있으니 그저 안타까운 일이다.

 

 

 내가 보기에, 사회학이라던가 정치 책을 찾는 사람들의 책은 자꾸만 새로 나온 책을 찾게 된다.


 자연스럽게 헌책방에서도 최신간만을 찾게 되서, 헌책방을 가는 의미는 단지 책을 싸게 사려는 게 아닌가 한다. 그렇다면 무척 아쉬운 일이다. 헌책방을 찾는 재미란 이미 절판된 도서를 새롭게 발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인지라 옛날 책들은 좀 진부해지긴 한다. 그렇다면, 시는 어떨까? 시는 과거에 내가 어쨌고 저쨌다는 일기나 회고록 스타일은 아니다. 옛날이 좋았다는 꼰대 같은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당시의 자연을 주로 이야기하고,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는 효과가 있다. 이런 걸 보면 책은 마음의 양식이란 말이 정말 맞다. 그리고 특히 시가 그렇다.

 

 성묘 중에서

나 죽더라도 화장하면
절대 안된다던 아버지의 유언을 따라
집안의 산소에 묻었었다
그곳에 아버지는 스물 세 해동안 누워계셨다
명태포와 달리
육탈된 뼈만 남긴 채

내년에는 가까운 벽제 언저리에
납골당 하나를 세우려고 생각했다

아버지의 유언을 더 이상 지키지 못하고
화장하려는 생각이
술 잔 올리는 손을 떨리게 했다

 

 


왜 시인은 아버지를 화장시키고 싶었을까.


이 시를 처음 봤을 땐 불교를 믿으셔서 그러시나 생각했는데 나중에 자화상이란 시를 보면 과거를 그런 식으로 떨쳐버리려 한 게 아닌가 싶다. 성묘를 하고 집에 가는 길에 시인은 대한민국 땅이 전부 음지가 되는 걸 상상했다고 한다. 무덤이 많단 소릴까? 아님 아동학대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단 소릴까?

 

정동진

바다 게가 지그재그로 기어나와
추억의 조개껍질로 쌓아올린 역사
이곳엔 지금 젊음이 한창이다
삼백원 짜리 표딱지를 내고
객석에 자리를 잡으면
모래시계 소나무가 허리를 숙이고
몽유도원도의 막을 올린다
안개와 바다로 세워진 가설무대
바람이 무대 휘장을 흔들며
몇십 년 전의 십대로 되돌리면
모두들 세상의 주인공이 된다
나는 수학여행 갔던 그때로 돌아가
이미 흘러가 버린 구식 카메라 렌즈 앞에서
놀란 눈으로 자꾸만 교복 칼라를 만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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