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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igion&Development

고행

고함이 내 속에 울려 퍼집니다.
ㅡ생각해 보라, 너는 무엇을 보느냐?
ㅡ사람과 새와 돌과 꽃을 봅니다.
ㅡ다시 생각해 보아라, 너는 무엇을 보느냐?
ㅡ생각과 꿈과 빛과 유령을 봅니다.
ㅡ또 생각해 보아라, 너는 무엇을 보느냐?
ㅡ아무것도 보지 않습니다. 적막하고 고요한, 죽음 같은 깊은 밤입니다.
ㅡ또 생각해 보아라!
ㅡ아! 나는 검은 성벽을 꿰뚫을 수 없습니다!
나는 울음소리와 외치는 소리를 듣습니다.
나는 저편 강가에서의 날개 떨리는 소리를 듣습니다!
ㅡ울지 마라, 울지 마라, 그것은 저편 강가가 아니니라.
외치는 소리, 울음소리, 날개 떨리는 소리는
너의 마음이니라.

 

 



그나저나 이 분도 이름이 니코스이니 애칭으로 따지면 니코로 불린 거 아니냐!
... 니코 미안.


일어나서 도서관 가면서
아 ㅅㅂ 그리스인 조르바 읽어야 한다니
아앍 ㅅㅂ 그 인간 변태잖아아아 읽기싫어엇 야메떼 이야다아 쿳소오 근데 독서모임 때문에 읽어야 돼애애
이러면서 갔는데 레알 이거보고 머리가 띵해짐
아 그러니까 소설만 그리스인 조르바를 썼지 비소설은 다양하구나. 민망하다 ㅋㅋㅋ 도서관에서 레알 나 혼자 비실비실 빵터짐(...) 매일 20페이지씩 소리내어 읽다보니 대략 10일만에 다 읽었다.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룰루. 여러분 조르바가 꼴보기 싫은 사람 있음까? 저처럼 잠언 읽으세요. 에세이는 싫어하는 편이지만 왠지 시같아서 부담이 안 간다.

 

 


줄거리 정리를 하게 될 듯한데 이 책의 내용이 니코스 카잔차키스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오해를 벗어던지는 데 효율적일 것 같아서이다.


대충 신에 대해서만 정리하자면, 신이 인간과 동물과 식물과 사물 등 모든 것에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이 신은 수없는 가면들을 지니고 있지만 그 본질은 하나이다. 이 점에서만 기독교에 가깝다 볼 수 있다. 이 신은 무능하지만 계속 우주와 싸우고 있으며 도움을 청하기 위해 인간을 만들었다. 그러므로 인간은 각기 자신의 내부에 있는 신의 요소를 육체에서 해방시켜 지구를 몽땅 불태워 요한게시록 같은 정화를 실시하자는 것이다. 번 마더퍼커 번! 레알 요즘 내 주변의 사방이 아파트 짓겠다고 공사가 한창인데 그 소음을 들으며 출근하다 보면 진짜 이렇게 됐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서는 심연 속에서 다함께 정숙한 침묵의 파티. 이런 요소들은 모두 동양의 윤회 사상에 가깝다. 그러므로 이 작가가 그리스 정교를 믿었다고 판단하기엔 어폐가 있다. 작가가 중국 여행을 한 후 쓴 기행문도 있고 말이다.

 

 


어쩌면 장막을 걷으라 말하지 않는 건 플라톤의 이데아에 전면적으로 도전하는 행위인인지도 모르겠다.


장막 저쪽에 있는 이상세계도 어차피 당신의 상상에 불과하다고 하는 듯. 실제로 이 대사 이후에 종종 그런 말투가 등장한다.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현상 속에 내재하지 않으며 바보가 되어 고뇌를 우직하게 지고 살아간다. 그것이 첫번째 의무와 두번째 의무 사이의 경계이다.

 

 

 
결국 내가 보고 듣는 건 다 나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근본으로 나아가려고 계속 노력한다면 결국 다 나의 마음에서 끝난다는 사실을 인식할 것을 두번째 의무에선 계속 권장하고 있다.
 
결국 무엇을 하더라도 우리는 무릇 인간이며 대지는 인간을 위해서 태어나지 않았음을 알라고 저자는 권장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크레온이 비인간적 존재와 싸우기 위한 감각을 준다는 말을 하는데, 그는 오이디푸스의 외삼촌이자 처남이다. 그런데 이 분 오이디푸스의 전말을 다 목격한 정신적 충격은 둘째치고 가족은 물론 일가친척이 모조리 죽지 않았나;;

 

 


페이트를 보면 유독 외국에서 평범치 않게 살았던 역사적 인물들이 일본의 평범한 문화를 즐기는 장면이 많이 발견된다.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눈으로 이들을 본다면 어떨까? 그는 분개할 것이다. 책에서 그는 일상을 벗어나 끊임없이 도약하려 노력해야 하며 안주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일반 대중들은 왜 페이트의 교훈에 동조하는가? 이는 일상적인 겸손에 들어 있는 성스러운 모습에 대한 존경심 비슷할 것이다. 그러나 항상 도약하는 삶을 살았던 서번트들이 평범해지는 모습은 겸손을 잘못 해석한 건 아닐까 싶다. 사실 작품 자체의 치명적인 단점이기도 하다.


P.S 그래도 난 니코니코니 카잔차키스가 싫다. 이유? 인식-인류는 애 낳으라는 소리가 절반 이상이다. 사스가 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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